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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Oct 26. 2023

루틴이 무너졌다.

루틴이 무너졌다. 


출근 전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던 습관도, 매일 정리하던 금융시장의 지표도, 주식시장의 흐름도 놓친 지 오래다. 더해서 독서와 글쓰기에 할애하는 시간도 미미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유튜브와 인터넷 서핑이 채웠다.


생산적인 활동들을 놓아버리고 나니 그 자리를 채우는 건 허무와 나태, 그리고 우울이었다. 유튜브를 아무리 봐도, 인터넷 서핑을 아무리 해도 독서를 하고 글쓰기를 할 때 따라오는 몰입의 기분과 뿌듯함을 느끼지 못했다. 금융시장의 대표적인 지표와 주식시장의 흐름을 놓아버리고 나니 주식 계좌에 대한 관심도 떨어졌다. 떨어진 관심에 비례해서 잔고는 더욱더 망가져갔다. 충분히 가격이 올랐을 때 팔지 못했고, 팔지 못했기에 떨어졌을 때 사지 못했다.


주식 계좌에 대한 대응이 실패하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되었다. 독서도 안 해, 글도 안 써, 계좌도 만신창이인 상황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분노가 동기부여가 되어 서서히 가라앉는 나를 붙들어 세워주지는 못했다. 반대로 분노는 도피를 낳았다. 분노하고, 분노하는 나로부터 도망간다. 도망가서 마주한 것은 컴퓨터 모니터와 핸드폰 스크린이었다.


컴퓨터와 핸드폰 앞에서는 머리를 비울 수 있었다. 어떠한 집중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건 오직 하나. 시간뿐이었다. 1분이 채 안 되는 동영상으로 4시간을 채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10분짜리 동영상 한 두 개만 봐야지 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것저것 영상을 보면서 새벽 1시, 2시에 잠에 드는 게 새로운 습관이 되어버렸다. 


습관이 무너지기 전, 침전해 가는 내 등에 헬륨가스 넣은 풍선을 붙들어 매는 것처럼 습관을 하나 둘 추가해 나갔었다. 좋은 습관은 또 다른 좋은 습관을 불러왔고, 습관이 하나 둘 추가될 때마다 침전이 아닌 찬란한 창공으로의 비상을 꿈꾸었다. 습관이 무너지며 순환이 사라졌고 든든하게 느껴졌던 풍선들도 신기루처럼 날아갔다. 남은 건 발목 아래로 드리워진 무게추. 그리고 그 추의 무게를 오롯이 견디며 또다시 침잠하고 있는 나.


무게추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때가 언제였을까. 17살, 18살 무렵으로 기억한다. 당시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심해로 침잠해 가는 나를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다. 다만, 5년 후의 나라면 어떻게든 해내지 않을까?' 5년 후의 나는 해내지 못했다. 그로부터 5년 후의 나 역시 해내지 못했다. 그리고서 또 5년이 지난 나는 해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시 가속도의 방향을 아래로 향하게 되었다.


사실 5년 전의 나였다면, 혹은 거기서부터 또 5년 전의 나였다면, 여러 습관들을 쌓아가며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인생이 흔들릴 때, 바로 이때 만을 기다려온 것처럼 당장에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방치된 주식 계좌는 다 손절해 버리고, 독서고 글쓰기고 때려치우고 유튜브에 탐닉하거나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랬다. 새벽에 일어나서 콘 아이스크림을 세 개씩 먹는다거나,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열 시간씩 붙잡고 있는다거나. 그러면서 어김없이 따라오는 중얼거림 '나는 어차피 안 돼'


잘 쌓아오던 습관을 내팽개치고 다시 내 인생은 시궁창이라고 되뇌며 핸드폰 속으로 숨어버리는 쾌감이 도미노를 한참 쌓고 무너뜨릴 때의 쾌감과 비슷할까? 그래서 작은 실수만 생겨도, 조그마한 틈만 보여도 스스로가 나서서 실수를 이슈화시키고, 틈을 헤집어서 상처로 만들고 마는 것일까.


포기하면 편해.라는 말이 있다. 포기하면 그 순간은 편할지 몰라도, 다시 쌓아가려면 그만큼 힘든 게 또 없다. 조금이라도 쌓아 올리던 게 있으면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무조건 최선이다. 포기하면 언젠가는 다시 그 포기했던 순간을 넘어야만 하는 시점이 도래한다. 그 시점을 견뎌내야만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팀장을 달지 않고 임원으로 직행하는 경우는 없다. 인간관계에서도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까지의 관문을 넘지 못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인스턴트적인 관계만을 이어나간다. 1층 없이 10층 건물을 지을 수 없다. 샤워호스 없이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건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 삶의 궤도에서 빗겨 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원래 있던 자리로. 내가 선택한 그 자리로. 


그래서 나도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한다. 3개월 방황의 시기에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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