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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as Mar 22. 2022

오늘도 바다에 들어갑니다.

멕시코 한 달 살기 


바다 앞에 살고 있다. 꿈꾸던 바다 앞에서 한 달 살기를 실현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옥상에 올라가 파도를 체크하고 '좋아, 오늘도 가보자!' 다짐을 한다. 다시 방에 들어와 널어놓은 수영복을 주섬주섬 주워 입은 다음 계단을 내려간다. 오른쪽 종아리에 리쉬를 메고 보드를 가지고 해변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한다. 충분히 해도 되지만 항상 마음이 급해 그냥 풍덩 들어가곤 한다.


La saladita 해변의 라인업은 꽤 멀다. 부지런히 패들링을 해야 한다. 매일 바다에 나가다 보니 자주 보는 사람들이 있다. 눈이 마주치면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한다.

Hola, Hi, Good morning!


요즘은 스몰 웨이브가 계속 들어온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피크에서부터 내려오는 서퍼를 구경한다. 어떤 서퍼는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어떤 서퍼는 보드의 앞뒤를 바꿔서 라이딩을 하며 멀리서부터 쭉 내려온다. 사람이 많아 경쟁률이 센 날에는 내가 파도를 잡을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좋다. 서퍼들이 라이딩하는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Jamie O'brien을 포함해 수많은 프로 서퍼들을 바다에서 만났다. 보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됐다.


피크에서 내려오던 서퍼가 와이프 아웃을 하거나 넘어지면 기회를 보다가 패들링을 시작한다. 파도가 잡히고 파도면을 따라 쭈욱 미끄러져 내려올 때의 느낌, 글라이딩 할 때의 그 짜릿함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느낌 하나로도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파도가 밀어주는 힘을 따라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중심을 잡고 왼쪽 사이드로 보드를 돌리면 해변까지 롱 라이딩을 할 수 있다. 크고 작은 파도를 타다가 핀이 파도 거품에 딱 걸린 느낌이 들었다. 처음으로 앞으로 걸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슬금슬금 노즈 쪽으로 걸어갔다. 한걸음 두 걸음. 와, 뭐지? 왜 이렇게 안정적이지? 아직 노즈까지는 한참 남았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정말 신나!


그렇게 라이딩을 한 번 하고 다시 패들 해서 라인업으로 들어갈 때 내 얼굴에는 배시시 바보 같은 웃음이 걸려있다. 내 얼굴을 본 서퍼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이 친구 재밌는 라이딩을 했구나!'


나와 같은 얼굴을 한 서퍼들을 만나면 행복이 배가 된다. 같이 행복하자고!






어느 햇살 좋은 날,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느지막이 들어간 바다에서 멋쟁이 할머니를 만났다. 사실 멋지게 라이딩하는 모습을 며칠째 멀리서 보고만 있었다. 멀리 들어가면 더 재미있고 파도도 더 많이 온다며 같이 들어가자고 하는 그녀에게 나는 정말 멋지다며, 서핑을 얼마나 했냐고 물었다.


40년? 아니 35년간 서핑을 했다는 그녀는 푸에르토 리코에서 이곳에 날아와 남편과 매일 서핑을 한다고 했다. 이건 네 파도라며 지금 패들 하라고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었다. 서둘지도 않았다. 주변 서퍼들의 모든 인사를 받아줄 수 있는 여유와 다정함까지. 내가 닮고 싶은 모습 그 자체였다. 


나도 35년쯤 지나면 그녀처럼 멋진 서퍼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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