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리코리쉬 피자> 리뷰
학교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는 남자아이들의 풋풋한 모습이 천천히 펼쳐진다. 하지만 이내 10대 청춘물을 보는 듯했던 말랑한 첫인상은 화장실 구석 한 칸에서 난데없이 물줄기를 내뿜는 변기 폭발로 인해 말끔히 지워져 버린다.
폭발에 놀라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오는 아이들의 부산스러움을 감싸 안듯 여름의 녹음을 닮은 니나 시몬(Nina Simone)의 음악 ‘July Tree’가 흘러나온다. 음악과 함께 창창한 여름을 배경으로 두고 한 여자가 걸어 나오고, 걷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던 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그렇게 영화 <리코리쉬 피자>는 두 청춘 남녀의 설레는 첫 만남을 그리며 시작된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아홉 번째 영화 <리코리쉬 피자(Licorice Pizza)>는 2022년 2월 국내 개봉해 두 청춘 남녀의 풋풋하면서도 서툰 사랑의 행로를 그린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주로 인간의 광기 어린 욕망, 파괴적 심리,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지배구조 등의 주제를 집요하게 파헤쳐 오다 최근 들어 사랑에 대해 탐구하는 작품들을 즐겨 내놓고 있다. <리코리쉬 피자>도 그 연장선상에 있으며, 특히 그의 전작 중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다루었던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를 연상케 하지만, 긴장감의 농도는 다소 옅어졌다. <리코리쉬 피자>에서는 팽팽했던 긴장감 사이를 코믹한 요소가 절묘하게 비집고 들어와 웃음을 선사한다.
<리코리쉬 피자>는 감독의 바로 이전 작품인 <팬텀 스레드>와도 영화의 톤을 달리 한다. <팬텀 스레드>가 숨겨진 이음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고 우아하게 정돈된 영화라면, <리코리쉬 피자>는 곳곳에 청춘들의 한껏 분출되는 에너지로 가득하다. 구태여 이 영화를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위치시킨다면, 스테디 캠 장면을 비롯한 현란한 영화적 테크닉을 선보이며 여러 등장인물들의 다층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그의 초기 영화들에 더 가깝다. 그의 초기 영화들이 그러했듯이 <리코리쉬 피자>도 간혹 시간적 선후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장면을 내보이며 여름의 그늘처럼 서서히 관객들을 영화 속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리코리쉬 피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열다섯 살의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스물다섯 살 성인 여성 알라나(알라나 하임)의 사랑 이야기다. 개리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사진 촬영을 돕던 알라나를 맞닥뜨리자마자 첫눈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하지만 알라나는 개리의 구애를 잠깐 불다 그칠 시시껄렁한 마음으로 치부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나간 그녀는 이후 개리가 시작한 물침대사업 파트너로 참여하게 되면서 질긴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영화는 첫 시퀀스에서부터 개리와 알라나의 로맨틱한 기류를 흘려보낸다. 초록의 여름을 배경으로 두고 한 방향으로 걷는 두 남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싱그럽고 아름답다. 카메라는 개리와 알라나의 걸음을 순순히 따라가며 두 남녀가 그릴 여정으로 관객들을 친절하게 인도하는데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말하는 소년 개리의 당차고 솔직한 면모와 “그쪽 외모, 말투 다 맘에 들어!”하고 말하는 소년의 구애에 가볍게 흔들리는 알라나의 미소를 절묘하게 포착한다. 두 인물이 주고받는 눈빛, 느슨한 텐션으로 오가는 남녀의 대화, 둘의 곁을 어루만지듯 맴도는 카메라 움직임은 영화의 로맨티시즘을 더없이 이상적으로 그려 나간다.
그러나 영화는 이내 두 남녀가 사는 세계의 차이도 살며시 내비친다. 개리와 알라나는 발걸음을 맞추어 학교 강당으로 들어서고, 여전히 개리는 알라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알라나의 작별 인사로 인해 그 둘은 헤어지게 되는데, 미처 마음도 추스르기 전에 포토그래퍼의 엉큼한 손이 알라나에게 닿는다. 알라나는 포토그래퍼의 추행에도 미동 하나 없이 지나친다. 두 남녀의 로맨틱한 장면에 불쑥 끼어든 불청객과 같은 행위는 결코 알라나의 세계가 개리의 빛나는 순수성이 쉽게 들어설 수는 없는 현실의 세계임을 말해준다. 15살의 개리와 25살의 알라나가 사는 세계는 같을 수 없으며, 그 세계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노력을 필연적으로 동반해야 했다.
