세 번째 서핑 스팟 in Mexico
드디어 라 살라디따에 도착했다. 유튜브 영상에서만 보던 레프트 파도 공장이라 불리는 멕시코 게레로 지역의 La Saladita 해변에 왔다. 이 해변에 오기 전 며칠 머물렀던 지후아타네호(Zihuatanejo)에서 해변까지 오는 과정은 덥고 힘들었지만 바다를 보니 마음이 사르륵 녹아버렸다.
무작정 해변에 도착해 진작에 봐놨던 인스타그램 계정에 연결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방이 있느냐고 물어봤고 당장은 방이 없는데 3일 뒤에 방이 나온다는 답을 들었다. 다른 스튜디오가 있는데 거기에 머물다 3일 뒤부터 이용하는 게 어떠냐고 해결을 해줬다. 더위에 지쳐있던 상태라 그래, 좋아! 하고 바로 한 달치 숙소비를 지불했다.
'근데 여기 근처에 가까운 슈퍼마켓이 어디야?'
'없어. 택시 타고 나가야 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우울해졌다. 아, 난 왜 당연히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뭐야, 나 여기 갇힌 건가? 감옥 아니야? 여기 천국 맞아?
La saladita
salado는 영어로 'Salty' 한국어로 '짠'이란 뜻의 형용사다. 스페인어에서는 종종 단어에 ito, ita를 붙인다. 그럼 그 단어가 주는 이미지에 작고 귀엽고 좀 더 애정 어린 느낌을 더해준다. salado에 여성형인 ita를 붙여 saladita 정관사까지 붙이면 La saladita가 된다. 멕시코 식당에 가면 자주 보이는 참 크래커와 같은 짭쪼롬한 과자 이름도 Saladitas다. 이 해변에는 바다와 서퍼들, 집 그리고 몇 개의 식당이 전부다. 식료품을 살 수 있는 곳은 없다. 택시를 불러 가까운 타운에 가면 작은 슈퍼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왜인지 감옥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타운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필요한 것들을 사 와야겠다는 생각에 서핑도 귀찮아졌다. 그렇게 그나마 가져온 식재료를 이용해 대충 끼니를 때우고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한 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때 들리는 친숙한 소리.
'삐나, 나랑~하'
어릴 적 다세대 주택에 살았는데 낮잠이 몰려오는 오후 두 세시쯤 두부나 과일을 파는 아저씨들이 트럭을 몰고 왔다. 아저씨들은 녹음된 멘트를 확성기를 통해 존재감을 뿜으며 집집마다 낮잠에 빠져있던 주부들을 깨우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천 원을 쥐어주면서 나가서 두부 한 모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나랑하(Naranja)는 오렌지라는 뜻의 스페인어다. 어? 오렌지를 판다고? 밖에 나가보니 과일 트럭이 있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버선발로 뛰어 나갔다. 우와! 여기 과일 트럭이 온다고? 이게 꿈이야 생시야?
기쁜 마음에 스페인어가 술술 나왔다.
'이거 살 수 있어요?'
'그럼'
'우와, 언제 와요?'
'수요일, 토요일'
'오늘이 토요일이구나. 꺅-!'
오렌지, 바나나, 사과, 아보카도, 파인애플 등 각종 과일뿐 아니라 토마토, 양파, 감자, 마늘도 있었다. 각 과일별로 저울에 달아 무게를 잰 뒤 가격을 매기는 시스템이었다. 아저씨가 가격을 노트에 적어주셨다. 바나나 4개, 아보카도 2개, 파인애플 1개, 양파 1개 양손 가득 담아서 얼마냐고 물어보니 102페소. 6천 원 정도가 나왔다.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해가 지기 전, 선셋 서핑을 하러 가려고 했는데 귀찮았다. 이런 마음이면 내 게으른 성격상 계속 안 하게 될 것 같았다. 일을 하면서 30분쯤 고민을 하다가 잠깐이라도 물에 들어가야지, 하고 벽에 걸어둔 비키니를 주섬주서 주워 입고 티셔츠를 걸친 채 오른쪽 무릎 아래 종아리에 리쉬를 묶었다. 그래, 그냥 물에 들어갔다 나오자- 또 이렇게 다짐을 하고 해변으로 나갔다. 이곳도 역시나 리프 지역이다. 하지만 모래 지형에서부터 쭈욱 돌아 들어가면 된다. High tide라 라인업에 가면 깊어서 괜찮다.
이곳의 라인업은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치우친 피라미드형이다. 파도가 없는 곳으로 돌아서 쭈욱 5분가량 패들을 해서 들어가면 라인업에 도착한다. 피크에서 타고 내려오는 서퍼가 있다면 패들링을 하지 않고, 없다면 내가 서있는 곳에서 패들링을 해서 잡아 타면 된다.
조금씩 보이는 사람들, 한 겹을 넘어가니 또 저 멀리 사람들이 있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연어들처럼 쭉쭉 라인업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혹시라도 힘을 다 빼버릴까 싶어 천천히 나아갔다. 아,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덤프도 없이 부드러운 파도가 쭉쭉 밀려들어왔다. 한 겹 한 겹 지나 가장 멀리 나가 있는 서퍼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오는 중에도 능숙한 서퍼들이 파도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신이 났다. 파도를 잡으려고 시도했다가 잡힌 느낌이 났는데 아,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잡혀버렸다는 기분에 테이크 오프를 안 하고 그냥 넘겨버렸다. 에잇, 나 왜 또 겁먹냐. 그다음에 또 파도가 왔다. 잡혔다. 테이크 오프를 했지만 겁이 났는지 무게중심을 뒤로 줬고 또 아웃이 됐다. 또 어느새 온 파도에 패들을 했고 쭈욱 글라이딩을 했다. 피크에서 내려오는 서퍼들이 있었다. 글라이딩을 하면서 좀 지켜보다가 테이크 오프를 했지만 파도가 죽어버렸다. 으, 아까워.
어떤 서퍼는 파도를 잡고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그 상태로 쭈욱 라이딩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서퍼들. 누군가 라이딩을 하고 쭉 내려오면 여기저기서 함께 환호성을 지른다. 롱보더들의 천국에 와서 저렇게 멋지게 라이딩을 하는 서퍼들을 눈으로, 그것도 가까이서 벅찬 마음으로 보고 있다. 언젠가는, 아니 조만간 나도 저런 멋진 라이딩을 할 거야, 다짐하며.
아, 들어오길 잘했다. 안 들어왔으면 어쩔뻔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