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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Apr 29. 2021

루나와 치나가 하는 이야기

사실은 루치나의 목소리로 내가 하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희는 루나와 치나에요.

치나와 루나

작년 11월부터 엄마 아빠와 함께 살게 된 고양이예요. 비록 육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엄빠는 종종 몇 년동안이나 우리와 함께 산 것 같다는 넋두리를 하곤 해요.

모짜렐라 루나

오늘 이 글을 쓰는 저는 하얀 고양이 루나예요. 아름답고 고와서 많은 분들이 저를 딸이라고 오해하시지만 저는 비록 땅콩은 없어도 늠름하고 사냥을 매우 잘하는 아들 고양이입니다. 종종 멋진 사냥 놀이를 끝내고 바닥에 늘어져있는 저를 보며 엄빠가 녹은 치즈 같다고 놀리면서 종종 모짜렐라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루나-'라고 엄빠가 불러줄 때에만 바라보는 전략으로 저 별명을 오래도록 거부하고 있죠.

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고양이에요. 매번 이리저리 제 의사를 다양한 울음으로 표현하곤 하죠!  

치나

제 옆에 있는 고양이는 치나입니다. 점점 늠름하고 섹시해지는 이 친구는 이래 봬도 딸이에요. 작고 소중하지만 엄빠 손을 왕왕 물어서 엄빠가 고심 끝에 엄빠가 매번 파스타를 만들 때 넣는 작은 이탈리아 고추 페페론치나를 따서 치나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역시 이름값을 한다고 잘 자고 있던 제 옆에 와서 굳이 그루밍을 해주다가 냥냥펀치를 갑자기 세게 날리거나 제 목덜미를 앙 물고 가곤 해요. 하지만 이젠 제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이기도 합니다. 애정도 많고 욕심도 많고 겁도 많은 한 달 동생이에요. 아빠의 2호 껌딱지라 (1호는 엄마) 아빠가 오면 설렌 마음으로 꼬리를 잔뜩 세우고 종종거리며 돌아다녀요.


오늘은 제 엄마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이 브런치의 주인이자 저희를 정말 사랑하는 엄마예요.


엄마의 하루는 요즘 새벽 다섯 시 반에 시작돼요. 겨울이 가고 아침 해가 일찍 뜨면서 제 배도 빨리 고파지기 시작했거든요. 원래 일곱 시 반에 밥을 주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엄빠가 냉장고에 루치나 식사 계획 같은 포스트잇도 붙여놓곤 했지만, 사실 아무 소용이 없어요. 새벽이 빨리 오면서 저도 점점 눈이 빨리 떠지더니 요즘엔 다섯 시 반만 되면 배가 너무 고픈 거 있죠? 사실 엄마가 깼지만 자는 척으로 삼십 분 정도는 버텨보려 하지만 저도 만만치 않은 고양이라 엄마를 꾸준하고 성실하게 깨운답니다.


제가 구슬프고 꾸준하게 울면 그 소리를 들은 엄마가 처음에는 얼굴까지 이불속으로 파묻고 모른 척 하기 시작해요. 그럼 저는 등을 돌린 엄마가 설마 죽었나 싶어 겁이 덜컥 나는 저는 등을 제 손으로 몇 번 건드리고 엄마 얼굴 쪽으로 폴짝 뛰어 엄마가 숨을 쉬는지 냄새도 킁킁 맡아요. 살아있는 걸 확인하면 약간 마음이 괘씸해져서 엄마 손을 안 아프지만 짜증 날 정도로만 살짝 앙 물어요! 그러면 잠에서 깬 엄마는 짜증과 미안함과 사랑이 섞인 마음으로 실눈을 뜨고 저를 쓰다듬어줘요. 저는 엄마의 손길이 좋아 잠시 골골거리지만 이내 제 목적을 잊지 않고 다시 목청을 가다듬고 밥을 달라 소리를 지릅니다.


보통 2/3의 확률로 엄마가 먼저 일어나 눈도 뜨지 않은 채로 주방으로 가요. 아빠는 잠귀가 매우 얕다고 하는데 아침이면 정말 신기하게도 마치 작정한 것처럼 제 목소리를 못듣고 꿈나라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요. 엄마가 일어나서 침실 밖으로 나가면 아무 말 안 하고 제가 열심히 엄마 깨우는 걸 보고 있던 치나가 앞장서서 달려 나가요. 부엌에 도착할 때까지 엄마가 잘 오고 있는지 확인도 해야해요. 가끔 엄마가 우리를 밥 줄 듯이 일어나 쉬야만 하고는 다시 자러 간 전적이 몇 번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 엄마 종아리를 전 앙 물어버려요! 엄마는 주섬주섬 우리 밥을 챙겨주고 잘 먹는지 쭈그려 앉아 매번 확인한 후 "맛있게 먹어-"라고 말하고 다시 터벅터벅 자러 들어갑니다.


