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마을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지구 정 반대편에 와왔다. 시차는 무려 15시간이나 되는 곳이다. 멕시코시티에서도 비행기로 1시간 반, 버스로 1시간을 달려 Nayarit 지역의 서쪽 끝, Punta de Mita라는 마을에 왔다. 골프클럽, 럭셔리 리조트가 많아 휴양지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내가 지내는 곳은 럭셔리함과는 정 반대의 모습이다. 개발이 안 된 빈 부지가 대다수고 해안가에는 럭셔리한 리조트들이 늘어서 있는 격차가 심한 마을처럼 보였다. 내가 이 낯선 마을에 온 이유는, 서핑이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수영장에서도 벌벌 떠는 사람이다. 누워서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서핑 영상을 주구장창 보다가 정말 아름다운 곳을 발견했다. 서퍼들이 멋지게 노즈 라이딩을 하는 영상이었다. 그 영상의 배경은 La saladita, Mexico 다. 그래, 나 여기에 가야겠어. 결심하고 제주와 서울에서의 일상을 정리하고 훅 날아와버렸다.
멕시코 타코도 마음껏 먹고 바다 옆에 살면서 더우면 수영하고 파도가 좋으면 서핑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일도 해야 했다. 여행하면서도 일을 할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품었던 질문이었고 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왔지만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목적지를 정하지도 않고 무작정 떠나왔기 때문에 정착할 집이나 일할 공간을 찾아다니는 시간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자연스레 일할 시간이 줄었다. 이동하는 날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날은 더워서 잠깐 나갔다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고 서핑을 하고 오면 피곤해서 일하면서 졸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서핑 실력이 눈에 띄게 늘지도 않았다. 한국에서보다 더 못 하는 것 같은데? 집 떠난 지 2주가 되었을 무렵, 회의감이 들었다. 서핑도 바다도 즐기지 못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만 바라보고 있었다. 음, 나 잘하고 있는 건가?
내 표정을 바라보던 서핑 메이트가 일침을 날렸다.
"잘하고 있는 거야, 이건 과정이잖아. 앞으로 더 잘하면 되고."
그래, 이것도 시행착오니까. 성장하는 과정이겠지, 스스로를 다독였다.
현재 나는 Playa punta de mita 근처 스테이에서 머물고 있다. 바다 근처로 이사 온 뒤로는 일상이 단조로워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메일을 체크한다. 아침을 먹고 나서 오전 업무를 보거나 바다에 나가고, 서핑을 즐기러 해변에 간다. 배고프면 밥을 해 먹고, 옆방 첼시의 강아지 코코를 반긴다. 해가 지고 나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이 마을에서 발견한 마을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서핑을 하고 타코를 먹는다는 점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타코를 먹거나 서핑을 한다. 이 마을에서 장도 보고 음식도 해 먹고 길거리 타코도 사 먹으며 지내보니 골목골목 타코집이 정말 많이 보인다. 일반 가정집에서 타코를 만든다. 손 맛이 좋은 가정집에서 타코를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맛있다. 일정 시간 왔다 사라지는 타코 트럭도 많다. 그리고 멕시코 사람들이 즐겨먹는 간식 츄러스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스페인어라고는 고작 안녕, 카드 계산돼? 고마워, 나 여기 머물러, 여기 진짜 맛있다고 들었어, 이거 먹으려고 또 왔어, 정말 맛있어, 이거 이름이 뭐야? 정도다. 기본적으로 많이 쓰게 되는 Puedo(나 ~ 할 수 있어?), 동사 + re(나 ~ 할 거야), 동사 + e/i(나 ~ 했어)에 아는 단어들을 조합해서 이야기한다. 그들이 들으면 아.. 안녕하... 세요 정도로 들리겠지만 꿋꿋하게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여행을 가면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이들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잘못 이야기하고 있는 단어를 고쳐주기도 하고 perfecto(완벽해), muy bien(잘했어) 응원을 해주기도 한다. 버퍼링이 걸리는 나를 기다려줄 줄 아는 그들. 참 친절하다.
타코 집에서 만난 노부부와 한참 이야기를 했다. 개발 관련 일을 해서 멕시코와 미국을 왔다 갔다 하며 여행을 즐긴다고 했다. 콘소메를 추천해줘서 주문한 콘소메는 정말 맛있었다. 길거리 타코의 맛은 모르는 사람과 이루어지는 대화의 묘미가 아닐까. 아저씨가 얘기한다.
"넌 타코 잘 먹으니까 이제 메히까나야"
맛있다고 소문난 타코 집에 갔다. 뉴욕에서 차를 끌고 이곳까지 서핑 트립을 온 루까스와 파타고니아 출신 숏보더 후안을 만났다. 타코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는 파도가 좋다는 라란차에서 다음날 보기로 했다.
"내일 라란차 가? 그럼 내일 보자"
캐나다에서 온 옆방 첼시가 츄러스가 정말 맛있는 곳이 있다며 데려가 줬다. 츄러스 맛에 반한 나는 다음날 서핑 끝나고 또 갔다. 내 몰골을 보더니 이렇게 얘기한다.
"난 아까 2시에 다녀왔는데 오늘 파도 별로더라"
"아 아쉽다, 엇갈렸네. 나는 3시부터 했는데"
또 하나, 이 마을 사람들의 특징은 잘 웃고 유쾌하다는 거다.
이 마을이 좋다. 나도 덩달아 웃게 되고 유쾌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하는 내 소소한 활력소가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