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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iam Feb 19. 2023

초등학교 선생님 그만두고 세계여행

모로코 : 사하라, 서로를 기억해 주는 일. 

사하라 하늘과 모래뿐이다.

[사하라, 모래와 하늘 그리고 낙타]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나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사막 | 오르탕스 블루


사하라에는 모래와 하늘 밖에 없다. 세상에 오직 두 가지 색만 존재한다. 명도가 높은 파랑과, 채도가 높은 회황. 사막에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란 덜고 덜다가, 더 이상 지울 수 없을 때 남은 순수가 본질인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든다. 그리고 사하라는 이런 순수가 끝도 없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매우 극단적으로 멀리. 만약 혼자서 덩그러니 사막에 남겨진다면 얼마가지 못하고 미칠 것 같았다. 빛과 어둠이 서로의 짙음으로 선명해지듯이 사막이 극단적일수록, 나의 정체성도 짙어질 것이다. 나는 그런 분명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사막은 아름다움과 두려움 양극단의 세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였다.


모래와 하늘뿐인 사막은 사방이 비슷했다. 깊숙한 사막으로 들어갈수록 방향을 알기 어려웠다. 태양이 중앙에 있을 때는 특히 어지러웠다. 우리를 안내해 주던 가이드 알리는 사방이 같은, 도무지 방향을 알 수 없는 모래 세계에서 길을 잘도 찾았다. 경이로웠다. 문득 궁금스러웠다. 표지가 넘쳐나는 도시에서 일생을 사는 우리와 아무런 표지를 찾을 수 없는 세계의 알리, 우리는 스스로를 인식하는 프레임이 같을까. 같은 시대정신에 잠긴 도시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다름과는 다른 차원의 이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다. 관광객과 가이드로서 역할에 충실한 우리는 각자의 일을 하며 서로 어울리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든 적절한 어울림의 방식으로 어울리면 그만이다. 알리는 능숙하고 친절한 가이드였다.

사하라에서 낙타를 타고!


우리는 낙타를 타고 다녔다. 혹이 하나 있는 단봉낙타였다. 기린만큼 컸다. 눈망울 왠지 슬퍼서 올라타기가 미안했다. 게다가 처음 타려고 하면 크게 휘청거리면서 죽는소리를 내는 통에 범생물적인 동정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낮 동안의 사막의 열기는 도무지 견디기 어렵고, 낙타 위에 있으면 사막이 더 멀리 보이는 데다, 꿀렁거리면서 나아가는 즐거움도 있어서 이내 인간 중심주의로 회귀했다. 낙타는 낙타의 일을 나는 나의 일을. 그럼에도 언덕을 오를 때는 낙타 선생이 너무 버거워해서 꽤 미안했다. 내가 낙타라면, 등허리를 흔들어서 집어던졌을 텐데. 낙타는 꽤 착한 편이다. 푹푹 거리는 모래를 잘 걸어주었다. 사막투어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특유의 꿀렁이는 느낌이 몸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 모두가 떠난 뒤, 생생하게 그리워할 수 있었다.


얼마간 낙타 선생을 타고 가다 보니 저 멀리서 초록 나무가 보였다. 말로만 듣던 오아시스인가? 오아시스는 아니었지만, 온통 모래와 하늘로 지글거리던 세상에 초록과 그늘이 나타나니 굉장히 선정적으로 반가웠다. 모래가 가득 찬 신발과 양말을 털고, 그늘 아래 누웠다. 곧 세이드와 알리가 사막과는 어울리지 않는 과일과, 과자, 음료수, 음식을 또 끝도 없이 내왔다. 신통했다. 밥을 먹고, 샌드보드를 타고, 다시 그늘에서 얼마간 누웠다. 만수르, 그가 부럽지 않았다. 사막에서 같이 있으니, 만난 지 이틀도 안된 사람들인데, 다들 친숙하고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 같았다. 서로 누구 닮았는지 수다를 떨었고, 아이폰에 저장해 둔 노래도 들었다. 인터넷이 안 터져서 미리 저장해 둔, 레드벨벳의 필 더 리듬이나 아이브 노래를 들었다. K-POP은 사막에서 들어도 좋았다. 그리고 다시 앓는 소리 내는 낙타를 타고 우리가 머물 베이스캠프로 떠났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사막 속으로 들어가자, 저 멀리서 먹구름이 보였다.


