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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iam Dec 07. 2022

초등학교 선생님 그만두고 세계여행

Prologue 3


동루이스 다리, 도우루강, 포르투, 포르투갈


사직서를 내자 다른 선생님들께서는 방학 때 나가면 되지 왜 굳이 그만두냐며 말리셨다. 한 달이라도 해보고 결정하지. 예전에 세계여행 간다고 했을 때 그렇게 말리시던 엄마는 이제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격려해 주셨다. 나중에 포르투에서 사진을 보내드렸을 때 당신은 못하신 넓은 세상 다 보고 다니는 아들이 부럽다 하셨다. 아버지는 세계여행 그거 몇 번 보고 나면 다 똑같으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 열심히 하라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버지는 목수만 43년, 한길만 걸어온 장인이다. 나는 늘 그런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나에게는 아버지가 가우디와 다름없다. 아버지가 한눈팔지 않고 뒤에서 밀어준 덕분에 지금껏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한길만 가느라 미처 보지 못한 세상을 보고 싶었다. 아버지와 다른 의미로 멋있게 살고 싶다 말씀드렸다.

 인문계에서 음대로 음대를 그만두고 다시 교대로, 그동안 온갖 꼴값을 다 본 친구들은 니가 일등이라며 응원해 줬다. 부럽다고 했다. 이제 아이를 하나 혹은 둘은 키우고 있는 친구들에게 세계여행은 꿈이 아닌 판타지다. 그들에게 세계여행이란 은하를 건너뛰는 것과 같다. 사직서를 낸 순간 우리는 다른 우주로 흩어졌다. 퇴근해서 아이들을 돌보다 모두 잠든 밤에 혼자 오징어 땅콩에 맥주 한 캔, 소주 한 잔 마시는 나른한 외로움을 공감해줄 수 없어서 미안했다.

포르투, 포르투갈

물론 말리거나 코웃음치는 친구들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세계여행이란 일상에서 위로를 찾지 못한 패배자의 도피일 뿐이다. 나는 현실이 현실을 먹고 살면 자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달콤한 낭만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나는 도피일까, 모험일까.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어딘가에 내가 있겠지. 중요하진 않았다. 어디에 있든지 나는 늘 여기에 있을테니까. 내가 걷는 걸음에 따라 그들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중요한 사실은 다음에 내디딜 걸음은 오직 나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 나는 내 길을 가기로 했다.

낙타, 마라케시, 모로코.

다른 선생님들 혹은 아버지 말씀처럼 방학을 이용해서 나갈 수도 있었다. 겨울방학이 오길 기다렸다가 발리에 가서 내가 생각한 이미지 속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었다. 일을 그만두지 않고도 남은 60번의 방학을 통해 평생에 걸쳐 세상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만두기를 선택했다. 여행을 핑계로 아무 계획 없이 살아보고 싶었다.  

‘살면서 마음이 정말로 편하고 좋았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항상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몸은 움직여주지 않고, 상황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고... 지루한 나날들의 반복. 딱히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문제가 없다는 말도 못 한다.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

해방. 해갈. 희열.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있던가? ‘아, 좋다. 이게 인생이지.’라고 진심으로 말했던 적이 있던가? 긴 인생을 살면서 그런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는 게이상하지 않은가?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살다가는 게 인생일 리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혹시 아무것도 계획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 보면 어떨까?

혹시 아무나 사랑해 보면 어떨까?’​

나의 해방일지 |

알함브라궁전, 그라나다.스페인

나의 해방일지는 여행 중에 보게 되었는데 보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해방을 원했구나. 늘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지만 상황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고 결론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늘 ‘저 문턱을 넘어서면’, ‘이 문턱을 넘어서면’, 달라지겠지 달라질 거야. 하지만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한편. 그래서 아무것도 계획되지 않은 세상에 나를 던져보고 싶었다. 그냥 흘러가고 싶었다. 어차피 넘어서도 달라지는 게 없다면 이제 그만 넘을래. 나는 그만. 아버지는 그게 사는 거라고 어디를 가도 삶의 이유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그렇다면 어디를 가도 상관없다고 말씀드렸다. 어디를 가도 삶의 이유가 있다면 굳이 여기 있을 이유도 없었다.


