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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by helloiam

시집 '내 삶이 향기 나는 삶이 아니어도 나는 나를 사랑하리'에 실었던 '엄마'입니다^^


엄마
나 어깨가 아파
그래서 애들 아빠가 병원에 데리고 와줬어
입원 수속을 마치고
침대에 가만히 누웠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어깨가 아프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엄마가 떠나갔던 날처럼


엄마
나 어깨에 구멍이 났대
나이를 먹으면 하나 둘 사라지나 봐


엄마
엄마가 세상을 떠난 나이보다
이제 나는 더 늙었어
엄마보다 늙은 할머니가 됐어
이제 나는 엄마가 살아보지도 못한 날들을 살아
그런데 아직도 잘 모르겠어
인생은 늘 처음 같아


엄마
내가 국민학교만 나와서 그럴까
그런데 엄마가 국민학교만 나와도
기술 배우고 열심히 살면
잘 살 수 있다고 그랬잖아
나 정말 잘 살았을까
잘 살았는지도 못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20살에 엄마를 떠나 부산에 신발 공장에 취직했을 때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어
악착같이 안 쓰고 한 푼 두 푼 봉투에 몰래 모은 돈
먼저 들어온 언니가 동생 병원비 한다고
빌려가고는 사라졌을 때도
3년 뒤에 기숙사를 떠나 얹혀살던 언니 집에서
언니가 데려온 남자가 더러운 농담을 할 때도
그래 나 엄마 많이 보고 싶었다
그냥 시골에서 밭이나 갈고 살고 싶었다

엄마
엄마가 늘 참고 살아야 산다고 해서
많이 참고 살았어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해서
못 배워도 내 분수는 알아야지
알아도 모르는 척하고 살았어

엄마
그런데 많이 아파
잠을 잘 수도 없을 만큼 아파
애들 아빠가 깰까 봐
소리 안 내고 아팠어


엄마
내가 분수를 모르고
산 적이 있었나 봐
그래서 벌 받나 봐


엄마
엄마도 그랬어
엄마도 아무도 몰래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혼자 울고 엄마 보고 싶어 했어


엄마
엄마가 살아있었으면
영희야 하면서 안아줬을까
할머니 된 딸도 내 딸이라고 안아줬을까

엄마
밤은 언제나 어둡네
밤에는 해가 안 뜨잖아
아들이 그러는데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아서 그렇데
그래서 아침에는 동쪽에서 해가 뜨고
밤에는 서쪽으로 해가 진대
이 큰 땅이 어찌 그렇게 도는지
그래도 이 야속한 밤이
꿈을 데리고 와서 가끔 엄마를 본다


엄마
엄마가 있는 곳은 어때
엄마 모시고 좋은데 한 번 가볼 걸
이제는 나도 약해져서
엄마 와도 어디 모시고 못 가

엄마
잠이 와
지쳤나 봐
가까운 날에 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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