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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Apr 20. 2022

진심이 담긴 말 - 1

“글을 잘 쓰려면 말이 동반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말한 것을 글로 써보고, 그 글을 누군에게 말해봄으로써 피드백을 받고, 그걸 반영해서 또 글을 쓰면서 글과 말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방식이죠.”

-강원국 <한겨례21, 21WRITERS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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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러겠지만 나의 경우 전달하고 싶은 의미를 잘 풀어낼 수 있는 내용 구성, 말하고자 하는 표현 방식에 대해 쭉 한 번 써본 후, 머릿속에 어느정도 틀을 잡으면서 글쓰기에 몰입한다. 쓰다 막히면 처음부터 읽어보며 흐름을 다시 파악하기도 한다. 말하는것도 글쓰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살아오면서 누군가 앞에 나서 말을 해야 하는 자리에 섰을 때, 글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표현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심도깊은 고민을 한적이 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쓴다.​


군복무를 하던 젊은 날의 이야기다.

’공동경비구역 JSA’ 영화에서 보던 부대에 차출되어 2년간 복무를 했다. 군생활은 DMZ를 쉽게 넘나들며 15일은 소위 ‘북쪽'이라 부르는 판문점 주변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15일은 부대가 있는 ‘남쪽'으로 내려와 훈련 하는 1달 사이클로 돌아갔다. 중대끼리 서로 맞 근무교대를 하는 개념으로 알면 이해가 쉽겠다. 작전을 끝내고 부대로 내려와 지내는 15일 중, 5일은 병기본과 체력훈련, 또 5일동안 사격&전술훈련을 하고 나머지 5일은 휴가로 나뉘어진다. 최전방에서 북한군과 얼굴을 맞대는 근무의 고단함, 실탄사용부대로 부대원의 스트레스가 쌓여 돌발행동이 일어나면 안되는 장소의 특이성등을 고려해 할 때는 하고 쉴 때는 확실하게 쉬는 것을 철저하게 장려, 매달 5일의 꿀 같은 휴가가 주어지는 아주 좋은 부대였다.


​개별 병사들이 따로 나가는 타 부대와 달리 우리는 40여명이 되는 소대 인원 전체가 휴가를 함께 나갔고, 내가 병장 계급일 때 휴가 출발일에 맞추어 ‘부대가족초청행사'를 했다. 가족초청행사는 부대원의 가족들을 초청해 판문점 견학을 시켜주고 부대원의 생활관 등을 둘러본 후, 가족과 함께휴가를 나가는 부대의 큰 이벤트 중의 하나였다. 가족들 모두 TV에서나 보던 판문점을 구경하고, 난생 처음 제 눈으로 북한군을 지근거리에서 보는 긴장되는 이벤트이기도 했다. 실제로 판문점 회담장 지역에 들어가면 견학병의 안내외에 눈에 띄는 행동이나 손짓, 말을 하면 안되기에 엄숙한 분위기가 유지되기도 한다.


​멀리 울산에서 꼭두새벽부터 올라온 부모님을 만나 판문점 지역에 들어가기전, 타운홀에서 안내를 하고 행사를 진행했다. 중대장부터 소대장, 부소ㅈ대장이 차례로 부대원의 가족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다음 차례로 소대 내 4명의 분대장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고, 나 역시 그 4명 중 한명이었기에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해야 했다.


​행사가 있기 하루 전, 일과를 마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3-5분 정도의 짧다면 짧은 시간, 부대원의 가족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될까. 고심하다 내 후임 부대원 가족들 역시 내 가족과 같은 마음일거라 생각했다. 아들이 부대에서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작전이나 훈련이 고되지는 않는지, 부대원들 간에 괴롭힘없이 잘 지내는지를 그들 역시 궁금해하리라. 궁금하고 관심있을 내용으로 노트 한 페이지를 다 채웠고, 그것들을 정리해가면서 글을 만들었다. 적어놓고 펼쳐서 읽을만한 자리는 아니였기에 부분 부분 암기하듯 했다. 내 앞 순서인 3명의 분대장이 횡설수설 말 주변도, 재미도 없이 1분씩만 이야기하고 각자의 차례를 끝냈다. 내 차례가 되어 단상에 올라서니 100여명 되는 가족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내게 쏟아짐을 느꼈다.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그들의 눈빛, 표정들은 모든 죄를 사해줄 것 같이 온화하였고 너무도 진심이었기에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아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챙겨주는게 분대장의 역할이니까 나의 말에 더 집중하는 느낌이 들었다.