나는 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해방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충돌하고 싶었다. 넘기를 멈추고 해방되어 우주를 계획 없이 유영하다 어느 순간 나처럼 또 다른 일생을 메고 있는 세계와 강하게 충돌해서 모든 것이 부수어지기를 원했다. 모든 것이 파편이 되면 그중에 가장 무거운 어떤 것이 다른 파편들을 끌어 새로운 별을 만든다. 나는 그 별을 원했다. 지난날을 부정하기 위한 별이 아닌 순환의 과정으로서 새로운 생명력을 지닌 별. 넘기를 멈추고 해방되어 충돌을 원한 이후로 지난 바람을 하나 둘 정리했다. 기타를 메고 세계여행을 하겠다는 오랜 동경도, 사랑에 대한 굴종스러운 태도도, 막연한 불만과 구체적인 미움들도. 어차피 조각날 일이라면 이제 괜찮다. 새로 태어날 별빛과 새로운 바람이 나를 환대할 테니. 지는 해를 깨우려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게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방현종, 방문객



염색공장, 페즈, 모로코.

모든 것을 준비하고 일을 그만두자 코로나가 터졌다. 2020년 1월 어느 겨울밤, 차가운 쇠사슬로 굳게 잠겨 있던 동사무소 헬스장은 그 뒤로 2년 동안 얼음이었다. 3개월이면 곧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계절을 두 번 보냈다. 누가 땡 하고 풀어주면 좋겠지만 아무도 풀어주지 않았다. 모든 게 지긋지긋해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지긋지긋한 세상은 자꾸만 좁아졌다. 전염병은 내가 단절되고 싶은 곳과 닿고 싶은 곳 정확히 그 사이에 선을 그었다. 작은 바이러스 분진이 지구 위를 덮고 낮과 밤은 구별을 잃었다. 밤 9시가 되면 도시는 그나마 남아 있던 불빛마저 잃었다. 이른 밤 모든 불빛이 사라진 길은 봄에도, 여름에도 늦가을처럼 마른 소리를 냈다. 유일하게 매일 만나던 친구의 얼굴은 시간이 흐를수록 오랜 유물처럼 닳았다. 우리는 무너지는 서로의 표정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사람은 사이를 잃으면 생기를 잃는다. 전염병은 매일 숫자로 뉴스를 채웠다. 매일 죽은 사람의 숫자와 병에 감염된 사람의 숫자가 다른 모든 것을 제치고 속보로 전해졌다. 병이 늘어나는 숫자와 반비례로 세상은 온기를 잃었다.


차가워진 세상에서 내 희망의 유통기한은 3개월이었다. 나는 3개월을 주기로 기대하고 좌절했다. 그리고 두 번의 주기마다 볼품없이 무너졌다. 처음은 늦장마가 남부지방에 비를 퍼부을 때였다. 코로나를 제외한 많은 것들이 떠내려갔다. 뉴스에는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들의 숫자 외에 다른 숫자가 등장했다. 빗방울의 숫자, 조각난 벽돌과 집을 잃은 소와 강아지의 숫자 그리고 희망을 쥘 수 없는 사람들의 숫자. 나는 이때 이후로 ‘일상의 위로는 일상에 있다’는 말로 위로하지 않는다. 일상과 일탈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일상의 위로란 소소한 안녕이 아니다. 일상의 위로란 낙원의 언어이다. 위로의 언어가 아니라 축하의 언어이다. 내가 단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여권을 들고 어떤 나라든 갈 수 있는 축복과 같다. 일상의 위로는 발견이 아니라 날이 좋을 때 잎에 반사된 푸른빛처럼 그저 주어지는 것과 같다. 물론 그마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일상은 언제나 지옥이다. ​


