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matic Oct 27. 2020

<작은 빛> 빛을 만든 순간

 <작은 빛>은 오래 묻혀 있다 우연히 꺼낸 기억의 덩어리처럼 얽혀 있다. <작은 빛> 속 캠코더 영상은 영화의 카메라가 찍은 장면들 사이로 틈틈이 비집고 들어가 있다. 영화의 구조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가운데, 진무(곽진무)의 캠코더로 찍은 영상들은 영화의 시간적 선후 관계가 분명하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은 조금 다르다. 진무와 가족들이 아버지 산소를 찾아가 부패되지 않은 유골의 이장을 두고 고민할 때, 고민하는 진무의 뒷모습에 이어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을 촬영한 영상이 틈입한다. 바로 뒤이은 장면은 영화의 다른 때와 달리 시간적 선후 관계가 분명하게 과거임을 알 수 있다. 그 장면은 진무가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를 처음 발견했을 때 카메라를 작동해 보는 모습을 담는다. 한 발 과거로 역행하며, 구조적으로 교묘하게 뒤틀린 이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 아버지와 진무의 관계만 집요하게 따라가는 흐름과 어우러져 무언가 할 말을 건네려는 듯하다.

     

 진무가 아버지의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발견한 후 작동되는지 살펴본다. 진무가 사진을 찍을 때 영화의 카메라는 갑자기 집 밖으로 나와 부감으로 집을 비추고, 진무가 만들어낸 빛을 보인다. 카메라 플래시가 집 밖으로 새어 나오며 비상한 사운드와 함께 만든 빛의 순간은 이 집의 오래 묵혀 둔 역사를 정리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어둠과 만난 빛의 점멸은 마치 한 편의 삶의 드라마를 보고 화면이 꺼지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이때 집을 부감으로 잡은 앵글은 아버지의 시선과 맞닿아 있다. 영화에서 빛은 프레임 안 곳곳에 수놓이며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진무와 가족들의 일상을 밝혀 주지만 그저 외부에서 오는 주어진 것이었다. 주어진 빛이 아닌 진무가 아버지의 카메라를 작동하며 만든 빛은 스스로 만든 빛이다. 진무가 만든 빛의 순간은 집에 드리워진 어둠을 잠시나마 밝히며, 자신과 아버지 혹은 아버지와 가족들 간에 불화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이다.       


 <작은 빛>에서 진무가 빛을 만든 순간은 형광등을 새로 갈아 끼워 빛의 점멸을 만드는 유사한 순간이 있다. 그러나 진무가 아버지의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한 행위에서 비롯된 빛에만 주목한 이유는 영화에서 사진과 영상의 역할이 가족의 관계와 매우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진무의 캠코더 영상은 가족들을 기억으로 연결하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죽은 아버지와 가족들을 연결하는 과정도 아버지가 남긴 사진을 통해 이루어진다. 진무가 입원해 있을 때, 가족들은 각각 아버지의 사진을 두고 꽤 길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이 사진을 기억하는 정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아버지의 사진으로 인해 가족의 기원을 확인한다. 진무가 아버지의 카메라를 발견한 것은 가족의 기원을 확인하게 한다. 가족을 연결시켜주는 사진과 영상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다. 진무가 가족의 문제를 직면하게 하는 과정을 빛의 점멸로 그려낸 의미도 <작은 빛> 속 사진과 영상의 역할에서 기인한다. 의미를 더 부연하듯, 뒤이은 장면은 다시 아버지 산소로 돌아와 진무가 아버지의 유골을 해체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진무가 불완전해질 기억을 대신해 기록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아버지의 산소다. 처음 진무가 아버지 산소를 찾아가는 길은 양지에서 음지를 향한다. 진무가 아버지와 자신과의 관계에 얽힌 문제에 직면하기 위해서는 필히 어둠으로 파고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엄마(변중희)가 찍은 진무의 인터뷰 영상에서 알 수 있듯이, 진무는 아버지의 죽음에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유독 어두운 인터뷰 영상은 진무의 죄책감이 서린 것도 같다. 진무가 처음 산소를 찾았을 때는 아버지의 묘를 지켜만 보며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한 채 내려왔다. 다시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 산소를 찾았을 때, 처음 방문했을 때 해결하지 못했던 고민의 순간을 다시 맞이한다. 진무는 그 고민을 스스로 어둠에서 빛을 만들어 냄으로써 타개한 듯 여겨진다.


 이는 진무가 남과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하지 못한 아버지의 유골을 스스로 해체하는 것으로 증명된다. 그는 아버지와의 기억에서 얽힌 죄책감과 아버지와 가족 간에 불화의 표상으로 존재하는 유골에 박힌 나무를 뽑아내고, 유골을 해체하며 정리하는 의식을 치른다. 영화의 마지막, 가족들은 음지에서 나와 햇볕이 둘러진 양지로 나아간다. 끈끈한 줄처럼 이어진 가족들의 행진은 그들의 연대가 더 단단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행진이 빛이 환한 들판으로 나아가기에 희망을 품어본다.

작가의 이전글 <찬실이는 복도 많지> 꿈을 좇는 과정의 메타포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