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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iam Feb 15. 2023

초등학교 선생님 그만두고 세계여행

모로코 : 사하라 가는 길. 

 

사하라 가는 길에 어떤 마을

카림과 인사하고 약속한 시간에 택시를 탔다. 체구가 건장한 모로코 형님이 운전을 하셨는데,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에 능통한 멀티 링구얼이었다. 세상에는 숨은 능력자가 참 많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모두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수빈님이 가는 동안 이런 저런 것들을 물어봐 주었다. 그저 갓수빈이다. 수빈님과 둘이 사막에 가는 줄 알았는데, 핫산이 다른 한국인 동행 셋을 구했으니 같이 타고 오라고 알려주었다. 우리처럼 라마단이라 버스를 구하지 못한 친구들이 아침에 급하게 핫산에게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는데, 강아지 같이 작은 셋이 나타났다.

동생들을 만난 버스터미널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저희는 네덜란드 유학생들인데, 아침에 버스 티켓 없어서 진짜 당황했어요. 핫산한테 연락했더니 택시 타고 들어가는 한국인들이 있다고 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잠깐 방학? 같은 것을 이용해서 모로코에 왔다고 했다. 여자 친구 둘에 남자 친구 하나였는데, 오빠라는 남자친구는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수염을 멋드러지게 길렀다. 바지도 치마같은 바지를 입었는데, 역시 외국물 먹은 친구들은 감각이 다른가 싶었다. 여자친구들 둘은 여려 보였는데, 사하라까지 온 결심이 대단해 보였다.


사하라까지는 열 두 시간이 걸렸다. 낑겨서 택시를 타고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류승범 닮은 친구는 이름이 순용이었는데, 알고보니 철학과 전공이었다. 가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대학내일에 실렸던 자기 글도 보여줬다. 우리 세대 청춘이 느끼는 절박함을 런닝머신에 비유해서 쓴 글이었다. 계속 뛰지 않으면 낭떠러지 같은 뒤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이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그 중에 어린왕자 이야기를 인용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어린왕자를 정말 스무 번도 넘게 읽었는데, 내가 이 구절을 읽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단단히 헛 읽고 있었구나. 속상했다. 순용씨는 책을 읽을 때 그저 문장하나 마음에 남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 후로 책을 읽을 땐, 꼭 한 문장만큼은 남기려고 애를 쓴다. 이리 생각하고 읽으면 한 번은 더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어린 친구에게 좋은 가르침을 얻었다.

사하라로 가는 길은 순 모래 뿐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멀리 멀리 있었다. 아프리카는 정말 크다. 가는 길에 식당에 들려 밥을 먹었다. 인당으로 주문을 하면 양이 많을 것 같아, 적당히 몇가지 음식을 주문했는데, 그 와중에 돈을 아낀다고 네덜란드 유학생 3인방이 물을 안 마신다고 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가만히 지켜보다, 내가 물을 샀다. 얼마 하지 않는 돈인데, 학생들에게는 결심이 다소 필요했다. 보고 있으니 예전에 자전거 타면서 율지에게 행복을 물었던 날이 떠올랐다.

물 마셨다~!


“율지야, 너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냐?” 

”나는 식당에 가서 가격표를 보지 않고 마음껏 음식을 주문하기”


그랬었지. 생수 한 통에 고민하는 동생들을 보고 있으니 율지 생각이 난다. 그리고 달리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도 떠올랐다. 내 차를 타고 어디든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 옷장에 옷이 넘치지만, 계절마다 입고 싶은 새옷을 사는 자유. 매일 먹어야 할 양식을 고민하지 않을 수 있는 안식. 아침에 눈을 뜨면 갈 곳이 있는 소속감.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같이 기억해줄 사랑. 절망이라 부를 만한 것들의 부재. 세상은 알아차리는 이와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로 나뉘는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길에서 어린 꼬마들이 구걸을 했다. 학교가 싫었는데, 이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학교라도 있어서, 어떤 꿈이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을 느낀다. 몇 푼이라도 쥐어주면 당연한 듯 뒤에 올 여행객들을 붙잡기 때문에, 외면하고 차에 올랐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모래뿐인 길을 한참 더 달리고 달리다 보니, 사하라 마을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해가 지고 있었는데, 기사 형님이 노을을 보라며 언덕치에 차를 세워주었다. 멀리서 노을이 지는데, 12시간 달려온 피곤이 아무렇지 않을만큼 아름다웠다. 그리고 핫산네에 도착했다. 모래 밖에 없는 외딴 곳에 홀로 있는 모습이 어린왕자에 나오는 집 같았다. 수영장 옆 테이블에 핫산이 진수성찬을 차려주었다. 이 모든게 십오 유로라니, 참 대단하다. 저녁을 먹고 별을 보면서 수다를 떨었다. 핫산네는 조명이 강해서 사막쪽으로 조금 걸었더니 밤하늘에 별이 모래 만큼 있었다. 여자 동생들이 사진으로 별을 담는데, 순용은 이 순간을 사진 찍는 일로 보내기 아쉽다고 했다. 나는 사람마다 추억을 기억하는 다른 방식이 있다고 했다. 각자 한참 별을 누리다, 다음날 사막으로 돌아가기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사하라에 도착해서 순용
나도 이렇게 멋진 사진을 남겼지 모야~
핫산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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