 감염과 잠식 두 공포가 세상을 질식시킬 때 나는 갈아입을 옷만 챙기고 집을 나섰다. 스마트폰도 두고 왔다. 나중에 스마트폰은 챙기고 나올 걸 후회를 했다. 모두와 닿지 않자 모두는 내가 죽은 줄 알았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나를 찾았다. 장맛비가 대차게 내리는 데다 누군가가 실종되었을 때 찾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넘거 벼렸기 때문에 나는 죽은 사람이 되었다. 모두가 나를 찾을 때 나는 피시방에서 게임을 했다. 내가 자주 가던 피시방 천장은 장마를 이기지 못하고 빗물을 토해냈다. 나는 토해낼 게 없었다. 옆 칸 컴퓨터 위로 쏟아지는 빗물이 아름다웠다. 빗물이 너무 쏟아지면 우산을 챙겨서 편의점으로 가 술을 샀다. 숙소에서 술을 마시다 마시다 더 버틸 수 없을 때 잠을 잤다. 일어나면 빗물이 쏟아지는 피시방에서 다시 게임을 했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자 실종 신고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이코 패스처럼 화를 냈다. 왜 나를 스스로 죽을 사람으로 보는 걸까. 나는 그냥 쉬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왜 마음 편히 쉬지 못해. 엄마에게는 무릎을 꿇고 빌었다. 처음으로 사람에게 무릎을 꿇었다. 제발 나를 그만 괴롭혀달라 빌었다. 아버지에게는 도대체 나는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는지 역정을 냈다. 친구에게는 왜 아직도 나를 모르냐고 화를 냈다. 그냥 쉬고 싶을 뿐인데 왜 난리야 다들. 나는 미친 사람이었다. 나는 병든 사람이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은 아무 말 없이 내 광기를 받아주었다.

폼페이, 이탈리아.

그 뒤로 나는 한 번 죽었다고 생각했다. 해방도 충돌도 의미가 없었다. 낮에는 기타를 치고 율지가 퇴근할 즈음에 같이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했다. 그 밖에 다른 트랙들은 모두 뮤트 시켰다.

 신데렐라도 밤 12시에 돌아가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는 밤 10시면 마법이 풀렸다. 군대도 아니고 밤 10시에 잠을 자기에는 하루가 너무 아까웠다. 율지와 헤어지고 피시방에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닭발이나 육회 같은 안주를 시켜 소주를 한 병, 부족할 땐 두 병을 마시고 잤다. 술을 마시면 기절하듯이 잠을 잘 수 있어서 좋았다. 매일 반주하는 친구들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율지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나는 율지가 술도 없이 그 캄캄한 밤들을 어떻게 그렇게 매일 보내는지 신기했다.​​


 '너는 모든 사람들이 네 곁에 머무르려 하잖아.’ 두 번째로 넘어졌을 때는 오박사가 붙잡아 주었다. 뻔한 말인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눈 앞에 모든 것들이 희미해지다 지워질 때까지 울었다. 안개가 무겁게 깔린 것처럼 가로등 불빛이 퍼졌다. 길에 있는 사람들, 택시, 아파트, 모든 것들이 그대로 퍼지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물방울이 되면 좋겠다. 나는 언제 이 도시를 벗어날 수 있을까. 10년이면 10년이라고 30년이년 30년이라고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 누가 말해주길 원했다. 하루라도 좋으니 단 한 걸음이라도 좋으니 눈을 감았다 뜨면 제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어라. 그럼 감사합니다. 내가 다시 모두의 곁에 머무를게. 그 때는 내가 할게. 그렇게 또 일년을 보냈다. 오박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일년을 더 손에 쥐어주었다.


여행을 오기 전 마지막 겨울, 민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이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했고 여행은 못갈 것 같다. 모든 것이 끝난 게임에 혼자 나가지 못하고 남아있다. 그만해도 될 것 같다. 왜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제 해보고 싶은 건 다했고 이제는 그다지 이루고 싶은 것도 없는데. 왜 계속 여기에 있는 걸까. 매일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고 밤이 되면 혼자 소주를 마시는 것도 지겹다. 이제는 정말 지겹다. 지겨운 것도 지겨울 즈음에 덫에 혼자 다리를 집어 넣는 사람을 보았다. 그 뒤로 눈알에 발목이 가득 찼다. 내 발목도 잘리기 전에 나는 나가야겠다. 서둘러 파리행 비행기를 예매했다.


