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미하 Dec 11. 2022

검은 道

휴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휴는 그렇게 물었다. 나는 입을 열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휴를 쳐다볼 수도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라.. 그럴 수 있다라... 


 모호한 단어들은 뭉툭하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우리 둘만의 이야기이기에 모호할수록 단어가 살기를 띤다. 경계를 오가는 말들을 주의해야 한다. 날카롭게 갈려 구체화된 내용이 나를 공격하고 만다. 그러다 또 무뎌진다. 몇 번 찌르지 못하고 수명을 다한다. 맞아, 그래 봤자 나무칼이다. 휴는 잘못된 것을 다시 말해보라고 한다. 왜인지 한숨 누그러뜨린 채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 잘못된 상황에 대해 묻는다. 슬쩍 웃어 보이며 살짝 빗나가길 바라본다. 이 같은 상황에 처할 때마다 토할 것 같은 느꺼움이 몰려왔었는데 이제는 그저 스쳐 빗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아, 방심하던 새에 제대로 내리쳤다. 삭-소리와 함께 높은 온도의 무엇이 자리를 박차고 도망친다. 휴는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나는 그런 휴를 눈 똑바로 뜨고 봤다. 알 수 없이 포화된 단어들을 꺼내본다. 탁- 제대로 맞았다. 몸의 정중앙을 노렸고 생각한 대로 텅- 소리와 함께 튕겨 나왔다. 안 그래도 뭉툭한 단어들이 휴의 보호구에 막혀 큰 자극을 주지는 못했다. 나는 가슴을 쳐 휴의 단어가 빗나가게 하려고 했다. 휴는 이미 다 알고 있다. 휴는 모든 보호구를 벗고 내려놓는다. 뭐라고 한 마디 하더니 사라진다. 빛이 방사형으로 오다가 갑자기 펑! 소리를 내며 주변은 어둠이 한 픽셀도 없는 양 온전한 흰색을 띤다.


 휴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계의 생동을 감각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