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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필 Jan 05. 2023

나는 내 젊음이 미치도록 싫었다

마흔에 쓰는 일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세기의 꽃미남으로 여심을 흔들었던 그가 벌써 반백이 다 되어간다니. 내가 나이 먹는 건 당연하다 여기면서도 한때 흠모했던 스타들이 늙어가는 건 어쩐지 부정하고 싶어진다. 이 얼마나 고약한 팬심인가. 영화 <타이타닉>에서 케이트 윈슬렛과 호흡을 맞췄던 디카프리오. 극 중에서 그는 약혼자가 있는 연상의 여인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연하남으로 분했다. 이런 자극적인 설정은 뭇 누나들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았으리라. 덕분에 영화는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 디카프리오의 실제 연애 상대들을 보면 띠동갑을 넘어 띠띠동갑 수준이다. 25세 이하의 젊은 슈퍼모델들만 만난다고 해서 ‘25세의 법칙’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이쯤 되면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그는 그녀들을 사랑한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가진 젊음을 동경한 것일까. 디카프리오 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간 시절을 자못 아쉬워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내 젊은 날의 덧없음을. 가난하고 유약했던 청춘의 비루함을. 그 한가운데에 서 있던 초라한 내 모습을 아직도 똑똑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내 젊음이 미치도록 싫었다.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누리는 혜택보다 미숙하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성장통. 그 아픔이 훨씬 더 컸기에 1분 1초라도 서둘러 달아나야 했다.



“자기도 이제 마흔이네. 어떡하냐.”



작년에 이미 사십 줄에 진입한 남편이 놀리듯 장난을 건다. 내게 받았던 위로를 돌려주며 얄미운 미소를 짓는다. 겉으로는 상심한 척 볼멘소리로  받아주었지만 마음 한 귀퉁이에는 안도감 비슷한 감정이 내려앉는다.


‘스물’이 젊음을 상징하는 숫자라면 나는 이제 막 ‘두 번째 스물’을 맞았다. 심장이 터질 듯한 이벤트는 없어도 뜨뜻미지근한 지금도 이 나름대로 좋다. 여전히 사는 일은 캄캄하지만 지금 이대로 충분히 괜찮다. 꽃다운 나이에 내가 놓치고 지나온 것이 그 무엇이든. 한순간도 바꾸고 싶지는 않다. 어느 날 저녁, 무심히 양치를 하다 욕실 불빛 아래 반짝이는 흰 머리카락 한 올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아무리 두꺼운 파운데이션을 덧발라도 가려지지 않는 거뭇한 기미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더라도. 조금씩 깊어지며 세월에 익어가는  오늘의 내가, 나는 썩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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