쉐프샤우엔, 모로코.

기어이 나온 세계 여행 첫날, 파리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늦은 밤, 나는 ‘안녕, 나의 세계’ 속으로 인사했다. 당신의 영혼이 평온하길 바란다는 우리말의 정서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떠나는 곳에는 남아 있는 미련과 미움을 정리하며 안녕을 한 번 빌었다. 차마 다 전하지 못한 미안함이 남은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평온하길 바라며 안녕을 또 한 번 빌었고 내 멋대로 안녕하길 바라기도 염치없을 만큼 미안한 사람에게는 속으로 한 번 더 사죄하면서 안녕을 빌었다. 그마저도 싫을 사람에게는 신이 안녕을 빌어주길 기도했다. 새로 만날 곳에는 잘 지내고 싶은 마음에 안녕을 빌었다. 부디 평온해서 내 부족함까지 다 안아주길 기도하면서, 상대의 안녕을 기대하며 내 안녕을 기대할 수 있음을 배우면서. 늦은 안녕도 품에 안기길 바라면서.​


 여행, 봄과 여름을 걷는 동안 내 손톱에는 초록빛이 가득 베었다. 언제든 잊지 않고 청약해야 할 1순위는 바깥이 소란할 때 쉴 수 있는 풍경 한 켠 마음에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하면서 내 마음속에는 언제든 숨을 수 있는 풍경이 꽤 쌓였다. 전에는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누명 쓴 사람처럼 밤새 침을 삼켰는데 이제는 내 마음에 보물을 알아보지 못하는 당신들이 손해라며 뻔뻔해졌다. 다른 사람들 곁에서 농담을 하고 싶어질 만큼 거리가 생겼고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미움도 모래 속으로 다 사라졌다. 상처는 상처로 밖에 위로될 수 없다는 모순은 이제 스치며 웃을 수 있을 만큼 편해졌다. 돌아가면 다시 똑같은 일상이라고 잠 쉬 취해있을 뿐이라고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은 푸념하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노인이 되어서 이 날을 떠 올리면 영원한 사랑을 해 본 사람처럼 미소 지을 것 같은데. 정말 똑같을까 말대꾸도 하고 싶어졌다.


돌아가면 내 젊은 시절은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이미 친구들 몇몇은 조금씩 젊음을 그들을 닮은 아이들에게 넘겨주고 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찬란한 시절, 나의 청춘은 사인 곡선을 타면서 그 위에 좌표를 빼곡히 남겨 두었다. 마지막 좌표를 찍을 즈음에는 끝난 게임에 혼자 있는 것처럼 퍼져 나가지 않는 메아리를 증폭해서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내 초록 곡선 위에는 노란 개나리 꽃과 하얀 벚꽃이 여전히 푸릇한 봄과 함께 머물러 있다. 모른 척할 수 없는 길었던 나의 봄. 여해을 마치고 청춘에 마침표를 찍은 뒤에는 가지를 길게 뻗어서 그늘을 드리우고 싶다. 밀려올 청춘들이 열기를 식힐 수 있는 푸르르 노인이 되고 싶다. 굴종스럽게 사랑하지 않는 사람 곁에서 비가 내리네, 꽃이 폈네 뻔한 이야기를 하다 순서대로 죽고 싶다. ​


 마지막으로 내 사진과 이야기가 떠나라며 누구도 부추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떠나야 할 이유가 아니라 창 밖, 살랑대는 여름 잎을 한참 응시할 수 있는 휴식이길 바란다. 아파트 안 작은 공원 그늘진 벤치 위에서 언제든 나눌 수 있는 그런 이야기. 글을 쓰고 사진을 편집하면서 곽진언의 노래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다섯 걸음씩 걷고 어떤 사람은 두 걸음씩 걷는다. 곽진언의 노래는 내 시간을 붙잡아 너그럽게 흐르게 한다. 내 이야기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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