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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를 주는 관리자’에서 ‘성장을 돕는 관리자’로

상대평가의 부작용을 넘어서는 실천 전략

by 김용진

1. 상대평가에 대한 오해와 진실


기업에서 상대평가를 도입하는 순간 흔히 등장하는 말이 있다
“이건 줄 세우기밖에 안 된다”
“또 B를 주라는 거네”
“결국 네가 살아남으려면 옆 사람보다 나으면 되는 거잖아”


나는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한다.

“상대평가는 줄 세우기 제도가 아니다. 성과를 통해 조직의 성장 방향을 정렬시키는 방식이어야 한다”

회사의 HR 담당자가 나에게 이렇게 넋두리했다.

“팀장들이 그냥 감으로 점수를 줍니다. A를 주고 싶은 사람은 주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나중에 찾습니다”

그래서 나는 되물었다.

“그렇게 운영되면, 평가를 신뢰할 수 있을까요?”

그 담당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직원들은 이미 결과를 예상하고 있어요. ‘나는 또 B겠지’라고요”


상대평가를 실패하게 만드는 진짜 원인은 제도 자체가 아니라 그 제도를 활용하는 방식에 있다.


2. 제도적 관점: ‘고통을 나누는 평가’에서 ‘성장을 만드는 평가’로


조직이 해야 할 일은 평가를 ‘투명하게, 일관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인사팀과 워크숍을 진행할 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 회사에서 B등급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대부분의 회사에서 답은 이렇다.
“그냥 평균이라는 의미죠.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때 나는 말한다.
“B는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안전한 등급이 아니라, 명확한 경계와 의미를 가진 평가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구조적 장치가 있다.


제도적 대응 전략 중 가장 핵심적인 출발점은 ‘목표기반 평가(MBO·OKR)’이다.

구성원들은 평가 기준이 상대적 비교가 아니라 ‘합의된 목표 대비 수행 성과’로 존재해야 공정성을 느낀다.

목표가 명확히 합의되고 그 달성 정도를 기준으로 평가가 이루어질 때 평가 과정은 신뢰를 얻는다.


또한 ‘직무단위별 탄력적 강제 분포’가 필요하다. 팀의 규모나 직무 특성이 다름에도 동일한 강제 분포를 적용하는 것은 왜곡을 발생시킨다. 소규모 팀이나 특수 직무에는 강제 분포를 완화하거나 적용하지 않는 유연성이 필요하며 이는 평가의 신뢰성을 높인다.


하위 등급자에 대해서는 ‘개발형 접근(PIP : Performance Improvement Plan )’이 중요하다. 단순히 낮은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선 계획을 제시하고 코칭을 제공하며 일정 기간 후 재평가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설계해야 한다. 성과가 낮은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니라 성장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보상 방식에 대해서도 다면적 접근이 필요하다. ‘보상체계 다원화’를 통해 개인성과 100% 중심의 보상 구조에서 벗어나 팀성과와 조직성과를 함께 반영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개인 간 경쟁을 줄이고 협업 기반의 문화를 강화한다.


평가 운영 방식은 ‘상시 피드백 구조’여야 한다. 연말 한번 하는 연례 평가 방식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다. 성과 관리와 피드백은 실시간적이어야 하며, 분기 또는 프로젝트 단위 피드백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지속적 피드백은 평가의 질을 선진화한다.


마지막으로 제도는 정착형이 아니라 ‘개선형 운영’이어야 한다. 매년 동일한 평가제도로 운영하려 하지 말고, 실제 운영 과정에서 구성원 의견을 수렴하고 제도의 효과를 분석하여 필요한 설계 변경을 지속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평가 제도는 조직 성장과 함께 적응하고 진화한다.


나는 하위 등급자에게 PIP를 적용하는 과정을 직접 본 적이 있다.

한 팀장이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 하지만 난 당신이 이 역할에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어. 다음 분기에는 이것을 함께 개선해보자”

그 말 한마디는 그 직원에게 ‘낙인’이 아니라 ‘가능성’을 전달했다.


3. 평가자의 관점: 점수 전달자에서 성장 코치로


평가자 역량은 상대평가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나는 팀장 교육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평가는 권한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평가자는 점수를 매기는 사람이 아니라, 성장의 관찰자여야 합니다”


다음은 실제 일대일 면담에서의 대화 예시이다

직원: “팀장님, 제가 올해 C를 받은 이유를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팀장: “그래, 그 이야기 꼭 하려고 했어. 네가 올해 업무 처리 속도와 의사소통 측면에서는 뛰어났다는 점은 인정해. 하지만 팀 목표에 대한 이해와 우선순위 설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있었어. 그래서 다음 분기에는 그 부분을 함께 개선해보고 싶어”


직원: “듣고 보니 이해가 되네요. 그 방향으로 노력해보겠습니다”

이런 피드백은 구성원을 납득하게 만들고, 결과보다 과정을 이해하게 한다.


4. ‘누가 최고인가’에서 ‘누가 성장하고 있는가’로


평가 시즌이 되면 회사 분위기는 종종 이렇게 바뀐다.

옆자리의 동료가 경쟁자가 되고
협업의 대상이던 사람이

비교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평가자는 ‘누가 성장하고 있는가’를 보는 사람이다. 등급은 성장을 위한 좌표이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느 제조 기업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평가 시즌이 끝난 뒤, 신입 직원 한 명이 팀장에게 말했다.
“저는 올해 B를 받았지만, 작년의 저보다는 훨씬 더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팀장은 이렇게 답했다.
“그래, 맞아. 그래서 난 네가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고 있어. 그 성장 흐름이 지속된다면, 내년에 A를 받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이것이 바로 성장형 평가의 핵심이다.

인재를 누가, 무엇을, 얼마나 성취했는가로만 보지 않고
얼마나 개선하고,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팀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보고 평가하는 방식이다.


5. 평가자의 태도는 곧 조직의 문화가 된다


평가를 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질문이 있다
“왜 이 사람인가?”가 아니라
“왜 이 등급인가?”라는 질문이다


나는 팀장들에게 교육할 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사람을 등급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등급을 통해 업무 성과를 구조화하는 것입니다”


우수한 평가자는 증거를 모은다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연간 행동 데이터를 쌓는다

협업 사례

성과 기여

프로젝트 참여 수준

역량 개발 노력

동료 피드백

관찰 기록


평가에서 중요한 것은 점수의 객관성뿐 아니라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피평가자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6. 결론: 상대평가는 도구일 뿐, 목적이 아니다


상대평가는 칼과 같다.
칼은 도구일 뿐이다.
칼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칼을 쥔 사람의 태도와 기술이 중요하다.


평가는 조직의 문화를 반영한다.


성장하는 조직은
평가를 ‘선발’이 아니라
‘육성’의 관점에서 활용한다.


평가자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지금 이 직원을 돕고 있는가?”
“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을 평가하고 있는가?”
“나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을 보고 있는가?”
“나는 등급이 아닌 성장 경로를 전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조직에서 상대평가는 더 이상 경쟁과 불만의 제도가 아니라
신뢰와 성장의 촉매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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