밥을 먹고 시원하게 볼일도 보고 약간 우다다도 하다가 다시 엄빠가 자는 침대로 올라가 저희도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해요. 배부를 때 자는 잠이 제일 꿀잠이거든요! 그럼 여덟 시 반쯤 몇 번 울린 알람 소리를 끄고 일어난 엄마가 저희를 보고 돌아누워 행복하고도 조금은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저희를 쓰다듬고 뽀뽀하고 옆에 누워 함께 뒹굴거려요. 매일 아침 엄빠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그래서 우리를 놓고 침대에서 나가는 게 얼마나 죄를 짓는 거 같은지와 같은 이야기를 질리지도 않는지 매일 아침 나누죠. 그 이야기가 싫지 않은 우리는 엄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골골 송으로 대답도 하고 말랑한 젤리를 엄마가 충분히 만지도록 양 손을 한참 내어주고 있곤 해요.


그러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엄마는 갑자기 매우 분주하게 씻고 얼굴에 뭔갈 찹찹 바르고 이 옷 저 옷을 입었다 던지며 아빠를 좀 괴롭히다가 출근 준비를 해요. 아빠는 아침에 일이 있지 않은 이상 항상 엄마의 출근길을 대부분은 차로, 가끔은 버스 정류장까지, 그리고 요즘은 회사까지 걸어서 데려다주고 오곤 하는 것 같아요.


엄마는 주말이 아닌 이상 아침에 나가 꽤 오랜 저녁까지 들어오지 않지만, 아빠 말로는 매 번 몇 시간마다 카톡으로 뭘 먹었냐 우리랑 잘 놀아줬냐 우리는 행복해 보이냐 등등 별의별 질문 공세를 한다네요. 가끔 우리가 보고 싶어 진 엄마는 회사에서 짬을 내 더 좋은 모래도 검색하고 맛난 밥과 간식도 주문하고 새로운 장난감을 잔뜩 사는 방법으로 마음을 달랜대요. 아빠는 이제 그 마음을 알아서 함께 새로운 택배 박스가 문 앞에 쌓일 때면 뜯지 않고 기다렸다가 엄마가 집에 와서 신나게 열어보고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미주알고주알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장단을 맞춰주기 시작했어요. 우리 덕분에 신나게 올라간 카드값은 나중에 걱정하면 되지요!


엄마가 보통 집에 들어오는 시간에 종종 아빠는 일터에 있어요. 어둠이 내린 빈 집에서 우리는 몸을 꼭 붙이고 낮잠을 자면서 빨리 엄마가 오기를 바라요. 집에 온 엄마는 가방도 들고 외투도 입은 채로 조심조심 문을 열어 우리 이름을 부르며 쓰다듬어줘요. 잘 있었냐고, 기다리게해서 미안하다며 한참을 이뻐해주죠. 엄마 문 여는 소리에 맞춰 대부분 문 앞에서 우리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지만 너무 졸리거나 몰래 간식을 훔쳐 먹곤 하면 엄마를 조금 늦게 맞이하는데, 그러면 엄마는 그 자리에 서서 우리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요. 마치 우리가 마중을 나가기 전엔 집에 들어올 수 없는 손님처럼요.


아빠가 밤까지 없는 오늘 같은 날은 우리를 쓰다듬고 가끔 간식을 준 후 엄마는 갑자기 소파에 철푸덕 널브러져요. 거기 누워서 저는 꼴도 보기 싫어 가끔 모서리를 앙앙앙 물어뜯는 아이폰을 들고 쓸데없는 영상이나 글들을 읽으며 오래도록 누워있곤 해요. 가끔은 엄마가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표정이 없는 채로 누워있기도 하는데, 그럴 땐 치나 가 먼저 가서 엄마 배 위에 누워 온기를 전달해줘요. 그러면 치나를 이리저리 쓰다듬다가 가끔은 울기도 하고 가끔은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가끔은 눈을 더 꼭 감고 최선을 다해 자보려고 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날, 엄마 근처를 맴돌며 울어도 보고 여기저기 앉아도 봤다가 결국은 엄마 머리맡에서 잠시 눈을 붙입니다. 엄마는 저희가 집에 없었다면 혼자 남은 시간에 뭘 했을까요?


그렇게 시간을 좀 보내다가 엄마는 불현듯 떠오른 어떤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요. 그러곤 "우리 루나 치나 심심했지! 사냥 놀이하자!" 하며 보물이 가득 들어있는 서랍을 딸깍-열어 장난감을 주섬주섬 꺼내요. 엄마는 아빠가 없지만 최선을 다해 1인 2역을 하며 저와 치나를 번갈아가며 온 몸을 던져 놀아주다가 먼저 지치는 것 같아요.. 가끔 가뿐 숨을 몰아쉬곤 하더라고요. 그렇게 숨을 몇 번 더 거칠게 쉬다가 너무 힘들어진 엄마는 간식을 가지고 와서 저희를 회유하고, 저희는 백이면 백 그 꼬임에 넘어가 순순히 장난감과 찰나의 간식의 맛을 맞바꿉니다. 아직 몸을 더 던져 사냥할 수 있지만, 사실 아빠가 오면 다시 사냥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괜찮아요! 아빠가 피곤해 사냥놀이를 못하겠다고 하면 중얼중얼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를 보는 소소한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죠.


