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깨달을 뻔했다.
가끔 생각한다. 이제 팬데믹 이전으로 온전히 돌아가 그때처럼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유럽에 지천으로 깔린
꿀과 우유가 흐르는 스페셜한 명상센터를 또 갈 수 있을까...
스웨덴의 칼스타드에 자리 잡고 있는 엥스바카 (Ängsbacka) 센터는 유럽에 사는 명상인에겐 유명한 곳이다.
내가 사는 노르웨이의 남쪽 아렌달에서 오슬로, 다시 스웨덴의 칼스타드까지 버스로 약 9시간.
같은 북유럽이지만 노르웨이랑 어딘지 때깔이 틀린.
엽서에서 막 튀어나온 호수.
햇볕이 빽빽한 숲 사이로 화살을 날려 심쿵하게 내 심장을 관통하던 곳.
빨간 사과를 먹을 수 있는, 아담과 이브가 살던 금단의 구역처럼 자리한 이곳은 엥스바카.
여기서부턴 엥스바카의 영역인 것처럼 거지인듯,히피인듯 해피 히피들이 입구서부터 보인다.
세라피스트로 활동하는 프라티빠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한다, 입에 음식이 가득 든 채로.
프라티빠는 한국 고등학교에서 오랜 시간 영어선생을 하다가 방학만 되면 인도와 유럽으로 훌쩍 떠나 살던 생활을 몇십년째 하고 있었다. 그런 세미히피의 생활을 하다 과감히 사표를 던진 그녀는 본격 히피로써의 삶을 살고 있는 중이였다. 그런 그녀를 인도서 몇 년전에 보고, 유럽서는 처음 보는 것이였다. 루시 루를 닮은 씩씩한 그녀는 테라피스트로써 삶을 살며, 가방 하나면 어디로든 튈 수 있는 자세가 올바르게 갖춰진 히피였다. 그녀의 이름 역시 산스크리트 어식 인도 이름.
엥스바카는 매달, 매주 새로운 스케줄의 화려한 페스티벌과 명상의 오묘한 접목으로 (조르바와 붓다의 컨셉이랄까) 인도의 인터내셔널 오쇼 명상센터를 유럽식으로 요리한 곳이다. 모든 프로그램과 워크숍은 영어로 진행되며, 같은 시간대에 여러 워크숍들이 진행되기 때메 골라먹는 재미가 있단 말씀.
유기농 재료로 만든 훌륭한 채식과 숙소는 포함된 가격. 물론 시끄러운 헛간 스타일의 도미토리냐, 캐리어를 옆에 끼고 관처럼 누워서 자야 되는 일인용 텐트냐, 아님 뜨거운 물 콸콸 럭셔리 민박이냐에 따라 가격이 틀려짐.
시골의 큰 농장 한 곳을 헐어 만든듯한 이곳은 얼핏 허술해 보였지만 유럽의 시스템이 실용에 주안점을 맞추었듯 건물 안은 잘 짜여있다. 천명 정도는 수용할 수 있는 큰 명상 홀과 크고 작은 워크숍 룸들, 세라피와 마사지를 위한 미니 세션 천막과 작은 오두막들, 카페, 노천 식당, 사우나(누드가 가능함. 어느 정도 명상의 단계에 올랐을 때 가야 놀라지 않고 이. 것. 저. 것. 구경하며 앉아있을 수 있음) 북 샾, 어린이들을 위한 야외 유치원, 쉐어링 그룹을 하다가도 햇볕이 나오면 미친 듯이 벗어제껴 썬텐을 할 수 있는 널고도 넓은 잔디밭들...
기타 궁금한 것은 여기로 직접 방문하삼.
엥스바카의 명상 페스티벌은 9개의 페스티벌을 메인으로 짜이는데, 이 메인 페스티벌은 보통 일주일로 구성되어있다. 그중 내가 참가한 것은 Yoga&Dance festival과 No mind festival 이였다.
요가 선생인 나는 요가와 댄스 요가도 가르쳤기 때문에, 이름 자체가 나를 위한 페스티벌 같았다.