[폭풍의 언덕, 주기적 광영]

모래폭풍이 정말 대단했던 사하라 사막

‘사하라엔 일 년에 비가 세 번 와요.’

먹구름을 깊어지자 알리가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 세 번 중에 한 번이 지금이려나. 먹구름이 머리 위를 덮으면서 모래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나는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버텼지만, 다른 친구들은 입과 눈에 모래가 들어서 힘들어했다. 모래 언덕 모서리마다 실타래 풀리듯, 모래가 풀렸다. 모래폭풍은 점점 거칠어졌고 그만큼 불안해졌다. 별 보러 왔는데, 먹구름이 이리 꼈으니 안 되겠다. 파리에선 추웠고 마드리드에선 묶였는데, 사하라에서도 별 수 없네. 조금 모질다. 모래는 견딜 수 있지만, 별이 사라지는 것은 견디기 서운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우울하기 억울했다. 그래서 그냥 ‘행복은 선택.’하고 속으로 외웠다. 그래 차라리 비 와라. 아예 세차게 내려라. 일 년에 비가 세 번 온다고 했는데, 내가 그 주인공이 되자. 별 없으면 어때, 별빛 대신 비 맞자. 누가 사막에서 비를 맞겠냐.


오히려 잘되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과 부딪혀서 산산조각 나고 싶었다. 되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설렜다. 모래바람이 몰아치면 두근거림이 북을 치듯 가슴을 때렸고 핏줄에서 피가 뛰는 게 느껴졌다. 나 지금 살아있다. 모래바람아 더 불어라, 한 번 파묻혀 보고 싶다. 소리를 지르고, 내키는 대로 뛰었다. 행복하다. 나는 지금 여행 중. 나중에 순용이 베이스캠프로 돌아갔을 때 물었다.


‘형님 아까 모래에서 소리 지를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 모래로 분해돼서 날아가는 기분이었어요.’ 정말 그랬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듯한 쾌감이 있었다. 순용은 그 순간이 너무 강렬해서 시간이 조금 지나야 지금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멀리서 날아오는 감정은 어떤 느낌일까. 언젠가 지금이 될 순용의 회고가 궁금했다.


언덕에 앉아 모래 폭풍 사이로 일몰을 보았다. 모래바람 때문에 풍경은 그레인이 잔뜩 낀 필름사진 같았다. 모래로 이어진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저물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태양은 완벽한 원이었다. 태양이 사라지자 노을을 느낄 새도 없이 명도가 사라진 파랑이 하늘을 덮었고, 곧 어둠이 되었다. 그리고 먹구름이 사라졌다. 거짓말처럼. 조금 전까지 하늘을 덮고 있던 그 모래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 초승달이 떠올랐다. 별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가 참. 조금 멍한 채로 어슴푸레한 어둠을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기 멀리 베이스캠프의 불빛이 보였다. 모래 속에 파묻혔던 어떤 신비로운 이야기를 마침내 찾아낸 모험가처럼 열락을 느꼈다.