<리코리쉬 피자>는 개리와 알라나의 세계의 차이를 말하면서도 줄곧 알라나의 세계에 더 귀를 기울인다. 개리의 당찬 구애에도 응하지 않던 알라나는 데이트 신청을 받은 날 저녁, 겉으로 드러낸 태도와 달리 개리를 만나러 가는 선택을 한다. 이때, 알라나의 마음은 이성적인 호감보다는 개리의 투명한 낙천성을 동경하는 마음에 가깝다.
알라나는 삶의 궤도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지만, 아역 배우로 이미 알려진 개리는 자신의 미래 또한 희망적으로 내다본다. 알라나의 내면에 더 기민하게 반응하는 <리코리쉬 피자>는 보통의 청춘 로맨스 영화와 달리 개리와 알라나의 데이트가 끝난 후, 좋아하는 여자와 데이트를 한 남자 주인공의 설렘을 따라가지 않고, 침대에 몸을 던져 애써 청춘의 불안을 달래는 알라나의 모습을 내비친다.
<리코리쉬 피자>는 알라나의 심리적 동요를 영화의 서사로 자연스레 직결시킨다. 개리의 물침대사업이 커져 나가면서 알라나의 마음도 개리에게로 서서히 다가간다. 사랑보다 우정에 가까운 교감을 보이던 두 인물은 알라나의 마음이 움직이면서 이성적 관계에 가까워진다.
영화는 개리와 알라나의 변화하는 미묘한 감정을 신체의 접촉을 담은 한 장면으로 드러내 보인다.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인물의 상반신을 비추던 카메라가 서서히 각도를 낮추어 테이블 밑을 비춘다. 테이블 밑 두 무릎이 가까워진다. 두 무릎의 부딪힘은 둘의 감정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은유해 보이며, 그 어떤 접촉보다 섹슈얼하게 맞닿는다.
때때로 개리와 알라나의 사랑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사건들로 인해 어긋나고 유예된다. 서사적 논리가 탄탄하게 메우지 못한 장면 사이사이에는 본래 영화의 긴장감을 조련하는 것에 탁월한 폴 토마스 앤더슨의 숨결이 여전히 살아있다. 이는 청소년박람회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알라나에게 자신의 사업 아이템인 물침대를 설명하던 개리는 현장을 급습한 경찰에게 체포되고, 이유도 모른 채 경찰에게 끌려가는 개리를 뒤따라가는 알라나의 눈빛도 불안하게 흔들린다. 이유를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당혹감과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 급격하게 빨라진 영화의 속도감으로 인해 영화는 이 장면에서 한껏 긴장이 고조된다.
경찰의 오해로 빚어진 이 사건은 서사적으로는 단순 해프닝일 뿐이지만, 경찰서 앞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개리와 알라나의 경계를 더욱 멀게 느끼게 하는 소리와 영상의 어긋남으로 인해 영화적 긴장감을 상승시킨다. 두 인물 간의 거리보다 더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는 관객들에게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게 하며 사건의 긴장감은 높아져 간다.
개리가 풀려나고 알라나와 다시 재회하는 순간, 영상과 사운드도 하나로 포개진다. 두 인물의 재회를 바라던 관객의 벅찬 감정은 영상과 사운드의 일치로 인해 더욱 크게 증폭된다. 활기찬 음악이 서사의 전환점을 가져오며, 청춘 남녀가 함께 거리를 내달린다. 여름날 거리를 내달리는 청춘남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청량하고 충만하게 아름답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과 각본, 촬영까지 직접 맡은 <리코리쉬 피자>는 다소 난해했던 전작들에 비해 한층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호흡으로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밝고 대중적인 영화라 평가받은 <리코리쉬 피자>는 두 청춘 남녀의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산페르난도 밸리의 거리 곳곳에 새겨 넣으며, 관객들의 심상을 절묘하게 건드려 놓는 수작으로 기억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