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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필 Jan 06. 2023

진짜 같은 가짜를 만날지라도

“뭐가 답답해서 오셨습니까?”

“그게... 진로가 늘 고민이에요”


그때가 스물여섯 즈음되었을까. 친한 작가선배가 그 당시 ‘교주님’이라 애칭했던 역술인을 소개받은 적이 있다. 그 무렵 나의 뇌구조를 되짚어보면 일에 대한 욕심과 불안이 차고 넘쳐, 다른 영역은 가까스로 모양새만 유지하는 정도였다. 충분한 수면이나 영양, 산책이나 독서 같은 소박한 일상은 물론이고, 화목이나 우정, 사랑과 같은 중차대한 사안까지도.    


“일은 걱정할 것 없습니다. 본래 본인은 늦게 피는 꽃입니다. 꽃마다 피고 지는 시기가 다르지요. 아직은 몽우립니다”

“피지 않고 몽우리인 채로 떨어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방향만 틀지 않는다면

길은 언제고 열릴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보다 눈여겨봐야 할 게 있는데...”


말끝을 흐리는 걸 보니 무언가 중요한 말을 해주려는 것 같았다. 짐작건대, 듣기 좋은 말은 아닌 듯 했다. ‘내 천’ 자로 깊게 팬 그의 미간이 이미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지요?”

“네”

“그 사람은... 가짭니다”

“네?”

“우리 인연 중에는 진짜 같은 가짜가 섞여 있습니다”




점술의 진위보다 그의 강렬한 표현력에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대개는 ‘인연이 맞다, 아니다’ 혹은 ‘궁합이 좋다, 안 좋다’는 쪽으로 점사를 풀어내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한데, 사람의 인연을 두고 진짜와 가짜를 운운하는 역술인의 화법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그건 오행을 내다보는 역술인의 관점이고, 그저 순간을 살아가는 일반인인 우리는 그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들 삶이 끝만 보고 달리는 한낱 마라톤에 불과하다면 치열하게 살아낸 오늘이 너무 허무할 테니까. 우리가 스쳐온 인연들이 그저 쓸모없는 만남이라면. 결혼으로 묶이지 않은 관계들은 영원히 폐기 처분되어야 하는 오점에 지나지 않는다면. 사는 게 너무 재미없고 서글퍼질 테니까. 그러니 인연이라는 이름 앞에 ‘가짜’ 같은 수식어는 붙을 수가 없다. 비록 찰나의 스침이었다 하더라도. 그렇게라도 만났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스위스에서 태어난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사랑일까>라는 소설에서 ‘왜 사랑받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여덟 가지의 합리적인 근거를 추론했다.  


1. 육체 때문에 사랑받는 것

2. 돈 때문에 사랑받는 것

3. 이뤄놓은 일 때문에 사랑받는 것

4. 나약함 때문에 사랑받는 것

5. 세세한 면 때문에 사랑받는 것

6. 불안감 때문에 사랑받는 것

7. 두뇌 때문에 사랑받는 것

8. 존재 때문에 사랑받는 것


이렇듯 우리가 무엇무엇 때문에 사랑을 받는 거라면. 그 이유가 사라진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작가도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엔 ‘존재’의 이유를 든 것 같은데, 아무리 완벽한 정의를 내세워도 사랑은 역시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불완전한 감정놀음에서 달아날 수 없는 건, 인간은 관계 속에서 성장하도록 만들어졌으니 도리가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지금 내가 받는 사랑이 진짜일까 아닐까를 고민하기 이전에, 나는 상대에게 얼마나 진실한가를 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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