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에서 아시아 축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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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6개국의 조별 1차전이 끝났다. 총 2승 1무 3패의 기록을 거둬들이며 나름 잘 선방했다고 본다. 어김없이 강팀이 이기고 약팀은 무너지는 대회 전체 흐름에서 공은 둥글다는 반전의 재미를 알려준 팀들이 바로 아시아 팀이였으니 말이다. 사우디와 일본은 거함을 잡으면서 16강 진출에 교두보를 마련했고, 한국은 다음 경기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결과를 얻었다. 조별리그에서 떨어지고 싶은 나라는 없으니까 이기거나 비기거나 지면서도 각 국가들은 나름의 경험치를 얻고 다음 스텝의 방향타를 맞추었을 것이다. 전력분석을 위해 같은 조 다른 경기를 분석하러 스텝들을 파견하는 팀도 있었고, 미리 16강 진출을 염두해두고 토너먼트에서 만날 팀의 경기력 분석에 공을 들이는 팀들도 있었다. 모든 데이터를 모으면서 과연 어떤 묘수들이 숨어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아시아 팀들의 2번째 경기를 리뷰해본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웨일스 이란 0 : 2
B조 2차전
Ahmad bin ali stadium
1차전 잉글랜드에게 영혼까지 털린 이란의 2차전 경기. 공교롭게도 또 영연방 팀의 경기를 하게 되었다. 이란의 경우 1차전에서 무너져내린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마음이었을 것이고, 웨일스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첫 승을 간절하게 바랬을 것이다. 구자철 kbs 해설위원이 입에 담던 “간절한 팀이 승리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 맴돌았다. 그들 중 누가 더 간절했을까.
1차전 후반 교체로 출전한 아즈문을 비롯 타레미, 그리고 자한바흐슈가 모두 선발로 나왔다. 이 셋은 아시아 대회에서 우리에게 충분한 위협을 줬던 선수들로, 그들이 모두 선발 라인업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케이로스 감독의 의지를 말해주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 이 경기를 잡아야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을 것이다. 전반부터 이란은 라인을 높게 잡고 웨일스의 수비를 강하게 압박한다. 전반 15분 강한 압박에 이어 상대수비의 횡패스를 끊고 짧은 삼각패스를 연결하여 골을 만들지만 오프사이드에 걸리고 만다. 마지막 아즈문의 패스가 아쉬웠으나, 상대 진영에서 볼을 탈취했을 경우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서 이미 합을 맞춰본 듯 매우 자연스러운 연결을 보면서 드디어 이란의 진가가 나오는구나 느꼈다. 유럽과 가장 가까운 서아시아인만큼 크고 강대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지만 또 특유의 끈적끈적하고 세밀한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이란의 장점인데 자기만의 색깔을 드디어 찾은 듯 싶었다. 미드필더를 거치는 공격이 원활하자 자연스레 이란 공격진에게 좋은 기회가 자주 나왔다.
후반 5분 오른쪽에서 라인을 무너뜨리고 들어간 아즈문의 슛은 오른쪽 골대를, 뒤이어 플레이된 볼을 가지고 아크 오른쪽에서 감아찬 골리자데의 슛은 왼쪽 골대를 맞고 나왔다. 그로기 상태의 상대에게 계속 스트레이트를 꽂는 격으로 이미 흐름을 다 가져왔는데도 운이 안 따라주어 리드를 못 하고 있을 뿐이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것이다.’ 수도 없이 공격을 시도하던 가운데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늦은 시간인 후반 52분에 이란의 첫골이 터져나온다. 아크에서 때린 체시미의 슛이 수비 굴절된 후 들어간 것. 골대의 불운을 넘어서자 바로 후반 55분 레자에이안이 칩 킥으로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전후반 경기 내내 집중력을 잃지 않는 플레이와 결연한 선수들의 의지와 눈빛에서 이란의 간절함은 절실히 보여졌다. 본선에 진출한 32개국 모두 자신들만의 플레이와 카드가 있을 것인데 당연하게도 본연의 것들을 얼마나 잘 보여주고 꺼낼 수 있는지가 경기의 양상을 가른다. 그런데 그 당연한 것을 하기가 힘든게 월드컵이라는 무대이다. 한 경기 평균 10km를 뛰는 필드 위의 모든 선수들이 힘들 것이다. 모두 힘든 상황에서 조금만 더 뛰고 조금만 더 도와주는 정신력이 팀을 하나로 결집시킨다. 첫 경기와 달리 두번째 경기에서 이란은 강력한 모래바람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들의 활약이 반가웠다. 점유율 59 : 41로 공은 많이 가졌으나 슈팅수에서 4 : 12로 밀린 웨일스는 베일, 램지, 데이비스 등 이름값 하는 선수를 가지고도 90분 동안 전혀 기억에 남는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패자는 할말이 없음으로 웨일스는 슬슬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할 듯 하다.
“여…여기 카타르 아닙니까?“
카타르 세네갈 1 : 3
A조 2차전
Al Thumama stadium
1차전에서 홈팬들에게 무기력한 경기를 선보였던 카타르의 두번째 경기 세네갈전. 네델란드를 제외하고 조 2위를 노리는 세네갈 역시 꼭 카타르를 잡아야 하는 경기였다. 1차전 패배의 기억을 빨리 잊어버리고 새 경기에 임해야 하는 만큼 카타르도 어느 정도 정신무장을 했을것으로 생각했으나 그 정신무장이라는게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닐터. 불안한 수비와 더 불안한 골키퍼가 짠 듯이 실책 향연을 벌이더니 전반 40분 첫 골을 허용한다. 수비가 걷어내지 못해 발을 맞고 나온 공은 자연스레 불라예 디아 발 앞에 예쁘게 떨어졌다. 후반 2분은 디에디우에게 완벽한 헤딩골을, 84분엔 밤바 디엥에게 완벽한 컷백을 선사한다. 카타르의 아쉬운 실력은 아프리카의 사자를 더 날뛰게 만들뿐이었다.
카타르는 후반들어 압델레카림의 중거리슛, 알모에즈의 슛이 유효슈팅으로 기록되긴 하지만 첼시의 수문장인 멘디 골키퍼를 뚫지는 못하다 후반 32분 문타리의 완벽한 헤딩골로 골문을 연다. 위안중의 위안이라면 카타르도 본선에서 첫 골을 넣었다는 것, 거기까지만이 그들에게 허용된 위안이었다. 경기력과 플레이는 월드컵 본선 수준에 전혀 미치지 않았고, 개최국 중에 역대급 최악의 성적으로 조별리그 탈락을 일찌감찌 예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