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만난 기적 같은 위로 영화 <노매드랜드>
여행이 간절하던 시기여서 그럴까, 마치 짧게 미국 서부를 유랑하고 온 느낌을 주는 영화 '노매드랜드'
베니스 영화제, 아카데미 시상식 등 국제 영화제에서 노미네이트 되었고, 수상이 예상되는 작품으로 입에 오르내린 뒤 '반전은 없었다'라는 평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 펀 역을 분한 프랜시스 맥도맨드가 원작 소설의 판권을 산 뒤, 영화화하기 위한 연출자로 클로이 자오 감독을 선택했다고. '배우가 판권을 사고 감독을 찾았다',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꽤나 참신하고 재미있다.
클로이 자오 감독 작품으로 감독의 전작들을 보진 못했지만, '내 형제들이 가르쳐준 노래'에서는 사우스 다코타 아메리칸 원주민 청소년들의 고된 삶을 다루었고, '로데오 카우보이'는 사고로 카우보이 생활을 접어야만 했던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감독의 작품은 미국 중서부를 배경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세미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냈다는 평가가 많다. 중국인으로 낯선 땅에서 공부하며 자라온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걸까. 소외된 사람과 그들이 구성한 세계에 대해 다룬다. 사건과 사회 구조보다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그 자체에 포커스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오 감독의 전작들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금융 위기 이후, 펀과 남편은 자신들의 삶을 지탱해주던 것들을 잃는다. 남편이 사망하고, 펀에게 남은 것은 오직 벤 한대. 펀은 벤을 집으로 삼아 미국 서부 이곳저곳을 유랑하는 떠돌이의 삶을 산다. 생계를 위해, 아마존에서 포장 업무를 하고, 캠핑장을 관리하는 파트타임 일을 하며 살아간다. 국가에서는 퇴직 연금을 수령하라며 제안하지만, 펀은 일을 해야 하고 일이 즐겁다며 거부한다. 친언니와 가족들도 함께 살자고 권유하지만, 그들의 지원은 애써 외면한다. 타의적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 추운 겨울에도 고집스럽게 차에서 지내고 지붕이 있는 집에서도 누워보지만 쉽게 잠들지 못한다. 차로 돌아가 비로소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펀을 보며 안식처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는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많은 것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그것 또한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싸워내는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삶을 공유한다. 그들 역시 각자가 처한 상황으로 떠돌이의 삶을 살아가지만, 한때는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사정에 따라 혼자만의 삶을 찾아가는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늘 '언젠가 다시 만나자'라고 인사하고 헤어진다. 길에서 만난 우리는 모두 친구이기에.
삶을 영위해 가고자 하는 펀의 고군분투는 매우 짠하지만, 그녀와 밴이 가는 곳마다 보여지는 날씨와 풍경의 아름다움이 그녀의 상황과는 매우 대비된다. 그래서 더 아름답게 보일지도. 벌이를 찾아 떠도는 유랑자의 신분이지만 그녀가 차를 세우고 지내는 곳은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녀 역시 자연 속에서 에너지를 얻고, 충전을 하며 다시 떠난다. 스크린으로 비추어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영화는 이들이 왜 노매드가 되었고, 유랑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 반전도 없고, 하이텐션의 극적임도 없는 마치 태풍의 눈과 같은 스토리는 잔잔히 흘러가지만 펀이 유랑자들과 나누는 대화, 삶에 대한 태도와 그녀의 마음가짐은 휩쓸릴 만큼 묵직한 감동을 준다.
영화에서는 현실의 세계와 그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분리시키려고 하나, 이상하게 현실과 함께 엮어내고 싶다. 팬데믹 현상으로 달라지는 사회 환경,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천정부지처럼 치솟는 주택 가격 등등. 언제 어떤 일들로 인해 우리도 홈리스가 아닌, 하우스리스로서 살 수도 있다는 것.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대한 많은 선택지 중 하나 정도는 될 수는 있다고 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수없이 뇌리에 박혔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유랑자의 삶을 사는 밥의 대사가 깊은 한 줄을 긋는다. '내가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여기서 답을 찾기를 바랍니다. 자연과 사람들을 통해서'
웹을 돌아다니다 '나 혼자 산다'에 배우 유아인이 출연한 편을 봤다.
그가 살고 있는 집, 그의 생활패턴도 흥미로웠으나, 집에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정리하는 도중에 그가 했던 말과 태도가 가장 와닿았다.
'예전에는 신발장에 신발이 꽉 차 있으면 부자가 되는 느낌이었어요. 잘 나간다는 신발들 소장하고 갖고, 그런 것들을 줄 세워놓고 이러면은 잠깐이지만 뭐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 지금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어요. 그것들이 내 족쇄처럼 느껴진달까? 그래서 어떻게 비워야지, 어떻게 버려야 하지, 어떻게 나눠야 하지? 그리고 난 앞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고, 어떠한 원동력을 통해서 앞으로의 삶을 살아나가야 하지? 하는 생각들, 고민들을 많이 가져가게 된 것 같아요.
뭔가 키우고, 신발들 사 모으고, 옷 사 모으고, 더 큰집으로 이사 가고 이런 것들이 그 순간은 그냥 괜찮은 인생처럼 느껴지니까. 그런 것들로 순간순간의 인생을 땜빵한 거죠. 그러다가 그게 더 이상 땜빵이 안 되는 거죠. 뭔가 잃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숨 하나도 제대로 못 쉬는,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통제 못 하는 한 순간 편해지기도 어려운 삶. 그런 그냥 잘못된 습관들로 범벅된 초라한 인간일 뿐인 거죠.'
가진 것보다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아는 삶, 어떻게 보면 미니멀리즘과도 궤를 같이 할수도 있겠다.
'인간극장 - 날마다 소풍 : 적게 벌어 행복하게 사는 법' 편도 영화를 보면서 생각났다. 도시에서의 삶을 훌훌 털어버리고, 제주로 떠난 광국 씨와 정은 씨 부부의 이야기로 네모난 아파트를 벗어나, 넓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누비며 매일매일을 소풍처럼 지내는 그들의 모습 또한 또 다른 '노매드'의 모습 이리라.
결국 나와 연관되어 귀결될 수밖에 없는데,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이전엔 어느 정도만 했던 것들이 지금은 하루에도 몇십 번씩 생각하고 고민한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비로소 가치관이 정립되고 있는 한 인간의 단면.
우리네 인생이 궤도를 이탈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면, '노매드랜드'를 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