​ 선임, 후임, 간부들의 가족들 모두 내 가족이라 생각하니 준비해온 말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 내 가족들도 나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는 자리였으리라. 하이라이트 조명이 켜진 그 단상에서 진심을 무기 삼아 크게 심호흡하고 말을 이었다. 먼저, 전국팔도에서 온 가족들의 발걸음에 감사함을 전하며 운을 뗐다.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아들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시작된 여정에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몇 십년 만의 소풍처럼 부모님들의 발걸음은 가벼웠을것이다.

 부대의 특성상 위험은 물론 만일의 사고도 있을 수 있는 지역이라 많은 걱정이 되겠지만 전군에서 손 꼽히는 자원들이 모였고 최고의 복지와 편의시설을 갖추었으니 마음을 놓으시라고 전했다. 훈련소에서 JSA경비대대로 차출되었다고 부모님께 알렸을 때 첫 반응은 ‘거기 위험한데 아냐?’ 였다. 예전엔 북한군이 도발을 하기도 했던 곳이고 권총 실탄 30발을 허리춤에 차고 다니니 위험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위험이란 비단 북한군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복무하기 전 내무부조리로 병사가 부대원에 살상을 가하는 기막힌 사건들이 9시 뉴스를 도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먼저 그런 일이 떠올랐으리라. 울산에서 어떻게 대각선 끝인 파주, 그것도 문산인 최전방을 가냐고 나보고 투덜대기도 했다.

 부대 복지는 호텔급이었다. 식사와 간식은 물론이고, 4명이 한 방에서 2층침대를 썼다. 샤워실도 방에 있는 관사 같은 생활관을 썼고,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으면 샤워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 타부대 병사들은 15명이 쭉 일렬로 누워 자는 평상 생활을 했다. 그게 군대의 현재였고, 우리 부대 생활관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나서 가족들은 안도하는 듯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인 법.

또, 훈련은 고되지만 그에 따른 휴식은 자유롭게 주어진다고 전했다. 작전이 주는 긴장감과 고된 훈련으로 부대원들끼리 갈구거나 괴롭히는 부조리가 하나도 없었다. 계급을 떠나 편하게 생활하는 분위기에 후임병 가족들의 귀가 쫑긋 하는 듯 했다. 병장의 가족과 이등병의 가족의 모습이 크게 달라 재밌기도 했다. 곧 집에 올 아들 가족과 막 집을 떠난 아들 가족은 대번에 티가 났고, 태도에 확연히 드러났다. 매달 휴가를 나가자 병장 때 우리 부모님은 집에 없던 적도 있었고, ‘왜 이렇게 자주 나오냐'며 타박을 주기도 했다. 군인이 너무 자주 나온다고 뭐라 하다니, 섭섭하기도 했다. 23번 휴가를 나갔으니 그럴만도 하고.

  펼쳐놓은 장장 5분의 이야기에 많은 가족들이 크게 공감했고, 눈으로 감사의 표시를 해주었으며 부대 간부들은 나를 따로 불러 처음 알게된  말주변을 칭찬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병사이면서 소대장이 해야  말들을   같기도 하다. 어깨의 견장이 주는 책임감이 진심으로 드러났고   생활의, 당신의 아들들의 시간과 경험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람과 사명감을 체감시켜 주고 싶었다. ‘좋은 환경에서 원팀이 되어 건강하게 복무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기에는 아쉬었고, 고작   정도 높은 단상에 올라갔을 뿐인데 그렇게 오래 말하다니 웃겼다.​


돌아보니 가슴으로 뱉어낸 말들은 오롯이 내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이었다. ‘군생활 어때?’라는 엄마의 질문에 상세하게 설명하고 말해주는 아들은 아니었던 나였기에.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는데 이 행사를 계기로 내 가족에게도 말을 건네었다 생각한다. 그것들을 제일 궁금해 하던 사람이 우리 엄마가 아니었을까 싶고. 그 날 내 손을 잡은 엄마의 손길과 따뜻함이 생각하는 하루다. 모든 병사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아련하고 또 그리워지는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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