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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Mar 08. 2022

1-4. 읽고 쓰는 인간이 되기까지

창의적 교육과 크리에이티브의 필요성





스물다섯, 고3 때와 별반 다르지 않던 수험 결과를 받아본 뒤, 갈 수 있는 학교들을 추렸으나 서울권의 광고학과는 서류를 넣기도 전에 탈락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빠르게 전략을 수정했다. 용인에서 연기 공부하는 친구에게 ‘서울예대'에도 광고학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역시 연기가 하고 싶어 여러 학교를 찾아봤었고, 학교 교수님이 이전에 예대에서 가르치던 교수님이라고. 친구 덕에 지원했고 우여곡절 끝에 광고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비슷한 예체능 계열을 전공해서인지 친구와는 척하면 척 말이 잘 통한다.


부푼 기대와 달리 전공 교수님들은 이미 현장에서 은퇴한 지 꽤 오래된 분들이었고, 그들은 십여년은 족히 우려먹었을 자료들로 강의를 이어나갔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들에게는 광고의 본질과 마인드에 대해 깊이 배울 수 있었다. ‘본질을 꿰뚫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참신한 제안을 하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솔깃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들에게 배운 것을 오물조물 만져, 나만의 방식으로 광고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흙밟기를 하듯 기반을 착실하게 다져가던 시기였다.


광고특강'이라는 이름으로 현업에 있는 광고인들을 만나는 기회도 많았고 이름값이 높은, 쉽게 만날  없는 광고인들을 만나 설레기도 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태도로 일을  나가는지, 어떤 마인드로 삶을 살아가는지  많은 경험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린아이처럼 신나기도 했다. 영화 카피라이터인 외래 교수님이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수업을 맡게 되었고, 신선한 수업이 될거라는 기대로 수강했다. 유명 영화의   메인카피를  담아냈던 선생은  다른 생각, 태도, 마인드를 가진 분이었고  수업마다 학생들의 참여도를 신선하게 이끌어냈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다듬어야 하는지, 표현하고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해 먼저 해보게 하고, 그것들 하나하나를 섬세히 코멘트 해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학기 중간 쯤, 3-40명쯤 되는 수강생들에게 어떤 어워드를 걸고서 ‘즉석 카피 대결' 수업을 했다. 일대일로 학생이 참여해 본인이 말하는 주제어를 한 줄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평가는 학생들의 반응과 본인의 의견을 담아 결정했다. 그 당시 이슈가 되는 정치사건, 정치인부터 영화 드라마 컨텐츠, 제품이나 서비스까지 폭 넓은 주제어를 제시했고 짧은 시간 생각하고 정리해서 정의를 내리고 그것을 한 줄로 표현하는 그 방식에 학생들은 사뭇 진지하게 임했다. 센스가 넘치는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쏟아질때마다 짜릿하고 즐거웠음은 물론이다. ‘가지고 있는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가공하여 말해야 하는가'를 본질이자 목표로 꿰뚫어 봤었고, 먼저 정보를 알아야 한다는 것, 그것을 비틀고 재해석하여 새로운 메시지를 내어놓아야 한다는 것으로 솔루션을 가정하였다. 돌아보니 그 날의 수업 방식은 현업의 일하는 방식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선생은 그것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우리에게 직접 해보게 하며 알려주고 싶어 했을것이고, 그 의도가 맞았다면 나에겐 매우 의미있고 기억에 남는 교육 방식, 수업으로 남았다.


그 수업 중간 쯤 참여한 내가 열댓명의 학생들과의 대결에서 최후의 1인으로 살아남았다. 정리한 한 줄을 뱉을때마다 교수님의 표정이나 반응을 살폈는데, 꽤나 ‘괜찮은 한 줄이다'라는 표정으로 응답해주었다. 그 날 수업에서 어느정도 나의 쓸모를 가늠하게 된것 같기도 하다. 그 경쟁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유를 복기해보니 다름 아니라 많이 읽고, 생각해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뉴스나, 책을 보고 이래저래 생각하고 정리해놓은 내 마음 속 아이디어 서랍은 그때부터 부피도 커지고 칸이 다양하게 세분화 되기 시작해 몇 개의 방을 더 만들었던 걸로 기억된다. 여러 경험으로 필요성을 충분히 느꼈고, 아카이빙의 쓸모도 차차 알아가게 되었다.


시인이자 카피라이터인 전공교수님은 수업시간에 종종 ‘떡볶이를 팔더라도 크리에이티브하게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영업에서도 한 획을 긋는 제자를 보고 싶거나, 떡볶이 장사를 종용한 것은 아니겠으나 그 정도로 살아가면서 타인과 차별화되는, 창의적이고 새롭고 신선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였으리라. 3년의 전문교육을 받으며 ‘크리에이티브’가 무엇인지 계속 나에게 질문했고 나의 것을 찾아가고 싶어 했다. 그 ‘크리에이티브’를 뽑아내기 위해서 인풋이 중요하다는 것도 백번 깨달았다. ‘먹은게 없는데 나오는게 있을쏘냐.’ 교수님이 입에 달고 살던,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하던 말이었다. 더 많이 읽어 정보를 흡수하고,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대학 시절부터 여러 계기들로 인해 내 인생의 모토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건강으로 인해 강의를 오래 하지 못한 교수님이 문득 생각난다. 그게 정말 건강 때문이었을런지, 열정없고 적극성없던 전체적인 학과 분위기 안에서 더 오래 있기 힘들었던건지 반성하며 자문해본다. 먼지 쌓이게 놓였있던 교수님의 책을 다시 한번 꺼내 읽으며 그와의 수업을 더듬어 본다. 이렇게 기억에 남은 인생의 하루인데, 지나가보니 참 아쉽다는것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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