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없이>는 홍의정 신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2020년 10월 슬그머니 관객들을 찾아왔다. <소리도 없이>는 기본 정보를 언뜻 보면 유괴를 다룬 범죄영화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서면 여타의 유괴영화와 다른 인상을 받는다. 이 영화에 대해 관객들이 저마다의 질문을 가지고 극장을 나서게 될 거라 자신한다. <소리도 없이>는 사람들의 기존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끊임없이 교란시키며, 기이하고도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말을 하지 못하는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은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시체를 수습하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태인과 창복에게 하청을 맡기던 범죄 조직의 실장 용석(임강성)은 그들에게 살아있는 사람을 잠시 데리고 있으라는 뜻밖의 일을 맡긴다. 태인과 창복은 용석의 요청으로 11살의 여자 아이 초희(문승아)를 데려온다. 초희를 데려온 바로 다음 날 일을 맡긴 용석이 죽게 되면서 태인과 창복은 의도치 않은 상황에 휘말리게 된다.
영화의 중심인물은 유괴라는 상황을 둘러싼 창복과 태인, 납치된 초희다. 세 명의 중심인물은 각자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를 지닌 유사성을 보인다. 말을 하지 않는 태인과(영화에서 태인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리를 저는 창복은 신체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태인과 창복이 갖고 있는 신체적 한계는 그들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타당한 변명이 되어 '시체 유기'범죄에 대한 죄를 묻지 않게 한다. 특히 창복의 신체적 특징 중 하나는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인데 시체를 처리할 때 그의 팔을 타고 내리는 땀을 클로즈업해 잡아내면서 그가 느끼는 죄책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르면서 성경의 말씀을 읽어주고, 죄의식을 가지는 아이러니가 가장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는 인물이다.
초희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 표면적으로는 결핍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삼대독자의 가정에서 딸로 태어난 사회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초희는 자라오면서 남동생에게 베푸는 부모의 사랑과 자신에게 향하는 부모의 사랑이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아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환경을 선택할 수 없이 태어난다. 삶의 제약이 조금 더 가혹하게 작용하는 스크린 속 인물들은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특히 영화에서 창복과 태인이 가진 신체적 한계는 감정이입의 통로가 되어 관객들의 눈을 흐리고 객관성을 무너뜨린다.
그러나 각자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세 인물 중 태인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창복과 초희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고 살길을 모색하며 살아간다. 창복은 특수 청소부의 일도 보통의 사람들이 노동하는 것처럼 성실하게 수행한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고자 하고, 욕심을 부리면 화를 자초한다고 생각하는 현실에 순응하는 인물이다. 초희 역시 어린 나이가 무색하게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파악이 뛰어나고, 감정을 숨긴 채 생존하기 위해 행동한다. 초희는 유괴 상황에서도 태인의 눈치를 재빠르게 살피며 지속적으로 호의를 베푸는 등 이상하리만큼 태연함을 잃지 않는다. 또 자신보다 어린 문주를 보살피고, 집안의 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어른의 여성이 가정에서 보편적으로 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소리도 없이>의 초희라는 인물은 유괴를 다루는 여타의 다른 영화들과 달리 유괴를 당한 수동의 상황에서 행동하는 능동자로서 존재하는 독특함을 품고 있다. 창복과 초희는 현실을 거스를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 스스로가 현실에 맞추는 삶을 산다. 그러나 태인은 현실에서 판타지와 같은 일들을 바라는 몽상가에 가까운 인물이다.
태인은 주어진 환경에서 은근히 자신의 판타지를 실현시키려 한다. 몰래 범죄 조직원들의 담배를 훔쳐 피우기도 하고, 라면에 넣을 달걀을 사람 수보다 더해 넣으려는 자그마한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또 범죄 조직원들의 정장에 집착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같이 작지만 세밀한 행동들은 태인이 자신의 현실을 넘어선 삶을 바라는 판타지를 실현시키려 하는 것임을 드러낸다. 태인은 그의 현실적 상황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선행을 베풀기도 한다. 태인은 노동한 대가로 받은 달걀을 노상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에게 무심히 건넨다. 할머니가 태인에게 미소를 띠며 감사의 손길을 내미는 것으로 보아 그의 선행이 자주 있어왔다는 것을 짐작케 하고, 태인의 선한 의도에 주목하게 한다. 하지만 태인이 선행을 베풀 수 있던 여유는 그가 시체를 유기한 후 얻게 된 보상이다. 태인은 일종의 선악의 관점에서 자신이 선에 위치하고 싶은 판타지를 실현시키려 한다.
하지만 태인이 품었던 선한 의도의 판타지 조차 현실적 세계의 잣대를 들이대면 선악에 위배되는 아이러니가 되고야 만다. 결정적으로 태인은 유괴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유괴한 초희와 감정적 유대까지 기대해 보는 판타지를 가진다. 초희는 문명과는 괴리되어 보이는 듯한 태인의 집안 환경을 보편적인 가정처럼 바꾸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무엇보다 초희는 태인의 감정을 살피는 유일한 인물로 결국 태인은 세상의 짐을 내려두고 초희에게 기대게 된다. 태인의 현실을 넘어서려는 판타지 실현에 관한 욕망은 초희를 구출하려는 상황에서도 발현한다.
태인은 아동 인신매매 범죄를 전문적으로 실행하는 무리에 초희를 넘겨주고 집으로 돌아온다. 태인은 초희가 빨아서 벽에 걸어둔 정장을 보고 초희와 지냈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태인은 초희가 머물다 간 흔적을 본 후 결심한 듯 초희를 구하러 간다. 이때 태인은 죽은 실장 용석이 입었던 정장을 입고 가는데, 태인이 바라 오던 정장을 입음으로써 자신의 판타지를 부분적으로 실현시킨다. 태인은 하나의 판타지를 실현함으로써 초희도 구원해낼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판타지를 꿈꾼다. 태인은 초희를 데려오지만 그가 기대한 초희와의 감정적 유대감, 즉 유대를 이루는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초희가 태인에게 베푼 호의는 생존하기 위한 행동이었고, 자신의 생존이 보장된 환경에 돌아오게 되자 태인의 정체를 발설하며 그를 저버린다. 태인은 그제야 초희와의 관계가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태인은 자기가 실현시켰다고 믿은 판타지의 표상인 정장을 버린 채 그의 현실로 돌아간다. 영화의 마지막 태인에게 허락된 것은 초희가 머물다 간 흔적으로 남은 한 장의 사진뿐이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들의 (유사 가족의 형태를 갖춘) 사진은 태인이 나지막이 꿈꾸었던 판타지의 표상으로 존재한다. <소리도 없이>는 하나의 교훈으로 말끔하게 정리되는 영화가 아니다. 극장을 나서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의 원형을 비틀고 의심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