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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Dec 11. 2022

定慧가 사는 곳

'넓을 광(廣), 큰 덕(德)에 산다' 김 해자의 산문을 읽으며

  '넓을 광(廣), 큰 덕(德)에 산다' 이 산문은 내가 지향하는 삶의 글이다. 나는 동대구 한 곳 단독주택에서 50여 년을 살며 동네가 오늘, 내일 개발이 된다는 말만 무성할 뿐 진척이 없으니까 살던 주민들이 거의 떠났다. 다른 지역들은 모두 개발이 되어서 삶의 질이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데도 말이다. 금년 연말에 어떤 결론이 나온다고 하여서 기다리는 중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상태나 사회적 분위기로 봐서 개발이 된다는 여론을 반신반의한다. 재작년부터 손자, 손녀를 돌보는 처지로 바뀌어서 내 집에는 밤에 잠만 자는 실정이다. 그런데 나는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아서 화단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갔으면 한다. 남편이 아파트를 선호하여서 아파트로 갈 확률이 높다. 내가 어쩔 수 없이 아파트로 간다면 1층에서 살자고 남편에게 요청했다. 손주가 있다는 핑계를 앞세웠더니 남편은 두 말도 않고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집은 40년 전에 지은 반 양옥이다. 그 당시에는 잘 지은 집이라고 다들 부러워했다. 자랑스럽던 이 집은 한 여름밤에는 안방 천장 위가 옥상이라서 사막 같은 열기가 아래로 내려온다. 냉방기가 없던 시절에는 그럭저럭 여름 한 철 선풍기가 대신했으나 날이 갈수록 냉방기가 급선무였다. 그 차 저차 옥상에 채소를 심거나 화분을 놓으면 열기를 내릴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서두에서 밝혔듯 다른 지역은 협상이 잘 되어 아파트 단지로 변하였건만, 우리 동네는 보상가를 많이 요구하여서 매번 성사되지 않았다. 쉽게 타협이 될 것 같지 않아 고물 수집 차가 지나갈 적에 중고 화분을 사들여서 옥상으로 옮겼다. 그리고 봄이면 상추씨를 뿌리고, 블루베리 모종을 사다 심는 것으로 화초 가꾸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그리고 옥상에 화분들이 정말로 안방의 열기를 내렸다.


  471 쪽 "아침은 봄이다. 봄에는 기지개를 켜고 나가 돌이라도 고르고 자투리땅에 꽃씨라도 심어야 한다." 또 "텃밭은 자라나는 식료품점이다." 정말 맞는 말씀이다. 어릴 적 내 아버지가 화훼에 조예가 깊어서 날마다 화초와 살았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참으로 좋았다. 그 영향인지 나는 어딜 가든 화분을 산다든가 빈 화분에 무슨 꽃나무이든 심어서 키웠다. 


  아침은 봄이라는 말, 명문장이다. 나도 봄이면 상추씨를 뿌려서 연한 잎을 따 먹는 재미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옥상으로 올라간다. 내가 부지런한 성미였다면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채소 기르는 공부를 했을 것이다. 책 한 페이지도 열어보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씨를 뿌리고, 넘쳐나는 햇빛은 걱정할 것 없었고, 물만 잘 챙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도 안방의 열기가 내려가니 여름밤을 보내는 것이 한결 수월했다.


  우연하게 블루베리가 옥상에서 잘 자라고, 추위에도 강하더라는 어느 퇴직자가 티브이에 나오는 방송을 봤다. 한 포기를 사다 몇 해 키웠지만 크지도 않고 꽃도 피지 않았다. 블루베리는 산성흙에서 자라는 식물이라고 누군가 알려주었다. 평소 멋진 소나무 가로수 길이라고 알고 있던 곳으로 갔다. 소나무 아래 떨어져서 짓밟히는 갈색의 부서진 이파리들을 긁어모았다. 그리고 꽃은 피었고 시중에 파는 블루베리가 열렸다. 한 삼 년 잘 자랐으나 산성 성분이 고갈되었는지 꽃과 열매가 눈에 뜨이게 작게 열렸다. 하여 늦가을에 분갈이를 하고 옥상에서 봄을 맞이하였다. 갈수록 겨울은 짧아지고 따뜻했다. 그렇게 오는 봄은 늦 추위가 맹위를 떨쳤다. 한 생명은 그것으로 나와 이별하였다.


  창비 가을호 472 쪽 아래 여섯째 줄 "이렇게 자연이 나를 부르고 밭이 내게 일을 시키며 식단도 얼추 짜준다." 문장이 실감 난다. 나도 옥상에 호박과 들깨를 심어봤다. 재미는 못 봤지만 식물을 관찰하는 묘미를 알았다. 그리고 인생을 배우기도 했다. 묘목이나 모종을 사면, 부수적으로 흙 속에는 군 식구가 있었다. 군식구 차조기가 짙은 보랏빛으로 온 화단을 메우다시피 자라기도 하였다. 식물들은 결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배울 것이 더 많았다.


  옥상과 화단은 나의 영역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화단을 자신의 시험장으로 접수해버렸다. 나의 간섭을 불허하였다. 나는 옥상의 블루베리와 이별하면서 식물에게 집착하지 않기로 작심하고 미련을 끊었다. 좋아하는 식물에 대한 미련이 하루아침에 끊어지면 좋으련만 더 눈이 가고 키우고 싶어졌다. 그럴 때마다 야멸차게 집착하는 이 마음을 알아차렸다. 현재 화단에는 십여 년 이상 잘 자라던 천리향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지난가을에 보았다. 마음이 아팠지만 손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떠나야 할 집이다. 그리고 영원한 것은 없다. 그래서 집착심을 버릴 수 있었다. 언제 인연이 닿는 곳에서 광덕리의 인심 좋은 삶을 키워보고 싶다.


  "기후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시대에 땅과 뭍 생명들이 더는 망가지지 않기를 간절히 빌며 몸으로 써 내려간 대지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다." 문장을 인용하며 나의 글도 끝. 


부디 기후위기 속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이 잘 견뎌 내셨으면 좋겠다.






사진: 정혜.



대문 사진: 나의 집은 5월 한 달 동안 덩굴장미가 피고 지기를 거듭한다. 남편이 전지를 못하게 하여서 꽃이 수없이 많이 핀다. 


아래 사진: 옥상의 호박꽃. 거름이 부족해서인지 수꽃이 많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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