베이스캠프에서 달빛 아래 우리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순용이 말했다. ‘사진으로 담고 싶었지만, 배터리가 없어서 놓쳤어요.’ 나는 대신 오래 기억해 달라고 했다. 아프지 말고 오래 살면서 그 순간에 나를 기억해 주세요. 순용에게 말하자, ‘함께’라는 의미가 파도처럼 덮쳤다. 우리는 서로를 기억해 주는 기억이었다. 모래 위에서든, 바닷속에서든, 나의 모든 장면은 오롯이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너와 그리고 또 너의 머릿속에서 너를 닮은 채로 남아 있다. 그들이 사라진다면, 나의 일부분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어떤 어떤 미움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승달이 뜬 밤이면, 순용과 나누었던 대화와, 사하라의 밤이 떠오른다. 첫 초승달은 한 달 뒤, 이탈리아 살레르노에서 보았다. ‘어 초승달이네,’ 하는 순간 항구 앞을 채웠던 검은 바닷물이 온통 검은 모래가 되었다. 사람은 반사적 광영에 산다지만, 나는 때가 되면 나를 비추는 이런 주기적 광영으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날아가는 모래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
사막에서 즐거웠다. 
다 같이 사하라에서 바라본 일몰
지는 해와 저 멀리 어디론가 떠나는 낙타와 사람들
베이스캠프 가는 길


[사하라 별똥별 그리고 행복]


가장 큰 게르가 식당 겸 공연장이았다. 미리 도착한 셰이드가 사람들과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셰이드는 핫산 동생이자 사하라에서 모든 일을 관리하는 총괄 매니저다. 낙타, 점심, 샌드보드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현지에서 유란 님의 유스피아 일을 돕는 사람도 셰이드였다. 훤칠한 미남인데 일도 잘해서 무슨 일을 하든 폼이 났다. 셰이드와 저녁을 같이 준비하는 사람들은 직원들이라지만 다들 한마을 사는 셰이드 친구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가족 식당처럼 친근한 느낌이 있었다.


저녁을 먹기 전 셰이드와 간단한 티타임을 가졌다. 친절한 셰이드는 모로코인이지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하라 베르베르인의 이야기나(세상에는 우리 같은 단일 민족이 별로 없다.) 모로코식 작명법(첫째는 무조건 핫산, 둘째는 무하마드 셋째는 - 하는 순서가 있었다) 등을 들려주었다. 영어를 잘하는 네덜란드 유학생 삼인방은 꼬리를 이어서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종일 모래먼지를 뒤집어쓰느라 꼬질꼬질했지만 사막 깊은 데서도 호기심 가득한 이 청춘들이 얼마나 빛나 보였는지 모른다. 부럽기도 했다. ’ 나는 저 나이에 저리 못했는데.‘ 우리 제자들도 이리 주도적으로 자기 길을 찾아가면 좋겠다. 언젠가 제자 중 하나가 교환학생이 되어 사하라로 여행을 갔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나의 노인 시절이 꽤나 다정할 것 같다. 젊은이들의 꿈은 노인에게는 과거를 각색하는 선물이지 않으려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저녁 식사가 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전라도 큰할머니 같은 사하라 사람들은 역시나, 푸짐한 저녁을 차려주었다. 똥강아지 손주 먹이듯 챙겨주는 게 마냥 고마웠다. 이번 디너에는 특식으로 한국인 입맛을 흉내 낸 비빔면을 내주었다. 조미료 때문인지 김치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정성이 고마웠다. 조금 아쉬워서 라면 수프를 넣었더니 익숙한 감칠맛이 났다. 느끼하고 텁텁한 양식이 물리고 한식이 그리울 때면, 라면 수프는 언제나 수준 높은 미슐랭 셰프처럼 입맛을 돋구웠다. 사하라에서도 제 몫을 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베르베르인 전통 타악 공연이 시작되었다. 가이드를 했던 알리와 셰이드, 그리고 저녁을 짓던 친구들이 이번엔 악사가 되어 북을 쳤다. 1인 다역을 연기하는 연극배우들 같았다. 나는 한풀이하듯 춤을 추고 놀았다. 하루 동안 정말 순도 높은 여행을 했다. 하루가 24k 금두꺼비 같았다.

모든 것을 바쳐서 놀았다


저녁을 먹기 전 셰이드와 간단한 티타임을 가졌다. 친절한 셰이드는 모로코인이지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하라 베르베르인의 이야기나(세상에는 우리 같은 단일 민족이 별로 없다.) 모로코식 작명법(첫째는 무조건 핫산, 둘째는 무하마드 셋째는 - 하는 순서가 있었다) 등을 들려주었다.