요가 댄스 페발은 요가가 중심이 된 프로그램과 절밥을 상기시키는 유기농 음식들. 라이브로 공연되는 요가 음악들과 라이브 만트라(산스크리트어/마음의 평화를 바라는 주문)가 요란하지 않게 잔잔하게 내면을 울렸다. 유럽 전역에서 요가선생들도 많이 왔는데 앞에서 요가를 진행하는 리더보다 더 잘하는 참가자들.
한 날은 프라띠빠랑 쿤달리니 요가(*산트크리트 어로 뜻은 뱀처럼 똘똘감겨진. 즉 7개의 차크라를 깨우는 호흡 기법을 사용. 전통적인 요가는 아님)를 들어갔는데 빨간 수염을 기른 스웨덴인이 리더였다. 요기치고는 퉁퉁한 몸에 젊은이의 몸을 한 젊은이였다.
예쁜 오두막에서 진행된 요가는 대여덜명 남짓.
인도의 낙참파 향 냄새가 심각하게 침묵 사이를 감돌고, 그러다 갑자기 인도 버스를 타면 흐르던 그 시끄럽고 지랄 맞은 음악이 한번 훑고 지나가고. 참가자들은 이 갑작스러운 시장바닥 같은 같은 분위기에 당혹한 눈빛을 교환하던 중, 아 이런 것이 쿤달리니 요가 구 나하며 고개를 애써 끄덕끄덕.
리더가 요가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입으로만.
주로 하는 동작은 손을 머리 위로 뻗쳐 잼잼잼하듯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십 분 정도, 머리를 좌우로 왔다 갔다 십 분 정도 멀미날 때까지, 이빨을 딱딱 딱딱 부딪치며 손 털기 십분...
처음 접해보는 독자적인 장르의 요가 동작이었는데 프라티바가 힘들어죽겟다고 투덜거리더니 리더더러 물었다.
띠바: 리더! 질문 있음요. 당신은 왜 안 해?
리더: 난 마스터라 이미 마스터했는데.
띠바: 어 나랑 똑같네 (요가 메트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띠바띠바 거리며 쌩 나가시고)
요가로 시작해서 댄스 없이 끝난 요가댄스 페발에 비해, 노 마인드 페발은 테라피스트만 이천 명, 자원봉사만 오백 명이 될 정도로 규모가 거대했다. 버라이어티 한 콘서트가 매일 밤 두 시까지 진행됐고, 가족 세우기의 창시자 *스바기토(Svagito R. Liebermeister, 독일인으로 1995년 가족 세우기의 창시자인 버트 헬링거 박사와 공부. 가족 세우기의 테라피의 대가)를 포함한 쟁쟁한 워크숍 리더들과 신의 기타리스트라는 Estas Tonne, 스웨덴의 천재 그룹 kolonien 등 유명 뮤지션들이 대거 동원, 네덜란드 오쇼 센터의 옴팀의 진행으로 이루어진 오리지널 옴 메디테이션, 볼리우드에서 하트, 살사, 테크노 댄스까지, 다이내믹, 쿤달리니, 요가, 좌선, 승마, 가족 세우기, 각종 세라피와 마사지, 쉐어링 텐트. 크고 작은 야외 콘서트 등 옵션과 스케줄의 화려함은 과히 유명세를 탈만했다
식단도 아주 훌륭했다. 네 나라의 피가 섞였다는 남아프리카에서 온 주방장이 아주 난폭하게 고함을 질러가며 요리를 해댔는데, 맛이 죽여서 잘못하면 깨달을 뻔했다.
띠바와 난 약속을 따로 하지 않아도 주로 먹는 곳에서 만났다.
우리는 무엇이 맛있는지 정보를 교환했으며, 서로 격려해가며 음식을 주입했다. 어느 날은 티빠가 먹는데 좀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길래 노르웨이에서 가져간 유명한 오메가 3을 줬더니 금방 식욕이 돌아와 기뻤다.
(투비 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