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
사랑하면 알고 싶어 진다. 내 이름을 부를 때 눈 깜박임, 기분이 나쁠 때 걸음의 속도, 캄캄한 밤 골목길을 혼자 걸을 때 듣는 노래와 떠올리는 생각들. 모든 것이 궁금해진다. 나는 이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선생님으로 내가 하는 일이란 그들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가르치려 하면 할수록 아이들은 모르려고 했다. 그저 맘 편히 사랑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면 어떤 방식이든 그들은 각자가 사랑하는 것들을 알아가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장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닿아야 할지 모를 때만 나만큼 실수하지 않고 속상하지 않길 바라면서 내가 아는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사랑은 세계를 이해하는 처음이다.
처음. 학교에서 처음은 3월에 시작된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면 아이들 단체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나는 그 사진이 좋았다. 처음을 걱정하면서 동시에 기대하는 아이들 얼굴이 아이들다워서 좋았다. 일 년 내 교실을 드나들며 사진을 보면 아이들이 얼마큼 컸는지 알 수 있다. 아이들은 금방금방 자란다. 자랐구나 생각하면 별 탈 없이 왔구나 안심이 되어 좋았다.
사진 밑에는 예전 급훈처럼 짧은 글귀를 하나 적어둔다. 나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 ‘봄의 연가’에 담긴 문장을 한해도 빠지지 않고 적었다.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한 해 동안 서로 사랑하면서 봄같이 살자, 아이들한테 이야기하면서 나한테 이야기했다. 사랑하면 알고 싶어 지니 서로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길 또한 바랐다. 나는 이 문장을 아이들이 ‘반드시 서로 사랑해야 봄이다’라는 식의 의무가 아닌 그냥 자연스러운 자연계의 법칙이나 사실처럼 이해하길 원했다. 기온에 따라 물이 얼음이 되거나 기체가 되는 현상처럼 혹은 적당한 온도가 되면 씨앗이 싹을 틔우는 일처럼.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살아서도 봄. 죽어서도 봄.'
꼭 거인의 정원 같았다. 아이들이 있는 교실은. 밤새 마음에 내린 눈도 아침 교실에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금세 녹아내린다.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자란다. 쉬는 시간, 교탁 앞에서 시야를 다 가리고 짹짹이는 참새들. 복도를 지날 때면 오른손 손가락에 두 명, 왼손가락에 두 명, 바짓 주머니 끝에 두 명, 앞 뒤 옷깃에 두 명, 안 난 이로 엄마 털을 물듯 잡을 수 있는 곳은 모두 쥐고 졸졸 따라오는 강아지들. 교실 창 밖으로 들려오는 운동장 흙이 날리는 소리. 공기에 정적이 가득 찼을 때 종이 위에 연필을 묻는 소리. 학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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