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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matic Oct 28. 2020

<사마에게> 전장에서 마주한 희망의 기록

 영화의 시작,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다소 생경한 개인의 사진과 사진의 내력을 말하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사마에게>는 시작점에서 전장이라는 공간을 지정해두고 시작할 수도, 영화의 시간대를 설정해 줄 법도 한데 개인의 사진으로 시작하는 것을 선택한다. <사마에게>는 참상을 기록한 이의 과거를 밝혀주는 시작점으로 시리아 내전의 거대하고 복잡한 내막을 조망하는 것이 아닌 무너져 내린 도시에 남은 자신의 삶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였음을 표명한다.


 <사마에게>는 알레포에서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2011년부터 민간인 탈출이 이루어지는 2016년까지 5년간의 시리아 내전의 상황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의 배경인 도시 알레포는 시리아 내전의 최대 격전지이자 반군의 거점으로 공습과 폭격에 의해 폐허가 되고, 전장의 참상이 낱낱이 새겨진 도시로 변한다. 감독 와드 알-카팁은 자신이 폐허가 된 도시에 남은 이유를 밝히고, 그녀가 지키고자 한 것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다. 강하게 엄습하는 폭격의 소리와 연출일 수 없는 전장의 핸드 헬드 영상은 알레포의 생과 사를 넘나드는 현장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와드(와드 알-카팁)의 카메라는 전장의 참상을 폭로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전장에서 그녀가 마주한 사람들의 희망을 잃지 않는 일상을 함께 담는다.       


 <사마에게>는 와드가 죽음을 각오하고 촬영한 더없이 소중한 500여 시간의 촬영 분량 중에 선택된 96분이다. 와드는 시리아 내전이라는 여러 세력이 복잡하게 얽힌 현실의 소재를 두고, 전쟁의 참혹함을 폭로하는 것과 동등한 층위에 알레포에 남은 와드와 사람들의 삶을 두어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와드의 사진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와드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일어난 민주화 운동, 그녀의 결혼, 그녀가 신혼집을 구하고, 딸 사마를 갖게 되고 낳는 개인의 삶의 굵직한 순간들을 담는다. 그녀의 삶이 이어지는 자전적인 영화의 구조로 인해 정부의 억압과 공습의 순간들이 그녀의 삶에 끼어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전장에서 이어지는 그녀의 삶을 극적이게 드러내기도 하는데, 와드가 구급차에 실려 온 소년을 구하던 장면을 찍을 때, 소년은 끝내 죽음을 맞는다. 영화는 소년의 죽음을 뒤로하고, 함자의 청혼을 말한다. 또 함자와 와드의 결혼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흐름은 영화에서 반복되는 구조로 끝없이 이어지는 희망을 그린다.


 또한 와드의 카메라는 기록하지 않았으면 기억되지 못했을 이웃들의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전장의 잔해 더미들 속에서도 꿋꿋이 일상을 가꾸는 그녀의 이웃들에게도 주목한다. 급박한 폭격이 가해지는 상황 속 와드의 카메라는 끊임없이 흔들리며, 무너지는 공간을 오간다. 그런 그녀의 카메라가 이웃들의 일상에 들어오면 알레포에 남은 이들의 밝은 얼굴을 보인다. 전장이 읽히지 않는 그들의 밝은 얼굴은 그들의 도시처럼 무너져 내리지 않는 강인함을 내비친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마주하는 자연의 이미지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의미를 자아내기도 한다. 무자비한 정부군의 공습은 알레포에 거주한 사람들의 삶 곳곳으로 향한다. 공습에 의해 와드와 함자의 집 화단이 무너진다. 그들이 직접 일군 화단에 뿌리내리고 길러져 온 식물들은 공습에 의해 생명을 잃는다. 함자는 생을 겨우 부지하고 있는 식물이라도 살려보기 위한 작은 희망을 품고 화단에 물을 준다. 그들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길 바라는 작은 희망을 품은 순간은 와드의 카메라에 기록된 다른 순간과 만나 더 큰 희망을 말한다. 이어진 순간은 알레포의 도시로 비가 내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폐허가 된 도시 속에 ‘생’의 빛을 발하는 자연은 회탁의 도시 속에서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서있다. 함자가 화단에 있는 식물에 물을 주었던 마음은 비가 내리는 알레포의 모습과 이어지며 폭격의 반복에 의해 무너진 도시 알레포가 다시 생명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환기된다. 도시 위로 내리는 비와 비를 맞으며 생을 품은 자연의 이미지는 알레포의 시민들이 일군 그들의 도시가 다시 움트고 약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와드는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에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흩뿌리고 싶었음이 아닐까.

 

 <사마에게>는 폭탄이 떨어져 만든 구덩이가 아이들의 수영장이 되고, 불에 타 색을 잃은 버스가 아이들에 의해 여러 색이 채워지듯 연속적으로 절망이 휩쓸고 간 자리에 희망을 덧댄다. 영화는 전장의 참혹함을 폭로하면서도 그곳에서 역설적으로 마주한 사람들의 밝은 일상으로 그녀가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이자 자신의 도시 알레포에 남은 이유를 대신 말한다. 와드는 도시를 채우는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삶, 그들의 기억되지 않았을 일상을 그녀의 강인한 기록에 의해 마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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