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하지만 가장 중요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에 대한 정의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닙니다. 웃어서 행복한 것입니다”라는 어느 유명한 연예인의 유행어가 있었다. 과연 행복은 무엇일까.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니 ‘행복’이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한 상태다.
그렇다면 유명한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이야기 했으며,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 행복”이라 말했다. 요즘 MZ세대들이 열광하는 쇼펜하우어는 행복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가졌는데, 행복이란 욕망이 충족될 때 느끼는 일시적인 해방이자 고통의 부재라고 말했다. 영구적인 행복을 없다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챗GPT에게도 행복이 뭔지 물어봤다. "행복은 순간의 만족과 내면의 평화가 조화를 이루는 상태"라고 답했다.
나는 무엇을 행복이라고 부를까. 내가 ‘행복하다’고 입 밖으로 내뱉은 마지막 기억은 언제일까?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직장에서 칭찬을 받았을 때? 여행에 가서 여유를 즐길 때? 등 분명 나름대로 행복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가 내 답변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나간 행복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고 다가올 행복에 대한 확신은 없는 상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는 어떻게 보면 진부하고 흔한, 지나가는 구름과 같은 생각 중 하나다. 구름이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듯, 행복에 관한 생각도 똑같이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그러나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를 바라보고 있는 현 사회에서 지나치면 안될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
지금까지 살면서 들었던 수많은 강연 중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강의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한번의 큰 행복보다 여러 번의 작은 행복에 더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는 것이다.
관점에 따라 사람은 행복감과 상실감에 대해 다르게 인식한다. 일례로 5만원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치자. 그러면 사람들은 갑자기 5만원을 가지고 있었을 때보다 잃어버렸을 때 그 가치에 대해 더 크게 생각한다. 5만원을 잃어버린 순간 ‘이렇게 잃어버릴 줄 알았으면 00이라도 샀을텐데…’ 라고 생각하는 등 평소였다면 아무렇지 않게 생활비로 소비됐을 5만원의 가치에 대해 훨씬 더 크게 느낀다.
그렇게 따진다면 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가지고 있는 ‘행복’을 잃는 순간 그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감사할 줄 알며 살아라”, “있을 때 잘해라”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일 터.
그렇다면 행복을 잃기 전에 깨닫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나는 어쩌면 로또 같은 큰 행복만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말이야...'라는 말은 '성공이란 말이야...', '인생이란 말이야...'와 같이 거창해야할 것 같고, 사람들에게 인상을 줄 수 있는, 혹은 들을 가치가 있어야만 하는 그런 이야기를 기대하듯 말이다. 그러나 행복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지금보다 약간의 빈도수를 올릴 수 있으면 된다. 이건 마치 롱테일 법칙과도 같다. 작은 행복들의 총합이 하나의 큰 행복보다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작은 행복을 찾다
갑자기 문득 생각난 강력한 행복이 있다. 바로 내새끼들. 우리 집 개 두 마리이다. 복돌이와 꼬꼬. 나이는 많고 돈도 많이 들고 말은 안 듣지만 분명히 개들과 함께 있을 때 난 행복하다. 개들은 아무런 편견과 근심 없이 삶을 산다. 그들은 주인과 함께라면 삶 전체를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게 얼마나 부러우면 가끔 출근할 때 “하루만이라도 나랑 바꿔서 살자. 너네가 출근해!”하면서 집을 나설 정도다.
아무래도 개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인 것 같다. 그런 복돌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면 아무리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이더라도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슬픈일이 있어 눈물을 흘려도 내 옆에는 내 눈치를 살피는 녀석들이 있다. 그러면 부둥켜 안고 엉엉 울다가도 개들의 꼬수운 냄새를 맡으며 이내 안정을 찾게 된다. 그녀석들의 큰 눈을 들여다볼때면 생명의 신비부터 무조건적인 사랑과 같은 감정까지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 행복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입 밖으로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걸 들으며 다시 되뇌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생각의 습관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결혼 후 이사로 인해 직장까지 매일 왕복 4시간을 통근하고 있다. 몸이 너무 힘들어 나 혼자 유행어를 만들었다. '몸이 부셔져도 가야한다'를 줄여서 '몸부가'라는 말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 때마다 말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남편은 '몸부가'가 '몸이 부셔져도 가즈아'로 알고 있는 것이다. '가야한다'와 '가자'는 전혀 의도가 다른데 말이다. 그런데 듣고 보니 '가야한다'는 내 의지 없이 어쩔수 없이 끌려가는 삶이었고, '가자'는 나의 주체적인 의지와 결의가 담긴 말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나도 그렇게 의미를 바꾸어 말하게 되었다.
자기계발의 고전으로 유명한 얼 나이팅게일은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것의 총합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일상에서의 생각에 아주 약간의 변형만 주면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주체적인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 모두 작은 일상적인 생각부터 조금씩 바꾸어 보면 어떨까.
#야속한 세월의 끝을 잡고
지금도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1년씩 시간이 흐를 때마다 공감하는 이야기가 있다. “갈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라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이 주제에 관한 짧은 EBS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할만한 일들이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특별한 일 없이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안했는데 벌써 9월이라니’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것도 행복과 이어진다. 자신만의 뚜렷한 행복에 대한 정의가 없는 상태에서 야속한 세월만 탓하는 것은 일상의 작은 행복을 놓치고 있는 것과 같다.
당장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찾아보자. 이 글을 읽는 순간 바로 떠올랐다면 “나는 행복합니다”를 입 밖으로 내뱉어보자.
"나는 오늘도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