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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as Nov 11. 2023

호주에서 집 없이 생존하는 법

호주의 캠핑문화, 내가 스텔스 차박을 선택한 이유

집 없이 살아가기.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나는 여행을 갈 때도 항상 숙소를 가장 먼저 찾아보던 사람이다. 그만큼 잠의 퀄리티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비싼 호텔을 이용하진 않는다. 운이 좋게도 불면증 같은 것도 없고 머리만 대면 잘 자는 편이라 항상 내 선택은 백패커스 도미토리다. 하지만 종종 삐걱대는 이층 침대, 아래나 위층 사람의 뒤척임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침대를 만날 때면 예민해지기도 했다. 오히려 차에서 자면 나 혼자만의 시간을 조용히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집을 렌트하는 대신 차를 산 이유에는 서핑도 있었다. 차를 사면 내 보드를 싣고 원하는 해변에 가서 언제든 서핑을 즐길 수 있으니까.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기회였다. stealth camping 스텔스 캠핑, 차 안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며 쓰레기도 최소한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 처음부터 없었던 듯 조용히 허용된 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떠나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캠핑 의자도, 테이블도, 텐트도 구입하지 않았다.






차에서 살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 해야 할 것들을 적어봤다. 


- 창문 프라이버시

- 잠의 질을 높여줄 매트리스

- 냉장고

- 수납공간

- 조명

- 샤워

- 각종 전자기기 충전

- 어디에서 잘 건가


이중 가장 시급한 건 의식주에 해당하는 어디에서 잘 건가, 어디서 씻을 건가, 그리고 현대사회에 발맞춰 살아가기 위해 전자기기 충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정도였다. 가장 먼저 알아본 건 샤워시설.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주로 24시간 이용 가능하고 여러 군데 지점을 넘나들며 이용할 수 있는 헬스장이 있다고 한다. 지점 이동을 하며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헬스장은 없지만 누사에서 주로 지내는 내게는 괜찮은 옵션이었다. 그리고 해변에는 차가운 물만 나오지만 샤워장이 많이 구비되어 있으니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다음 고려할 옵션은 포터블 차저였다. 블루티, 재커리 브랜드를 많이 이용하는데 노스 퀸즐랜드 로드트립을 떠날 때 우연히 만난 친구가 써보라고 빌려줘서 블루티 배터리를 이용해 봤다. 호주에서는 전기를 충전하려면 식당, 카페의 전기를 이용하거나 캠핑장의 powered site를 이용해야 한다. 쉽지 않다. 차에 소켓 socket이 있는 경우 소켓 차저를 구입해서 주행 중 차의 배터리를 이용해 전기 충전이 가능하다. 나는 배터리가 사르르 녹아버리는 아이폰 미니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충전을 자주 해줘야 했는데 둘 다 유용하게 잘 썼다. 


사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차다. 오버나잇 주차가 가능한 곳을 찾는 게 쉽지 않다. 호주에는 워낙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어릴 적부터 부모와 함께 떠나는 캠핑이 일상인 가정이 대부분이다.) 주차장은 인산인해다. 참고로 누사 내셔널 파크 주차장은 오버나잇 주차가 금지되어 있다. 그래도 방법은 있을터! 구글맵, 캠퍼메이트(어플), 친구찬스 등등을 활용해 호주에서 집 없이 생존하기 시작.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캠핑장 이용하기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캠핑이 허가된 구역을 이용료를 내고 이용하는 것이다. 가장 쉽고, 안전한 방법이다. 캠핑문화가 활발한 호주에는 무료 캠핑장도 많지만 내가 주로 거주하고 일을 하는 누사 지역에는 홀리데이 파크가 많아(가족 단위로 주말에 캠핑하러 오는 곳 : 테마파크처럼 수영장도 있고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또, 노지의 경치 좋은 무료 캠핑장의 경우는 거의 주차장과 다르지 않고 공중화장실마저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오수시설, 키친이 갖춰지지 않은 내 작은 차로는 어렵다. 


호주에서 캠핑을 한다면 필수 앱인 위키캠프, 캠퍼메이트. 위키캠프는 유료 앱이라 나는 캠퍼메이트와 힙캠프를 주로 이용하고 있다. 앱 자체는 그렇게 활성화되어 있는 편은 아니라 어느 정도 업데이트 시기를 감안하여 이용해야 한다. 반면 캠핑 장소의 코멘트는 굉장히 유용한데 읽어보면 어느 정도 어떤 시설을 갖추고 있고 어떤 분위기인지까지 알 수 있다. 캠핑장 이용 가격 또한 천차만별이다. 주애서 관리하는 시설은 10불에서 29불 정도. 공용 주방이 있는 곳도 있고 샤워장과 화장실이 깨끗한 편이다. 따로 관리하는 사람이 없고 마을에서 가끔 휴지와 고장 난 시설을 고치는 정도만 관리하는 곳은 기부제로 운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고속도로에 있는 캠핑 사이트는 대부분은 무료이고 공용화장실(가끔 샤워실이 있기도 하다.) 정도만 있다. 물론 머물다 간 자리는 깨끗하게 흔적을 남기지 않고 오는 게 기본 매너다. 에얼리비치까지 다녀오는 로드트립에서 나는 거의 무료 캠핑장을 이용했다. 



