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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전 Jul 09. 2020

실패한 엄마라는 말이 있나요

'엄마'라는 단어

"엄마"

마트에서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거린다. 

세상에 수많은 어휘 중에 '엄마'라는 단어는 가장 고귀하고 소중해서 애절하기까지 하다. 세상에 '엄마'가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엄마가 되고 나면 이제 이 호칭은 영원히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난 '엄마'가 되기를 어릴 때부터 늘 꿈꿔왔고, 더 나아가 '좋은 엄마'가 될 거라고 자신했다.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나는 '엄마'가 되었다. 그냥 엄마가 되고 싶었던 마음만 있었지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엄마이다.

우왕좌왕하던 엄마라는 역할이 익숙 해면서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워킹맘으로 두 아이를 키우기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힘이 나고 흥도 났다. 그렇게 듣고 싶어 하던 '엄마'가 나도 되었으니까 그것으로도 내 인생은 만족했다.


큰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 때, 나는 이혼을 선택했다. 누구의 '아내'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하기까지는 수많은 나날을 고민하면서 힘들어했던 과정이 있었다. '아내'는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는 호칭이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다. 난 '엄마'라는 역할은 포기할 수 없었다. 싱글맘이지만 이 두 아이를 보란 듯이 잘 키워낼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혼하는 과정에서 아이 아빠와 나는 아이들을 가지고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상처 받기 시작했다. 난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이미 날 '나쁜 엄마'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뭐지? 

그때 변호사가 나에게 물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양육권과 친권을 그냥 포기하시는 게 어떠세요?"

절대로 포기 못 해!

이럴 줄 알았는데 엄마로서 내가 당시 아이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포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어릴 적 읽었던 솔로몬의 선택 이야기가 생각났다. 진짜 엄마는 아이가 다치지 않기 위해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제야 이해했다. 하지만 난 너무 두려웠다. 내가 이 아이들을 포기하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비난할 거 같았다. 

실제로 어느 날 너무 속상해서 아이 친구 엄마랑 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엄마가 나에게,

"자기 살길 갈 거라고 애를 버려? 넘 이기적이지 않아?"

소리 나지 않는 총이 있다면 그 엄마를 쏘고 싶을 정도로 분노스러웠던 나의 감정이 아직도 생각난다.

제발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았으면서 마치 진리를 알고 있다는 듯이 남을 쏘아댄다.

세상에 물론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아이를 버리고 간 엄마, 아이를 학대하는 엄마와 같이 '저게 엄마야?"라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식이 늘 먼저인 엄마, 퍼주기만 해도 모자란 엄마가 더 많다. 내가 자식들을 포기할 때는 '오죽하면'이라는 단어도 함께 제발 사람들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난 아직도 '포기했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잠시 '미뤄뒀다'라고 믿는다. 나는 이혼 후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엄마의 역할은 'to be continued'라는 생각으로 지금도 매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늘 내 귓가에는 아이들의 '엄마'소리가 맴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제 나는 '친모' 혹은 '생모'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지 모른다.

옛날 어른들이 '세월이 약이다'라고 하던 말도 이젠 알 거 같다.

너무 힘이 들 때 우연히 읽은 글 하나가 나를 일으켜 세운 적이 있다.

'신호등에서 빨간 등은 멈춰서 기다리라는 신호이며, 기다리면 다시 녹색 등이 오고 그때 지나가면 되듯이 인생의 실패라고 느끼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단지 빨간 등 아래 잠시 기다렸다 가라는 신호이다'

나에게 녹색 등이 오면 다시 내가 가려던 길을 갈 수 있듯이 지금은 잠시 아이들도, 나의 엄마 역할도 빨간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엄마'라는 단어는 그냥 '엄마'로 충분하지 '어떤 엄마'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실패한 결혼'은 사실이지만,  난 '실패한 엄마'는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다. 

사실 그 말을 들을까 아직도 두렵고 무섭다. '네가 바로 실패한 엄마거든'이라고 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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