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에서 아시아 축구는
“화려하진 않지만 포기하지 않는 마음“
튀니지 호주 0 : 1
D조 2차전
Al Janoub stadium
이 경기 대진을 미리보면서 어느팀이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D조 중의 가장 최약체라 평가받는 두 팀의 대결이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잡을 수 있다고 아니 잡아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을 것이다. 덴마크와 2위 경쟁을 해야하는 만큼 누구든 튀니지를 1승 제물로 삼았을 것이다. 1차전 프랑스에게 지워진 호주는 자신만의 축구를 다시 살리면서도 승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꽤나 쉽지 않은 중책을 맡았다.
경기는 말 그대로 호각지세. 호주가 공격한 뒤 튀니지가 반격했고 그렇게들 열심히 상대의 골문을 두드렸다. 전반 22분 튀니지의 왼쪽 측면을 공략해 올린 크로스가 수비수 맞고 굴절된 것을 스트라이커 듀크가 기가 막히게 공의 방향을 돌려놓으며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주 대표팀은 무려 19명이 처음 월드컵에 출전할 정도로 젊고 패기 있는 선수단을 구성했다. 반대로 말하면 큰 무대 경험이 적다는 것으로도 약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대목. 호주라고 하면 해리 키웰, 팀 케이힐 등 EPL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선배들이 거론되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덧 그들도 물러나고 호주도 새로운 부대에 새 술을 담는 중인것 같았다. 일본 2부 리그 파지아노 오카야마에서 뛰는 공격수 듀크는 무명의 공격수이지만 그것이 뭐가 중요하랴. 1조가 넘는 선수 몸값을 가진 팀을 천억의 몸값을 가진 선수들이 똘똘무여 무너뜨리는게 축구이지 않은가. 정확한 퍼센트로 예측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그 어려운 확률을 뚫는게 축구 아니던가. 우리도 할 수 있고, 모두에게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 축구이고 월드컵이지 않은가 생각했다. 듀크 선수 역시 자기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어왔을테고 그것을 2차전에서 묵직한 한방으로 보여주었다.
후반들어 따라잡으려는 튀니지의 공세가 강해지자 실수가 나오면서 호주의 수비도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선수들의 육탄방어와 적재적소의 협력수비로 더 파이팅 있게 수비하며 2차전 승리를 가져온다. 58%로 더 많은 볼을 점유하고 더 많은 유효슈팅을 기록한 튀니지를 상대로 단 2번의 유효슈팅으로 골을 만들어내며 실리 있는 축구를 펼친 호주. 경기에 몰입한 선수들의 플레이에서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았고 간절한 승리를 향한 정신력이 느껴졌다. 화려하진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한발씩 더 뛰는 모습을 보면서 승리의 모습은 저마다 다 다르다는 것을, 그들도 승리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시아의 저력을 보여준 호주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라비안 나이트, 아름다운 모래폭풍의 향연”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2 : 0
C조 2차전
Education city stadium
거함을 잡은 사우디의 2차전 상대는 폴란드. 이른 16강 확정을 기원하듯 수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 녹색으로 관중석을 덮었다. 사우디는 1차전 좋은 폼을 보였던 선수들을 선발로 내보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서아시아 결승전을 밥먹듯이 가는 알힐랄과 알나스르 소속 선수가 대부분인게 눈에 띄었고, 오일머니가 올려놓은 축구 수준은 꽤나 높았다. 경기가 시작되자 강한 전방압박과 탄탄한 협력수비를 통해 폴란드가 전진하지 못하게 틀어 막는 전술을 구사했다. 반대로 폴란드는 사우디가 올린 라인 뒷공간을 롱볼로 노렸다. 장신에 골키핑이 되는 레반도프스키, 밀리크가 있기에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이었다.
1차전 승리로 한껏 들뜬 분위기 94년 미국 월드컵에 이어 28년만에 16강 진출이 손에 잡히고 있다는 것을 선수들은 알았을 것이다. 주장이자 플레이메이커 알도사리를 중심으로 사우디는 짧은 패스 연계를 통해 경기를 쉽게 풀었다. 헐거운 압박의 폴란드를 상대로 중원을 장악하며 좋은 찬스를 만들어냈지만 번번히 골대는 골을 외면했다. 허나 풀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사우디가 이렇게나 패스와 전개가 좋은 팀이었나 싶었다.