두 번째, 하우스 시팅으로 오지 집 체험하기

하우스시팅은 호주에 살면서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건데 집주인이 여행을 간 사이 그 집을 돌봐주는 일을 하는 거다. 그 집에 살면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돌보고 정원을 돌보는 일을 하며 그 집에 머무는 것. 내 노동력을 제공하고 집을 제공받는 시스템이다. 호주 현지 집을, 그것도 통째로 혼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주로 집이 없는 여행자, 캠퍼들이 많고 하우스 오너들은 여성 혹은 커플을 선호하는 듯하다. 자기소개서를 정성스럽게 쓰고 강아지들과 찍은 사진을 게시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빠른 날짜부터 사람을 필요로 하는 하우스 오너에게 연락을 했다. 첫 번째로 연락한 그들과 바로 연락이 닿아 돌아오는 주말에 바로 찾아갔다. 


중년 부부의 집이었는데 로드트립을 가는 동안 아늑한 별채를 통째로 내가 사용하게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닭 모이를 챙겨주고 시간이 되면 안전하게 축사에 넣는 일, 정원 식물에 물 주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의무였다. 정원이 정말 컸는데 스프링클러가 잘 갖춰져있지 않아 일이 조금 많은가 싶긴 했지만 내가 이렇게 큰 정원을 가져볼 일이 있을까? 싶은 마음에 평화롭고 재미있을 것 같다며 바로 하겠다고 했다. 널찍한 테이블도 있고 마당에 불을 피우고 불멍을 때릴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욕실이었는데 물탱크에 연결된 샤워기 그리고 그 아래 놓인 욕조가 전부인 오픈된 야외 욕실이었기 때문이다. 밤에는 별이 보이고 낮에는 해가 내리쬐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입주 첫날 와인 한 잔 들고 모닥불을 쬐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나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지내는 동안 편하라고 많은 것들을 챙겨주셔서 정말 따뜻했다.


“가족들은 안 와? 친구는 어디 살아? 초대해서 같이 지내도 돼”

처음에는 빈말인가 싶었는데 친구 어디 사는지 물어보고 기차, 버스 시간표를 직접 알아봐 주려고 하는 걸 보니 진심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로드트립을 떠난다는 멋진 부부. 그들을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로드트립에 다녀온 부부와 함께 이후에도 시간을 보내면서 같이 김치를 만들기도 하고 여러모로 내 로드트립에도 도움을 받고 언제든 갈 수 있는 고향집 같은 곳이 되었다. 물론 나처럼 모든 하우스 오너들과 이런 관계를 맺고 지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종종 이런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사람 인연은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세 번째, 친구네 집 혹은 한적한 골목

친구네 집에서 머물거나 주차장을 빌리는 경우, 그리고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스텔스 차박을 하며 눈을 잠깐 붙이고 새벽에 떠나는 것인데 사실 그렇게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다. 처음 차를 사고 친구네 며칠 머물면서 스텔스 차박을 위한 준비를 했다. 아마존으로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커튼과 수면의 질을 높여줄 메모리폰 매트리스를 주문했다. 그리고 옵샵에서 침대 시트를 사서 대충 잘라 창문 커튼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친구네 소파에서 생활하다가 스텔스 차박을 하는 첫날. 전에 봐둔 한적한 골목에 가서 몇 바퀴 돌다가 어두운 곳에 주차하고 잠들었다. 주문한 매트리스는 배송되기까지 시간이 걸려 매트리스 없이 딱딱한 차에서 자야 했다. 몸도 배기고 새벽에 추워서 자는 동안 몇 번이나 깼다. 그리고 정말 추천하지 않는 방법인 골목 주차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 한 두 번만 하기를.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이라 어쩔 수 없이 공항 노숙을 할 때처럼 정말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말이다. 누가 와서 살펴보지 않을까, 들키면 어떡하지 불안한 마음에 잠을 뒤척일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얼마간은 차에서 지내고, 얼마간은 다른 집에서 지내고 하는 과정에서 짐을 쌌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하루 이틀 이렇게 머무는 경우는 짐을 절반정도만 풀고 다시 싸서 차에 싣는 식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체계가 생겼다. 필요 없는 물건들, 버려야 할 것들도 추려졌다. 그래서 지금 내 차(내 집)는 정돈이 꽤 잘 되어있는 상태다.


가끔은 컨디션 조절이 안 돼 몸이 아프기도 하고 어떠한 계획도 없기에 누군가와 약속을 할 때면 확답을 할 수 없어 답답하기도 하다. 여전히 호주에서 집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는 중이고,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는 중이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게 될지, 어떤 새로운 인연이 생길지, 어떤 새로운 걸 알게 될지 기대가 된다. 꽤나 순항 중인 나의 호주 생존기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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