영어를 잘하는 네덜란드 유학생 삼인방은 꼬리를 이어서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종일 모래먼지를 뒤집어쓰느라 꼬질꼬질했지만 사막 깊은 데서도 호기심 가득한 이 청춘들이 얼마나 빛나 보였는지 모른다. 부럽기도 했다. ’ 나는 저 나이에 저리 못했는데.‘ 우리 제자들도 이리 주도적으로 자기 길을 찾아가면 좋겠다. 언젠가 제자 중 하나가 교환학생이 되어 사하라로 여행을 갔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나의 노인 시절이 꽤나 다정할 것 같다. 젊은이들의 꿈은 노인에게는 과거를 각색하는 선물이지 않으려나.


졸도할 듯 춤을 추고 지칠 즈음에 밖에 나가서 별을 보았다. 세상 전체를 덮은 듯한 밤하늘에는 별이 환장하고 터진 꽃잎 마냥 흐드러지게 빛나더라. 우리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별똥별도 이따금씩 떨어졌다. 나는 여행이 마지막 남은 소원이었기 때문에 달리 빌 것이 없었다. 다만 그새 나의 소원이 더 생겼으므로 다음 별똥별이 떨어질 때는 내가 더 빨리 소원을 빌어버릴 생각이다.

별빛이 뚝뚝 흐를 만큼 젖고 나서 캠프로 돌아갔다. 모로코식 게르 안으로 들어가면 양탄자와 고급스러운 침대가 우아했고 화장실은 청결했다. 고대의 여봐라 하던 아프리카 거상도 사막을 건널 땐 이런 집에서 자며 단 꿈을 꾸었겠지. 아마도 사랑의 기한이 만년인 것처럼. 그 사람들은 여기 어딘가 내가 종일 밟고 다닌 모래가 되었으리라. 몇 천년 뒤에 누군가 모래로 퍼진 나를 밟는다면, 오늘 행복했던 나를 상상해 주면 좋겠다. 여러분, 한국에서 이러이러해서 직장 때려치우고, 사하라까지 기어들어간 나를 꼭 상상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 행복했습니다.

사하라에서 보았던 별

침대에 앉아 순용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행복에 관한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행복은 선택.’ 차분히 듣던 순용은 종종 행복을 생각하면 강요받는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 횡의 공감을 나눴다. 순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경우라면 그냥 행복을 선택하고 별다른 추종을 치워버리고 싶었다는 것을 알았다. 순용의 말은 끌처럼 내 생각을 조금 더 깔끔하게 조각했다.


피곤함 때문에 대화를 정리하지 못하고 끝마치게 되었는데, 누가 먼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글로 써서 보내주기로 했고, 몇 달 뒤 내가 이스탄불에 있는 동안 순용은 행복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보내 주었다. 흘러 지나칠 수 있는 약속을 지켜준 그가 참 고마웠다. 거울에 비춰서 물리적인 나를 보는 것도 좋지만, 마주한 사람에게서 심리적인 나를 비춰 보는 것도 얼마나 좋은지. 이런 대화들이라면 나는 백 시간이든 천 시간이든 멈추지 않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야기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번갈아 간단히 씻었다. 하루 종일 모래를 뒤집어썼더니, 아무리 씻고 나와도 침대에 모래가 쌓였다. 하루가 금두꺼비 같더니, 모래도 참 잔금 같다. 사하라 오기 전, 십오 유로만 내면 숙식 가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사막의 모래가 다 금가룬가 했는데 와보니 정말 다 금가루다. 사하라를 생각하면 뇌 어딘가가 금빛 윤슬처럼 반짝인다.


짧게 자고, 다시 낙타를 탔다. 핫산네로 돌아가는 길에 모래로 이어진 지평선 너머로 이번에는 해가 떴다.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그리고 미처 사하라의 여운을 나누기도 전, 다음 일정을 위해 수빈님이 떠나고 네덜란드 삼인방이 차례로 떠났다.

다시 핫산네로 돌아가는 길에 일출과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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