레반도프스키 밀리크를 공격으로 세운 폴란드의 경우 크로스를 통해서 제공권을 잡아야 하는 상황인데 되려 사우디 아라비아가 날카로운 크로스를 통해서 공격을 풀어나갔다. 폴란드 경우 준비된 플레이를 하지 못하게 되자 흐름을 가져오지 못하고 25분을 끌려다녔음을 볼 수 있다. 롱킥 자체를 하지 못하게 빡빡한 맨마킹으로 폴란드를 잡는 확실한 전략을 세운 사우디와 롱볼과 세트피스 2가지 옵션으로 무서운 공격력을 발휘하려는 폴란드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아르헨티나 전에서 사우디는 선수비 후역습이었다면, 폴란드 전의 경우에는 빌드업을 통한 점유율 플레이를 컨셉으로 잡고 나왔다. 전반 32분 사우디의 빌드업을 보면 키퍼에서 시작한 패스를 가지고 4번만에 폴란드의 파이널 서드까지 진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약속된 위치에서 얼마나 많은 합을 맞춰 왔는지 보여주는 부분으로 참 쉽게 공을 찬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카타르의 개최국 어드벤티지를 사우디가 이용하는 것을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아르헨티나를 잡은 그 기세 그대로 사우디는 폴란드와의 경기도 장악한다. 기세의 무서움, 흐름의 무서움, 분위기라는게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 허나 공세도 잠시 전반39분 단 한번의 역습으로 실점을 하게 된다. 일순간 무너진 사이드를 뚫은 폴란드의 역습에서 레반도프스키의 어시스트를 받은 지엘린스키가 선제골을 뽑아낸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두드리던 전반 43분 상대 수비의 파울로 페널티킥을 얻지만 상대는 다름아닌 슈체스니 골키퍼. 아스날 - 로마 - 유벤투스의 골문을 지켰던 노장 골리에게 pk는 쉽게 막혀버렸고, 동점골의 기회를 날리게 되자 사우디의 흐름은 일순간 한 풀 꺽이게 된다. 후반부터는 마치 각성한듯 침착하게 짧게 썰어들어가는 더 공격적인 빌드업을 보여줬고, 그 내용은 일품이었다. 조직력과 활동력, 게임에 임하는 컨셉이 확실한 진정한 모래바람을 연상케 했으며, 경기력은 거의 탈 아시아급일 정도였다. 아르헨티나 전 라커룸에서 “경기 끝나고 메시와 사진이나 찍으려고 하냐?”고 선수들에게 일침을 놓았던 카리스마 르나르 감독이 전반을 마친 뒤 또 한번의 마법을 펼치고자 어떤 주문을 했었을까 궁금했다.
후반 14분 수비형 미드필더 칸노의 발에서 시작한 티키타카가 슛까지 이어졌다. 골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상황까지 참 쉽게 만들어내는 과정은 작품 같았다. 수비에서는 칸노가 공격에서는 알 도사리가 핵심이 되어 전체적으로 팀을 캐리하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칸노는 마치 전성기 비에이라의 플레이를 연상케하며 모든 플레이가 하나하나가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32분 폴란드의 오른쪽을 무너뜨리고 들어간 컷백 슛은 아쉽게도 골대를 외면하고 말았다. 동점골을 넣을 수 있을 것 같이 예열은 되었지만 골이 안 나오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양팀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경기는 소강상태에 들어간다. 지친 폴란드의 움직임이 무뎌지자 후반전은 아예 반코트를 가둬놓고 패기 시작하는 사우디. 그러나 후반 36분 수비 실수로 레반도프스키의 월드컵 첫골을 헌납하며 경기를 내어주게 된다.
1차전의 역습 전술과 2차전 주도권을 쥐고 상대에게 공세를 허용하지 않으며 코너로 몰아 놓고 때리는 그 카운터펀치는 비록 상대가 폴란드라도 이때까지 본 아시아 축구 중에서 손 꼽을만큼 강렬했다. 레반도프스키, 슈체스니 상대 공수 첨병에 막혀 아쉽게 결과를 얻지는 못하였지만 사우디는 2024년에 있을 아시안컵에서 분명히 좋은 성적을 거둘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우디 축구의 발전을 지켜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