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의 뉴욕여행 후기
감사하게도 나는 인생 전반기를 한국에서 중산층 포지션으로 살아왔다. 어렸을 때 용돈을 나름 많이 받는 편이었기에 맛있는 간식도 자주 사먹을 수 있었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방학에 한달 남짓 가는 해외여행도 학기중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용돈 좀 아껴쓰면서 저축하면 적당히 마련할 정도는 되었으니까. 정말 감사한 일이자 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나 지금이나 나는 비슷한 수준의 소득계층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 생각보다 다르게 느껴지는 점이 문득 떠올라서, 과거와 현재의 내 삶- 그리고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의 행동양상을 관찰하며 내가 느낀 바를 적어보려고 한다.
15년쯤 전 초등학교 시절에는 집이 좀 잘 사는 친구들이나, 형편이 조금 어려운 친구들이나 비슷하게 어울려 지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 나는 피자스쿨 피자를 정말 좋아했는데, 용돈 좀 아껴서 쓰면 한달에 한번정도는 내가 좋아하는 포테이토 피자를 먹을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조금 더 여유로웠던 친구들은 꼬다리에 퐁듀 찍어먹는 토핑이 들어간 도이치바이트를, 형편이 조금 어려웠던 친구는 피자를 덜 사먹게 되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사실 근본적으로는 비슷한 것들을 먹고 비슷한 것들을 좋아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좋았다. 어차피 피자 한판 주문하면 두세조각정도 먹으니까, 나머지 대여섯조각은 친구들이랑 나눠먹으면 되었다. 부모님도 내가 그렇게 하기를 원했기에 거리낌없이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또 비싼 피자를 주문한, 나보다 더 부유한 친구들도 그들 피자를 잘 나눠줬다. 이런 행동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삶에 찌들지 않은 어린 친구들이 가진 선한 마음으로부터 이루어졌다고도 생각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 시절에는 우리 모두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백 명이 수강하는 전공수업을 듣고 왔다. 수업이 갑자기 한시간정도 늦춰지는 바람에 , 강의실에서 한시간동안 앉아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 구경을 하는데, 입고 있는 옷이 대략 3만원대부터 100만원대까지 정말 다양했음. 같은 학교 , 같은 학과 강의실에 앞뒤로 앉아 수업 듣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는 과거와는 달리 더 촘촘해졌음을 느꼈다. 비슷한 수준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모임들이 너무 활발해지고 그들만의 장벽을 만들어- 다른 집단과의 교류가 쉽지 않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음. 어느 시점에서부터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너무 개인주의적으로 사는 세상이 되었고, 과거보다 더 염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 같다. 먹는 음식만 하더라도 맨날 오마카세에 가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당장의 식비 걱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도 있다. 두 친구 모두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교류또한 힘들어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계층이 더 세분화되고 그들 계층간의 교류가 점점 줄고 있음을 종종 경험한다.
이 지점에서 뉴욕이 정말 선진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하면서 지하철에서 간단한 연주 및 공연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헤프게 돈을 지불하고, 그들이 그들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응원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한국사회에서는 보통 모른 척 하거나 자리를 뜨는데.. 비록 경제적 계급으로 치면 약자로 취급받을 수도 있는 그들이지만, 그들과의 일종의 교류가 정말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LGBT와 플러스사이즈 모델과 같은 사회적 소수 계층의 시선을 여러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음을 지켜보았다.나는 이런 부분이 미국 다양성의 확장에 정말 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형편이 좋지 않더라도, 경제적 상류층인 사람들에게서부터 존중받을 수 있는 것(물론 일반화할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비율적으로 한국보다는 훨씬 높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성 정체성과 미의 기준에서의 다양함 그 자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계층간의 차이를 최대한 배제한 채로 그들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Melting pot이라고 불리는 뉴욕이 다양성을 대하는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