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글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왜냐고 물으면 수많은 이유를 댈 수도 있고, 아무런 이유를 대지 못할 수도 있다. 대충 이야기하자면, 오랫동안 마음은 차올랐지만 그럴만한 상황과 여유가 되지 않았다고 변명할 수 있겠다.
항상 상황과 여유는 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번은 뭐랄까 오랫동안 잊고 있던 터널에 다시 들어가서 꾸준하고 지난한 성장통을 겪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기로 다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의 그릇이 차올랐다가 버려졌다가 다시 차올랐다가 쏟아져버렸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쏟아져서 흘러내린 모래알처럼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 까끌거리는 불편함만 남을까 봐 그냥, 큰 계획 없이 뭘 쓸지 알 수 없이 그냥 써 내려가 보기로 했다. 그러니 이건, 나를 위한 치료이다.
벌써 2021년의 네 달이 꽉 차올라 지나갔다. 매일의 내일은 꾸준히 지치지 않고 다가온다. 지나간 시간 동안, 나는 첫 직장을 떠나 이직을 하고, 두 마리의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가족이 되었으며, 매일 해오던 요가를 잘 못했고, 새로운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배달 음식을 많이 먹었고, 그리고 인터넷 쇼핑을 많이 했다.
나의 매일은 어떠한 중요해 보이는 옷을 입은 많은 것들에 가득 찼고, 내일은 똑같은 옷을 입은 다른 것들로 가득 찬 상태로 다가왔다. 매일매일이 다르지만 매일 오는 내일이 너무 같아서 나는 힘이 들었던 것 같다. 약간, 고3을 다시 재현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제 수능이라는 넘어야 하는 관문과 기다리면 자연스레 오는 성인이라는 달콤한 타이틀은 없지만 그때 느꼈던 터널에 나는 다시 들어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모르는 방향으로 성장통을 겪고, 있다. 내 마음속에선 다양한 애정과, 슬픔과, 화와 절망과 절실함 따위의 것들이 마구 뒤엉켜서 나를 채우고, 나를 지키고 나를 깨우다가 사라졌다.
몇 달간 겪은 이 우울은 너무나도 걸어본 길이라 익숙했지만 날카로웠고, 나는 매번 다른 마음으로 나를 가득 부풀려 한 발씩 걸었다. 절망은 익숙해서 싫었고, 화와 슬픔이 가장 쉬웠고, 애정과 절실함이 제일 어려웠다. 부푼 내 마음은 나를 하루하루 채우다가, 어스름한 밤이 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라졌다. 납작하게 눌어붙은 채로 나는 매일 저녁 버스 안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행복한가"
찰나의 행복이 나의 하루하루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지만 약효가 오래가진 않았다. 나의 가치와 맞는 사람들과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 살아가다가, 뭔가 약간씩 어긋나는 시간과 공간에서 나를 이리저리 다듬어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저 질문을 매일 던지고 오래 고민하다가 이따금은 외면했다.
'내가 앉은자리가 꽃자리이니라'라는 문장을 어디선가 듣고 보았다. 머릿속에 이 문장을 떠올리고 꽤 오랜 매일을 저 문장으로 새겼다. 그리고 조금씩 나를 살렸다. 내가 지금 앉아있는 이 곳이, 내가 버티고 이고 지는 이 수많은 감정이, 그래서 오고 간 수많은 생각들이, 삼키고 내뱉지 않았던 말들이, 나를 잠식시키지 않고 꽃이 되길. 꽃자리가 되어 누군가를 다시 앉히고, 돌보고 사랑할 수 있길,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아픔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어여쁘기만 한 꽃자리였길 바라다가, 우울에서 나를 조금씩 살렸다.
저 문장의 힘을 빌어, 나는 나를 좀 더 제대로 먹이고, 올바르게 씻기고, 아름답게 돌보기로 했다. 어스름한 밤이 되기 전에 집에 돌아오고, 마음이 납작해지기 전에 따뜻하게 차려진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고양이를 빗긴다. 주말에 꽃시장에 가서 아름다운 꽃을 한 아름 사와 집을 가꾸고, 잘 돌봐진 집에서 나를 잘 뉘여재.운다. 시간을 들여 친구를 만나고 가족을 보고 그들의 눈에 비친 나를 본다. 비슷한 시간을 들여 나를 만나고 보고 내 눈에 비친 나도 본다. 내가 앉은 이 자리가 진짜 꽃 자리도록. 버티지 않고 오랜 시간 지나 돌아보지 않아도 꽃 자리도록.
오늘도 나는 나를 잘 살렸다. 조금씩 다른 옷을 입은 내일이 또 나를 잘 살릴 것을 믿는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글을 다시 아무렇게나 썼다.
내가 앉은자리가, 꽃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