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z(World War Z, 2013)
영화 월드워z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면 영화 전반에 팽배한 시오니즘과 인종차별을 먼저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창궐한 바이러스, 당장 한복을 입은 포졸들이 등장해도 위화감이 없을 것만 같은 17세기 레트로 스타일의 남한 감옥. 심지어 제작자들은 드물게 대놓고 차별할 이 기회를 놓치기 어려웠던 나머지 전 인민의 이를 모두 빼서 전염을 막았다며 대사로나마 북한까지 꼼꼼하게 다뤄준다. 바이러스 발생국을 중국에서 한국으로 대체한 찌질함과 예루살렘 장면의 선민사상을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 영화의 치졸함은 성실하고 사려깊다. 동양의 작은 반도는 그들에게 이 어찌나 신비로운 곳인지.
그래도 이런 불쾌한 요소를 눈 가리고 아웅해 보자면 나쁜 영화는 아니었다. 레지던트 이블의 괴물형 좀비나 워킹데드의 굼뜬 좀비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대낮에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칼 휘날리며 뛰어 다니는 인간 좀비들은 신나는 속도감을 준다. 의외의 생물학적 디테일이나 제리의 원맨쇼 중간 중간 스며든 복선 찾기도 찾는 즐겁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좀비 영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사소한 현실 하나를 담고 있다. 만성 질환 환자다.
영화 초반 제리는“albuterol (알부테롤)”을 애타게 찾는다. 제리의 큰 딸은 천식 환자이기 때문이다. 좀비가 나타난 세상에서 천식을 앓는 아이는 영화 전반부에서 비중 있는 요소로 나타난다. 도망치는 중 과호흡 증상을 겪는 아이의 모습을 비추는가 하면 천식 약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있다.
피난길에 아수라장이 된 마트를 찾은 제리의 가족들. 아내와 둘째 아이가 마트 곳곳을 헤매며 식료품을 챙기는 동안 제리는 천식을 앓는 첫째 아이와 함께 곧장 마트 내의 약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약장을 뒤지던 제리에게 한 남자가 총을 들이밀며 나타난다. 제리 옆의 아이를 발견한 남자는 필요한 게 무엇이냐 묻고 제리는 알부테롤을 요청한다. 약을 건네는 남자가 자신의 딸에게도 잘 듣던 약이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는 또 한 명의 이름 모를 천식 환자가 있었으며 총을 든 남자 역시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좀비 아포칼립스를 다루는 영화에서 만성 질환 환자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창문에 신문지를 발라 어두워진 집에 숨어 고혈압 약을 챙겨 먹거나 좀비들로부터 도망치기 직전 가방 한 켠에 3개월치 당뇨병 약을 쑤셔 넣는 사람? 아직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월드워z가 그려내는 아포칼립스 속 천식 환자의 고충은 신선했다. 천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꾸준히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는 만성 호흡기 질환이다. 알러지와 관련 있는 병 중 하나로 숨을 쉬기 힘들어지거나 기침 발작이 반복적으로 일어나 대개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해야 한다.
영화에 나온 천식 치료제인 알부테롤은 천식 또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의 기관지 경련을 가라앉혀 주는 성분이다. 미국 외의 국가, 즉 우리나라에서는 salbutamol (살부타몰)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성분명 처방이 시행되고 있고 전문의약품의 광고가 허용되고 있으므로 영화에서는 제리가 알부테롤의 상품명인 ‘Ventolin’이나 'Proventil'이 아니라 바로 ‘albuterol’을 요청한다. 알부테롤은 호흡곤란을 빠르게 개선해 주기 때문에 천식이 아니라 비슷한 증상을 겪는 환자들에게 처방되기도 한다. 심할 경우에는 스테로이드와 함께 사용하기도 하는데, 얄약으로 복용하거나 흡입기를 사용해 복용한다. 흡입기는 수퍼맨 리턴즈에서 아들이 사용한 것도 비슷한 기구다. 스위트홈에서는 국내 살부타몰 제품인 벤토린에보할러가 등장한다. 이런 흡입기를 통해 복용할 경우에는 약이 호흡을 통해 몸으로 흡수되므로 사용법을 잘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