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2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와서 당신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랑이 들어오기 전에는 누구나 사랑할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랑했거나 사랑하고 있는 어떤 사람도 사랑할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어서 사랑했거나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은총이나 구원이 그런 것처럼 사랑은 자격의 문제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사랑의 생애 | 이승우 저
아이들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교실에 있는 동안은 사랑의 숙주처럼 살았다. 아이들은 잘 못 하는 사람들이라는 예전 독서지도사 선생님 말씀은 더불어 아이들을 보는 눈을 편하게 해 주었다. 잘하든 못하든 이상하게 너그러워졌다. '너네는 그래도 괜찮아.' 교실은 특별한 공간이었다. 엄마는 교실에서 아이들 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대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교실 밖을 나서면 그게 잘 안 됐다. 툴툴대고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많았다. 교실 밖에 일들이 교실 안에서 아이들한테 영향을 미칠까 신경을 많이 썼는데 잘 안될 땐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러다 언제가 내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교실 안에 아이들은 예뻤지만 교실 밖에 마음이 점점 교실 안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하고 꼴도 보기 싫은 마음을 다 정리하지 못하고 교실로 들어서는 게 너무 힘들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봄’이라며 위선을 떠는 게 너무 뻔뻔하다 생각했다. 하루는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교실에서 혼자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쉬는데 불현듯 발리 어떤 스튜디오에서 요가나 운동을 하고서 땀을 흠뻑 흘린 내가 대자로 누워서 펑펑 우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한 번 울고 나면 혈관에 낀 모든 때가 깨끗하게 씻겨져 나갈 것 같았다. 그럼 다시 교실에 맘 편히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사직서를 냈다. ‘금번 개인 사정(여행)으로 인해 사직하고자 하오니 청허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연히 떠오른 이미지 하나를 시작으로 많은 일을 필연처럼 이어갔다. 차를 포함해 가진 것들을 다 팔았다. 나에게 남은 건 떠나려는 마음 하나와 일을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 그리고 물건을 팔고 남은 여비 조금이 전부였다. 이 돈으로 여행하다 길에서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교실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로 늘 마음에 부채가 있다. 앞서 살았다고 님자를 붙여 선생님이라고 한다. 나는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니라서 애초에 선생님을 오래 할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