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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Aug 31. 2022

E. 1 연필로 쓰기

'귀인'이 아닌 '귀서'

연필로 쓰기, 김훈 지음


:

읽고 쓰는 인간이 되고자 한다 큰소리를 쳐놓고,  주지 않은 식물처럼 의지는 시들해져갔다. ‘닥치는 대로 쓰자   의지를 불태우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른다는 핑계로 어느새 연필과 멀어져갔다.  마음이 깊어질때쯤, 김훈의 「연필로 쓰기」를 동기에게 추천받아 펼쳤다. 적절한 타이밍에 찾아온 ‘귀인같은 글들의 향연. 사람보다  반가운 책과의 만남이 이런걸까.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편견과 편애, 소망과 분노, 슬픔과 기쁨에 당당하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헐겁고 어수선해도 무방하다. 나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생활의 질감과 사물을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서문 - 알림)

연필로 밥벌어 먹고 사는 그의 여러 파편들, 스쳐 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을 읽어가면서 다시 연필을 들어야 하는 이유와 당위를 찾는다. 내 읽기와 쓰기는 ‘왜 읽어야 하는가, 왜 써야 하는가’의 방법을 찾기 위한, 길ㄴ을 찾기 위한 탐색전이자 척후병의 역할이다. 지금도 물론이거니와 무턱대고 책을 펼쳐 그 속에서 방향을 찾으려 헤매이던 여러 날들이 있었다. 김훈 선생은 그것에 쉽게 답을 내려주었다.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는 나이든 노신사라 자기를 칭하지만, 때로는 청년들보다 신선하고 새로운 시선과 오래산 자의 익을대로 익은 깊은 혜안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준다. ‘어른이란 무엇인가?’ 사람됨의 정의를 이리저리 찾아보다 그에게 어렴풋이 답을 얻는다.


’날 뛰는 똥냄새’ 속에서 “썩어빠진 삶, 반성없는 생활, 자기연민과 자기증오를 좌충우돌하는 비겁한 마음과 작별하고, 삶의 건강과 경건성을 회복하자고”(42p) 맹세하는 신박함과 변기를 한참 바라봤을 그의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 맹세는 비통하고 작심삼일이었지만 그 맹세에 의해 나는 나 자신을 응시하는 또 다른 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42p).

칠십 노인도 아직 자신을 바라보고 몸과 마음의 상태를 확인한다. 나를 바라보고 가꾸는 것. 인생사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100점은 못 받더라도 낙제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똥 이야기를 가지고 고문헌의 자료에서부터 자신의 일상까지 수십페이지를 풀어내는 그는 천생 글잡이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듯 그가 밀어쓴 문장의 내공이 오롯이 느껴진다.


결혼식 주례사를 하고, 알던 사람들 본인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야기에서 늙음과 죽음에 대해 보고 느낀 것 그대로 말한다. “젊어서 저지른 온갖 짓거리와 비루한 삶에 대한 기억들, 어리석은 짓, 해서는 안될 짓, 함부로 써낸 글, 너무 빨리 움직인 혓바닥, 몽매한 자만심, 무의미한 싸움들, 지겨운 밥벌이, 게속되는 야근과 야만적 중노동…아아 나는 어쩌자고 그랬던가. 그때는 왜 그 잘못을 몰랐던가.”(73p) 하고 자책하고, “여생의 날들을 온전히 살아나갈 궁리를 하는 쪽이 더 실속있다.”(73p) 며 반성한다. 나이 먹으니 자의식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세상이 보이고, 늘 보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고 말하는 그의 말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인생의 바이블로 다가온다. 서점에 무수히 쌓여 있는 처세관련 책들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무림고수의 비법서’를 훔쳐보는 느낌이다.


오랜 기자생활 뒤 작가로 살아가는 김훈은 아는 것도, 본 것도, 경험한 것도 많겠지만 그 자신은 계속 “나는 잘 모른다.”고 말하며, 보이는 것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자가 되고, 읽는 자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가 되려 한다. 나는 읽은 책을 끌어다대며 중언부언하는 자들을 멀리하려 한다. 나는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하려 한다.”(73p)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들을 몇 번에 걸쳐 필사하며 머리속에 깊이 각인시킨다. 가벼운 것들로 깊은 울림을 주기에 그가 선생이고, 스승이고, 대가라 불리우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몸으로, 눈으로, 머리로, 글로 우리네 삶을 함께 통과하면서 펼쳐낸 그의 발자국들. 세월호, 이순신에서부터 음식과 섭생, 정치와 역사, 단절과 교류에 관한 그의 생각을 따라가는 일은     페이지를 넘기기가 아쉬울 정도였다. 책꽂이에서 가장 집기 쉬운 자리에  책을 남겨둔다. 언제든 다시 펼쳐 읽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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