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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iam Dec 12. 2022

초등학교 선생님 그만두고 세계여행

포르투 : 파두 공연, ‘괜찮아, 같이 가자.’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일기 예보를 보니 종일 비가 내릴 것 같다. 잘 되었다. 다음 여정을 계획할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남으면 지난 사진과 글도 편집해야겠다. 숙소 라운지 창가에 앉아 도우루 강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었다. 풍경이 아득했다. 그동안 많이 걸었는데 쉬기 좋은 하루다. 다음 일정을 조정하고, 지난 파리 사진을 편집했다. 파리도 비가 많이 내렸었다. 파리나 포르투나 빗소리는 비슷하네. 별다를 줄 알았다. 할 일을 마쳤는데도 비가 내렸다. 강은 이미 젖어 있었지만 계속 젖고 있었다. 마음이 동조했다. 그리운 것도, 외로운 구석도 없는데. 왠지 아쉽다. 사연이 먹먹했다.

 빈 곳은 없는데 허전했다. 마침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왔다. ’포르투, 오늘 파두 공연 동행 구함.‘ 파두는 스페인의 플라멩코 같은 전통 음악이다. 안 그래도 한 번은 공연장을 찾고 싶었다. 비도 오고 잘 되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공연장을 찾았다. 동행분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서버가 와인을 한 잔씩 나누어 주었다. 비 오는 날은 파전과 막걸리였는데. 와인이라. 내가 꽤 우아해졌다. 공연장은 악기상이었다. 평소에는 악기를 팔고 주 1~2회 정도 뮤지션을 초청해서 공연을 하는 듯 보였다. 기다리면서 벽에 걸린 포르투갈 전통악기를 둘러보았다. 낯선 악기, 낯선 세계.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자들이 입장했다.

 여자 성악가 한 명, 기타리스트가 두 명인 밴드였다. 기타리스트 중 한 사람은 열두 줄 포르투갈 전통 악기를 연주했다. 가설로 만든 작든 무대 위에서 여가수는 마이크 없이 공간을 채웠다. 발성이 대단했다. 단단한 목소리로 구슬픈 연기를 잘했다. 기타 연주도 상당했다. 정말 프로들이구나. 세상에는 뮤지션이 많다. 다만 악보 없이 구전된 파두는 몇 곡을 들으니 레퍼토리가 비슷했다. 구전은 한계가 있다. 지루할 즈음에 남은 와인을 마시며 빗소리를 들었다. 빗소리는 지겹지 않았다. 책장이 넘어가듯, 빗소리가 넘어갔다. 다른 소리는 멀게 들렸다.


 ​동행 분은 약속이 있다며 먼저 가셨다. 나는 악기가 낯설어서 조금 더 머물렀다. 열두 줄이나 되는 기타는 어떻게 연주하는 걸까. 나는 여섯 줄도 버겁던데. 매니저가 몇몇 기타는 연주해도 괜찮다며 권했다. 악기는 모두 수제로 제작한다고 알려주었다. 자부심이 느껴졌다. 전통악기는 버거워서 연습용 기타 한 대를 집었다. 오랜만에 악기가 진열된 방에 앉아서 기타를 연주하니, 실용음악학원 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기타실 벽에는 이렇게 기타들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연주 실력이 거의 늘지 않았다. 재주가 없다. 그나마 아는 노래 몇 곡을 기억을 더듬어 치고 있는데 무대 뒤편에서 기타리스트가 나왔다.

그는 조금 지켜보더니 기타 연주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작곡 전공을 했지만 조금이라고 답했다. 그는 답을 듣고 기타를 가져와서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블루스 기본 코드 진행 열두 마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잼을 하자고 했다. 나는 스케일을 거의 잊었다고 했다. 그는 괜찮다고 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엉망이었다. 멋쩍게 웃었다. ’괜찮아, 편하게 해.‘ 그는 찰떡같이 내 솔로에 맞춰주었다. ‘프로는 다르구나.’ 그를 믿고 나도 편히 쳤다. ‘1-4-1-1-4-4-1-1-5-4-1-5’ 같은 열두 마디를 몇 번 더 돌았다.​


블루스 잼은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편하지는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음악을 할 때는 늘 숨이 막혔다. 지겨운 인문계 고등학교를 떠나서 겨우 음대에 가면 뭐가 다를 줄 알았다. 다르긴 했다. 날마다 열등감이 늘었다. 귀도 손도 둔해서 음은 들리지 않고 들려도 연주를 못했다. 동기들은 들으면 연주를 했다. 개구리가 근력을 키운다고 사자를 잡아먹을 수 없듯이, 열심히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음대 합격 발표날, 처음으로 취한 아버지를 업었다. 우리 집 역사를 통틀어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그 뒤로 음악을 하면서 그런 날은 없었다.

음악을 하는 동안 몇 번 공황발작을 했다. 내가 열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정말 힘들었다. 좋아하는 만큼, 열등해야 하므로 비참했다.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므로 계속 비참했다. 군악대에 있을 때 어떤 선임은 나에게 삼류라고 했다. 알지. 알지만 속상했다. 속상하지만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억울하지도, 분하지도 않았다. 그냥 속상했다. 음악을 하겠다고 18살에 부모님께 선언했을 때, ‘삼류’란 내 머릿속에 없었는데, 결국 다른 사람에게서 확정받고 말았다. 뒤로 몇 번 더 기웃거리다, 아닌 걸 알고 그만두었다.​


‘괜찮아, 그냥 해, 계속해 봐.’ 그는 웃으면서 블루스 반주를 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여전히 버벅거렸지만, 그가 괜찮다고 하니 나도 괜찮았다. 한 음, 한 음 천천히 찾았다. 음 사이가 가깝지 않았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배웠던 라인을 최대한 떠올리며 맞춰주는 반주에 솔로를 했다. 잘한다는 것은 잘해준다는 뜻일까. 잘하는 사람은 잘할 때도 빛이 나지만 못하는 이에 발을 맞출 때 더 빛이 나는구나. 고마웠다. ‘못하다’와 ‘괜찮다’는 짝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못해도 괜찮아.’ 다정했다. 과시 없는 그와 잼을 마치고 악수를 나누며 헤어졌다. 공연장을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다. 우산을 접고 숙소로 걸었다. 걷는 동안 괜찮다는 말이 귀에 맴돌았다. ‘괜찮아.’ 그 한 마디를 듣고 싶었나 보다.

 4학년 교생 실습 때였다. 체육시간이었고 이어달리기 수업을 했다. 반 아이들은 두 편으로 나누어서 차례로 달렸다. 아이들은 잘 달렸고 배턴은 계속 이어졌다. 한 팀에 몸이 불편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차례가 되자 먼저 달리던 다른 팀 친구가 뛰기를 멈추고 기다렸다. 그리고 아이가 곁에 오자 손을 잡고 달렸다.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에 하나였는데 잊고 살았다. ‘괜찮아, 같이 가자.’ 생활은 이런 마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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