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부문 선정작 리뷰
영화 <컨버세이션>은 은영(조은지)과 승진(박종환)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장면마다 등장해 일상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유려한 대화의 리듬을 갖고 풀어낸다. <컨버세이션>은 총 15개의 롱테이크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영화는 굵직하게 장면을 구성하고서도 어색하지 않게 보일 수 있을까?
영화의 각 대화 장면은 대화를 이루는 말과 침묵의 관계를 넌지시 드러낸다. 일상에서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상대를 인식하고 대화의 맥락에 맞는 말을 고른다. 입 밖으로 꺼낼 말과 내뱉지 않아야 할 말을 구분한다. 영화에선 겉으로 드러난 말보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또 하나의 말 ‘침묵’이 인물의 내적 감정을 더 공고히 드러내기도 한다. 말과 말 사이 침묵은 각각의 대화 장면 안에 내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가령 두 남자가 공터에 유모차를 이끌며 등장하는 장면에서 한 남자가 친구에게 ‘애수’의 뜻을 묻는다. 상대에게서 돌아온 답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책을 읽어보라는 지시다. 두 남자는 자연스럽게 문답이 이어지지 않고, 질문에 질문을 반복하며 연신 삐걱거리는 대화를 이어 간다. 여기서 두 남자의 말 사이 침묵은 그들의 대화가 매끄럽지 않게 흐르고 있음을 알게 하며, 인물 감정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대신 내비친다. 모든 대화 장면은 일상의 복잡다단한 소재들을 토해내며 연속으로 이어져 영화를 자칫 중구난방으로 보일 수 있게 한다. 이런 영화의 매무새를 다듬기 위해 대화 장면 안 말과 말 사이 침묵을 놓아 두어 영화에 미묘하고도 동일한 호흡을 불어넣는다.
자동차 소리, 오토바이 소리, 기차 소리와 같은 배경음은 영화의 주된 공간인 도시의 분위기를 짙게 배어나게 한다. 또 각 대화 장면 사이에 이질감을 줄여주기도 한다. 한 공간에서 인물의 이동 없이 이루어지는 정적인 대화 장면과 이따금 등장하는 인물의 이동 장면(계단 이동, 택시 이동, 유모차 이동, 숲길 이동)은 적절히 조화되어 영화에 통일감을 준다. 전반적으로 <컨버세이션>은 공간보다 인물이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장면을 구성한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숲길 장면은 인물이 실루엣에 가깝게 보이고, 숲의 공간이 더 두드러지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숏 사이즈의 변경을 통해 공간의 정취를 느끼게 하며 한 편의 대화극이 끝났음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