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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ul 16. 2023

공존, 어때요?

3. 젠트리피케이션은 특정 지역의 사람들을  그들의 고향에서 밀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경험과 현재 우리의 젠트리피케이션 간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요?  이 두 상황을 비교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지 내가 만약 원주민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이 상황을 돌파해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장 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책의 반틈도 못 읽었다. 이 '경제학 레시피'가 눈으로 확인이 어려운 과거사를 살펴보면서 나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벗겨주고 있다. 동시에 '탐욕貪慾'이란 단어가 연상되었다. 남의 것일망정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탐욕이다. 이 탐욕貪慾이 책갈피마다, 티브이에서도 공공연히 보인다. 


  하고자 할 욕欲은 '~하고자 하다' 또는 '바라다'라는 등의 뜻이 있다. "欲자는 본래 과할 정도의 의욕이라는 의미에서 ‘욕심’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하지만 후에 欲자가 ‘~하고자 하다’나 ‘바라다’와 같은 ‘욕망’을 뜻하게 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心(마음 심) 자를 더하여 慾(욕심 욕) 자가 ‘욕심’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네이버 한자 사전에서는 '참고로 실제 쓰임에서는 자와 자를 크게 구분하지는 않는다.'"고 정의하고 있으나 나는 구분하여 활용한다.


  욕심欲心은 '바라는 마음'이다. '욕망欲望'은 바랄 욕에 바랄 망이니 이것 역시 바라는 마음이라고 안다.

欲자 아래에 마음 심이 붙은 '욕심慾心'은 ‘욕심欲心'이 지나치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이라 글 쓰는 것도 나의 공부가 되어서 자전 찾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데 한자 사전이 불친절하게 욕심의 한자를 빼고 설명을 했다. ‘욕심欲心'과 '욕심慾心' 또 '욕망欲望'의 한자를 이해하면 스스로 '望'을 자제하기 쉬운 이점이 있다. 


  며칠 전 내 집을 영역 삼아 드나드는 길냥이를 봤다. 이 녀석의 몸은 야윌 대로 야위었고, 배는 불러서 아래로 쳐져 있었다. 안전하게 해산할 장소를 물색하는지 내 집 지하실 입구를 탐貪냈다. 지하실은 이미 오래전 길냥이 선배가 해산하여서 살다가 새끼들 젖도 떼지 않았는데 남편이 내쫓은 역사적인 장소다. 예민한 길냥이의 후각으로 그 흔적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동네는 단독주택만 있다. 서생원이 판을 치던 시대에는 묘선생 역시 수염을 곤두세우고 다녔다. 날이 어두워지면 묘선생들이 골목을 누비면서 짝꿍 찾느라 시끌벅적했다. 악명 높은 고성방가에 주민들이 묘수를 썼다. 관절염에 효험이 있다면서 잡아들이고, 중성화 수술을 해야만 위생적이라며 수컷의 고환을 제거하였고, 암컷의 난소를 적출해 버렸다. 인간의 이기적인 慾心으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길냥이도 비켜가지 못했다. 남편이 지하실 입구를 봉쇄하자 길냥이 네 식구 중 어미가 새끼들 안식처를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겨우 한 구석 추위를 피해 머물 곳조차도 인심을 베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젖을 떼기 전 새끼들이 밤마실 다니면서 허기진 배를 채운 후 아침이면 어미가 억장이 무너져서 울지 못하는 윤회가 되풀이되었다. 인간만 살아야 한다는 慾心일까.


  아파트 단지 주변에도 눈곱 낀 길냥이들이 배회하였다. 분리수거장에는 먹을 것이 아예 없다. 쓰레기 봉지는 단독주택지에서나 물어뜯을 수 있다. 길냥이 보호단체가 아파트 화단 나무들 사이로 임시막사 같은 허름한 집을 종이상자나 나무상자에 비닐을 덮어서 관리한다. 라면과 두부 용기에 사료와 물을 매일 갈아준다. 보호단체는 길냥이를 보호한다는 欲心이 선善해 보였다. 


  어미와 형제들이 단란하게 살 때는 화기애애했다. 부지불식 간에 식구들이 병원에 끌려갔다 온 후 그들의 가족 관계도 소원해져 버렸다. 길냥이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종래에는 종족보존도 어려울 것 같다. 사람들은 이성異性을 찾는 괴성을 무시하지 않고 중성화로 선심善心을 쓴다. 길냥이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인 慾心으로.


  이성적인 欲心은 欲望에 불과한 것일까. 사람들은 인구가 줄어서 날마다 한숨을 내뱉는다. 길냥이도 알겠지만 속수무책일 것이다. 무슨 수로 사람을 대적하겠는가. 최신식 무기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慾心을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 아마 '당신들 최대과제나 해결할 일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들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느냐.'라고 목소리를 드높이지 않을런지. 단지 길냥이들의 欲望이겠지만.


  아파트 옆 공원에는 윤기 없는 中性들이 힘 없이 돌아다닌다. 귀찮게 괴롭히는 어린이들을 피해서. 말 못 하는 짐승들을 더 잘 사는 방법으로 이끌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길냥이들이 퇴원하여 부작용만 없으면 더 이상 돌보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이 귀엽다는 핑계로 우르르 몰려와서 자유를 구속하고 집적거린다. 보호받는 애완묘에 대한 사랑은 慾心과 欲心 중 어느 것일까.  


  쫓겨난 길냥이를 보며 흥부 가족이 생각났다. 힘센 놀부가 흥부의 대가족을 엄동설한에 내쫓았다. 흥부는 그들을 이끌고 북풍한설이 난무하는 곳으로 나서는 그 심정. 절망의 구렁텅이로 발을 내딛는 것이다.

사람은 欲心이요 慾心인 것 같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이라는 말도 된다. 누구나 나는 소중한 존재이다. 소중하므로 서로 존중하며 다른 견해를 인정해 준다. 慾心을 배제한 마음씀이 필요하다.


  "톨레랑스tolérance란 종교, 학문 사상, 정치 등의 영역에서 서로 간의 의견이 다를 경우 논쟁은 하되 물리적 폭력은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이념으로 서로 간의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의견을 존중하자는 관용의 정신을 말한다고 합니다. 즉, 톨레랑스는 내가 동의는 하지 않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그대로 용인하는 것으로(물론, 상대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지만) 나와 다른 생각, 믿음, 가치를 가진 집단 및 개인들 사이의 공존을 말한다고 합니다." -출처 네이버- 


  나와 다른 생각, 믿음, 가치를 가진 집단 및 개인들 사이의 공존을 위하여!




사진 : 정 혜.


대문 사진 : 지역주민을 위하여 잘 조성된 공원 산책로. 

길냥이들이 메타세쿼이아 나무 아래로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숨어드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아래 사진 : 동네 몇몇이 보상가를 높게 요구하여서 지역주택사업이 계속 무산되고 있다. 

모두 慾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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