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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matic Oct 29. 2020

<로마>가 구현한 다른 시점(時點)의 시공간 체험

 

 잿빛을 띈 바닥 타일에 앞선 물소리에 이어 물길이 덮쳐 온다. 흐르는 물에 반사된 하늘에는 비행기가 지나며 창공을 가른다. <로마>의 오프닝시퀀스는 단조로운 바닥의 이미지에 물길의 유려한 움직임과 물소리, 새의 지저귀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를 중첩시켜 움직이는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현해낸 시네마의 아름다움을 견지한다. 비행기는 지상과 하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며 다른 시공간으로의 이행을 돕는다. 영화의 처음과 끝, 중간에 반복 등장하는 비행기는 <로마>의 오프닝시퀀스에 위치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내밀한 사적 기억으로 향하는 시공간의 이행을 요청한다.


 <로마> 영화의 세계인 다른 시점(時點) 시공간에서 존재할  없는 관객의 시점(視點)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한 카메라의 시선으로 구현해낸다. 영화의 시공간은 1970년대의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Colonia Roma 지역으로 재현해낸 시공간이자 현재의 시공간과는 다른 영화의 세계이다. ‘감독의 지나가버린 과거의 기억에서 비롯된 영화의 시공간에서 존재할  없는 감독 자신과 카메라 혹은 관객들은 어떤 시점으로 영화세계에 머무르나?’  같은 질문은 영화를 보는 내내 지속적으로  나의 의문이었다. 다시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하수구로 향하는 물길의 움직임을 따라가던 카메라의 프레임 안으로 인물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가 포착된다. 카메라는 분주한 인물과 달리 영화의 공간 한 구석에 정박해 공간을 누비는 인물을 팬하며 겨우 포착해낸다. 클레오가 마당을 걸어오며 카메라가 위치한 곳에 근접해 올 때 카메라를 스치듯 지나쳐 가는 찰나, 이 지점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카메라의 시선은 관객에게 카메라가 존재한 위치를 인식하게 하며, 클레오의 동선을 따라가지 않는 거리두기로 인물과 관객 간의 거리를 가시화시킨다. 여기서 나는 영화의 시공간을 바라본 카메라의 시선을 다른 시점(時點)의 영화의 세계에 부재하는 존재인 유령의 입장에서 영화의 시공간을 체험하게 한다고 말하고 싶다. 따라서 관객의 시점을 ‘유령의 시점’이라 칭하고자 한다. 카메라는 영화의 공간 한 지점에 정박해 인물의 동선을 따라가는 것에 소극적이며, 간결한 카메라 움직임의 속도와 인물의 움직임 속도는 차이를 보인다. 카메라는 느리게 패닝하며 공간을 훑는 것에 더 치중하고, 빠르게 움직여 프레임을 빠져나가는 클레오를 뒤늦은 템포로 다시 포착하는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이러한 움직임의 리듬은 인물과 거리를 유지하는 영화의 객관적인 시점 유지에 일조한다. 때로 카메라의 시선은 인물 클레오를 롱 숏의 거리에서 트래킹으로 변화하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인물을 따라가며 영화의 시공간에서 유령이 된 관객을 배회하게 한다.


 감독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전 ‘Para Libo'(리보를 위하여) 자막을 새겨 감독 자신을 돌보아 주었던 한 여성 ‘리보 로드리게즈’를 향한 헌사를 표한다. 그러나 <로마>는 리보를 대신한 클레오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선택을 취하지는 않았다. 인물과 거리를 두어 영화의 시공간 속에 즉 영화의 맥락 속에 존재하는 인물을 보여준다. 클레오의 개인의 삶은 당시 시대적 맥락의 영향을 받아 봉합되어 있고, <로마>가 취한 객관적인 시점은 인물이 존재하는 공간, 시대 나아가 맥락을 함께 보게 한다. 감독 자신의 기억에서 비롯되었지만, 과거의 기억은 접근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이 되었기에 본인 스스로도 거리를 두는 시점을 택한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로마>의 제작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로마로 가는 길>에서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말한다. "이 영화는 제 개인적인 기억의 단편들에 대한 단순한 모자이크가 아니에요. 제가 자랐던 멕시코의 시대적 맥락과 함께 멕시코에 존재하는 얽히고설킨 불편한 관계 그리고 전 세계에 존재하는 계층과 인종 사이의 관계까지 담고자 했어요." 영화의 시점은 개인의 사적 기억에서 출발해 멕시코의 사회적 역사적 시대 맥락을 그려내며 동시에 인종, 계급의 문제를 녹여내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를 충족시키는 도구로 제 역할을 해내며 이러한 시점은 탁월한 선택으로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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