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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May 16. 2022

N.1 태엽 감는 새

교묘하고 면밀하게 짜인 프로그램

「태엽 감는 새」,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세계와 우리는 동에서 떠 서로 지는 해처럼 일정한 규칙을 가진다. 규칙에 따라 사회와 개인은 얽히기도 하고 풀리기도 한다. “나는 나이며, 그는 그인 세계"(1권,108p) 세계의 외연은 축소되었다가 확장되기도 하고, 제 의지에 따라 영영 관계를 하지 않기도 한다. 우리 모두 다른데 정답이 있을까.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은 나쁘다. 그런 유가 아니야. 흐름을 거역하지 말고, 위로 가야 할 때는 위로 가고, 아래로 가야 할 때는 아래로 가야지. 위로 가야 할 때는 가장 높은 탑을 찾아서 그 꼭대기에 올라가면 되고, 아래로 가야 할 때는 가장 깊은 우물을 찾아 그 바닥으로 내려가면 돼. 흐름이 없을때는,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되고, 흐름을 거역하면 모든 게 말라버려. 모든 게 말라버리면 이 세상은 암흑이지.”(1권, 108p) 흐름에 따라 부드럽게, 순리대로 쉽게 살아가고 싶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올해 나의 바램이자 간절한 목표 중 하나다. 아직까지는 잘 들리고, 들리는대로 따르려 한다.

권당 600페이지를 육박하는, 두께가 묵직한 3권의  이야기 태엽 감는 . 주인공 오카다 도오루의 평범한 삶에서 아내 구미코가 집을 나가면서부터 잔잔하지만 폭발적인 스토리가 전개된다. 삶의 근간이 되는, 기둥이 무너져 방향성을 잃은  남자의 분투는 쉽게도 다음장을 넘기게 만든다. 이상하지만 일정하게 태엽 감는 소리를 내던 새의 존재가 옅어지면서 그가 만들어놓은 일종의 규칙성은 하루아침에 전복된다. 구미코가 떠나고 나서야 구미코와의 결혼, 구미코 오빠와의 일화, 구미코의 유산  지나간 과거에서부터 상실의 이유를 찾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말라버린 마음을 치유하려 노력한다. 마치 말라버린 우물에서 물을 찾듯이.​


나는  자신의 일생을 어느 순간엔가 잃어버렸고, 인생이라는 행위 속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은 한정된, 아주 짧은 기간이라오. 그것이 지나가버리면, 계시를 잡는데 실패해버리면 두번째 기회는 존재하지 않소.”(2,74p) 관동군으로 전쟁에 참여한 마미야 중위의 이야기에서 과거에 방향을, 인생을 잃어버린 일화를 듣고, 앞으로의 일을 쉽게도 예측하는 비현실적인 자매, 가노 크레타 가노 마르타와의 대화에서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를 헤매인다.   있는 것은  해보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그러할까.  하나 들어오지 않는   우물 바닥에 앉아 마미야 중위를 생각하고, 가노 자매와의 이야기에서 그가 치유된다기보다 오히려 상대의 말을 들어주며 그들의 일신에 도움을 준다.​


”여기 있는 나는 ‘새로운 나'이고 두 번 다시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다.”(2권,128p) 타지를 다녀온 뒤 오카다는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기보다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다. 나를 새롭게 구축하고, 관계를 재구성하고, 흐름과 운명을 제 손으로 개척하려 한다. 무언가를 상실한 인간의 단면을 드러내어 질서를 찾아가는, 흐름을 다시 돌리려는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책을 덮으면 내 운명의 현재를 살피고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지금이 위로 가야할 때인지, 아래로 가야할 때인지, 가만히 있어야 될 때인지를 알고 싶어 눈을 감고 흐름을 쫓지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있던가. 흐름을 모르니 그 자리에 강한 뿌리를 내리며 나를 단단하게 지탱할 수 밖에 없다. 나 마저 무너져버리면 아무런 흐름도 따를 수 없을테니까.

”다른 세계로 통하는 비밀의 문"(3권,275p)을 설정해놓고 평온하고 경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갈구한다. 오카다의 삶과 내 삶을 병치해 몸과 마음의 안정, 그 척도를 짚어본다. 어쩌면 우리네 삶은 “나를 여기로 데려오기 위해 교묘하고 면밀하게 짜인 프로그램"(3권,338p) 처럼 설정되어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아이의 자아가 형성되는 7세 이전의 환경과 보고, 듣고, 느낀것이 그 아이의, 개인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인생의 길 위에서 어떤 통로를 통해, 세계를 넘나드는 것. 앞을 알 수 없기에 막막하지만 모르니까 또 기대되고 재밌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각 인물들의 상황과 그들의 선택, 변화, 집중, 자의와 타의에 의한 탈세계, 재구성을 보여준다. 인간과 세계의 흥망과 성쇠, 환경의 변화와 적응. 그리고 운명. “나라는 인간은 결국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 정해진 대로 살아있다.”(3권.,360p) 큰 축이 가로지르며 관계된 사회와 인물을 섞는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선천적인 것에서 시작해, 좋은것들은 다듬고 만지며 자라나고, 끝까지 나를 따라다니는 버리고 싶은것들은 안간힘을 쓰며 떼어내려고 한다. 떼어내지지 않아 좌절하기도 하고, 결국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순순히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정해진대로 살아가는 것, 내 삶의 이정표를 정해보는 것, 지금의 흐름을 인지하고 그것에 순응하거나 판을 뒤집어 버리는 것. 본질을 알아가며 살고 싶다는 마음은 한없이 더 커지게 된다. 우리네 삶에서 축과 세상, 그리고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더면 아주 좋은 독서가 될 것이다. 아리가토 무라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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