아빠가 도착하면 엄마는 갑자기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아빠 등에 딱지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아요. 아빠 품에서 얼굴 여기저기를 킁킁거리고 옆구리도 손가락으로 콩콩 찔렀다가 머리도 빗겼다가 아빠에게 배가 고프냐고 묻고 부엌으로 총총 달려가요. 예전엔 엄마가 아빠 맛난 저녁을 이 시간쯤 해줬다고 하는데, 사냥 놀이를 하느라 남은 에너지 몇 방울을 몰아 쓴 엄마는 그냥 아빠가 늦은 저녁을 준비하는 옆에 서서 이건 이렇게 해야 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 하고 잔뜩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낄낄거리고 좋아해요. 엄마는 아빠를 놀리는 걸 인생 최고의 재미로 생각해요. 물론 대부분의 멍석은 아빠가 깔아주는 것 같지만 세상에서 제일 웃긴 사람이 자기라며 껄껄거리며 자만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죠. 이 억지가 싫지는 않은 아빠는 물 묻은 손으로 엄마 얼굴을 만진다거나 한 입 줄 것처럼 했다가 안 주는 방식으로 가끔 응수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엄빠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부엌에서 콩고물이 떨어지진 않았나 눈에 불을 켜고 싱크대와 조리대를 오가며 킁킁거리며 엄빠의 짜증을 돋우는 데 약간의 일조를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아빠가 저희를 싱크대에서 내리는 속도와 높이가 점점 바뀌거든요..


늦은 아빠의 저녁이 준비되면 엄빠는 식탁에 앉아 오늘은 뭘 했고 내일은 뭘 할 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요. 가끔은 좀 더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죠. 대부분은 요즘 엄마가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엄마의 행복을 제대로 찾기 위한 계획 같은 걸 새우거나, 아니면 엄마가 어디서 보고 읽은 다른 고양이나 동물 가족의 이야기를 아빠에게 읊어주며 슬퍼하거나 울곤 해요. 그리고 종종 우리 집에 찾아온 엄빠의 사람 친구 손님들의 우리를 대하는 행태에 대해 이리저리 분석하고 평론하며 마구 험담을 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저는 쥐돌이를 엄마 앞에 물어다 놓는 것으로 기쁨을 표현하곤 하죠! 저와 치나가 아무리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운 개냥이지만 저희를 귀여운 인형으로만 대하는 엄빠 사람 친구 손님들은 사실 너무 힘들거든요.


아빠의 식사가 다 끝나면 이리저리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고 엄마는 저를 정성스럽게 빗겨요. 그러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를 위해서라면 얼마나 많은 걸 할 수 있는지 기도문처럼 이야기해줘요. 그 소곤거림이 좋아 저는 매번 골골거리며 엄마 손에 얼굴을 문질러요. 가끔 저희가 아주 먼 옛날 어떤 사이였는지, 엄마는 과거에 어떠한 이유로 우리한테 잘못한 게 없는지 궁금해하고 괜히 미안해하기도 해요. 아득하게 먼 과거에 저지른 그 어떤 잘못도 우리가 용서할 수 있도록 엄마는 우리에게 더 사랑하고 잘해줄 것을 매일 약속해요. 사실 저는 그런 게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저도 매일 엄마를 용서해요.


우리를 사랑하면서 엄마는 다른 생명들도 더 사랑하고 아파하게 되었대요.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길냥이 가족이 보이면 우리 주려고 사 둔 간식을 들고나가 오래도록 들어오지 않기도 하고, 카라 블로그에 들어가 올라온 포스팅을 읽으며 엄마는 반성하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행복해해요. 그러다 우리를 바라보고, 엄마의 삶에 들어와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평생 오래오래 아프지 말고 살자고 속삭여요. 저희의 온 우주가 엄마 아빠밖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해요. 저도 말을 할 수만 있다면, 엄마 마음과 몸이 아프지 않게 평생 오래오래 아프지 말고 함께 살자고, 엄마도 나를 구하고 내 삶에 들어와 줘서 고맙다고 답하고 싶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침대에 엄마가 쏙 들어가면 우리도 따라 들어가 엄마와 아빠의 정확한 중간에 자리를 잡고는 눈을 감아요. 엄마와 아빠가 우리 때문에 많은 밤을 서로 꼭 껴앉지 못하고 잠들지만 이상하게도 저와 치나는 꼭 엄마와 아빠의 중간이 제일 좋거든요, 힛! 엄마가 오늘을 살며 짊어진 무게가 밤에는 느껴지지 않도록, 오늘도 무서운 꿈 꾸지 않고 편안한 잠을 자도록 저와 치나도 마음속으로 속삭여요. 가끔 엄마가 제 젤리를 잡고 놔주지 않아도 저는 가만히 있어요. 제 기도가 엄마를 평안하게 이끌고 있음을 알아요.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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