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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Nov 02. 2023

가짜 위안과 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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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제니퍼 루덴은 ”쾌락을 주면서도 실제로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감각을 마비시키는 행동“을 그림자 위안shadow comforts이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불안하거나 무기력하거나 우울하다고 느낄 때 도피를 위해 습관적으로 술, 단 음식, 줄담배, 게임, 스마트폰 같은 것들이 주는 가짜 위안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순간의 쾌락이나 위안은 되어도 문제의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김은경, <습관의 말들>​​


올해 일상에서 새로이 보게 된 지표라면 아이폰 ‘스크린타임’이다. 매주 일요일 오전, 폰 평균 사용 시간을 알려주는 알림이 뜨고 적게는 6시간 많게는 10시간을 넘나드는 시간들을 보면 의아함이 커졌다. 폰을 멀리하고, 시간을 아끼자며 인스타그램을 지우고, 이젠 유튜브 앱을 지웠는데도 이렇게나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고? 시간 관리의 실패를 여과 없이 확인하니 그동안의 다짐이 물거품처럼 꺼진 것 같았고, 취업 불합격 통보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울퉁불퉁해졌다.​


기록하기 위해 노션앱을 쓰고, 폰으로 대부분의 글을 쓰고 있지만서도 아무렴 기록하는 데에 6시간 이상 할애할 사람이 아니란 건 내가 더 잘 안다. 원인을 찾아 나선다. ’생각 없이 흘려보는 영상매체‘의 타도를 외치며 겨우 유튜브 앱을 지웠건만 몇 일이 지나서부터는 웹으로 들어가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그나마 앱 삭제로 진입장벽의 단계를 높였기에 빠르게 탈출하는 편이라며 자위하고 있다. 유튜브에서도 절대로 건들지 말아야 할 성역은 바로 쇼츠. 짧으니까 괜찮겠지 하다가 그 짧은 시간들이 모여 한두 시간이 사라져버린다. 중독성은 가히 최고인 듯하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그림자 위안’ 즉, 가짜 위안에는 사정없이 빠져들었다. 삶에서 ‘재미’를 빼면 도대체 무엇이 남을까 할 정도로 “재미있는 게 없을까?“를 항상 되뇌고, 그럴 때면 웹서핑을 주구장창 하다 으레 앱스토어에서 재밌을만한 게임을 찾아 다운받고나서 시간을 통째로 갈아 넣는다. 어느 정도 쾌락이 만족되고 나면 게임을 지운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그리곤 몇 일 지나 또 재미를 찾을 때 이 행동은 반복된다. 원하는 재미가 이런 재미가 아니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도움 될 것 하나 없는, 단순히 재미 그것 외에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것에 쉽게 도피하게 된다. 하루에서 해야 할 것들이 잘 준비되어 있어 의자에 앉으면 시작할 수 있는데도 방 안을 쓱 둘러보고는, 냅다 뒤돌아 생각할 필요 없고 단순한 즐거움으로 가득 찬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래도 이젠 이런 인스턴트 재미를 찾을 즈음 내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고 무기력하며 황폐한 지 인지한다는 점과, 바로 앞이 낭떠러지니 한 발 더 내딛지 않아야 한다며 스스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는 점으로 위안을 삼는다.​


일찍 눈을 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커피와 함께 아침의 여유를 즐기고, 러닝이나 산책 후 책상에 앉아 일정 분량의 글을 쓴다. 오후엔 정해진 시간 동안 일을 하러 나간다. 일하는 중에도 틈틈이 짬을 내 책을 읽고 쓴 글을 고치고 일기와 여러 잡문들의 단초를 정리해 또 쓴다. 퇴근 후 샤워를 하고 침대에서는 절대 폰을 만지지 않고 일찍 잠에 든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온전한, 더할 나위 없는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인데 시작부터 무너지거나 중간에 다른 삐딱한 길로 들어서버리면 ‘오늘은 글렀다’며 순간의 쾌락을 향해 방향타를 조정하고, 소중한 오늘의 시간을 던져 버린다. 바라는 일상의 많은 시간이 생각하고, 써야 하는 반복이니 그 반대의 정점인 ‘아무 생각 없이 영상 보기, 게임하기‘ 같은 쪽으로 깊게도 빠진다.

무기력한 삶을 보내다 보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도록 마음은 쪼그라들었고, 몸은 하는 것 없이 쑤셔댔다. 마음과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무시하다 이젠 안되겠다 싶었고, 가장 소중한 나부터 돌보기로 했다. “오직 시간만이, 내게 주어진 하루 만이 내가 가진 재산“이라며 이제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다. 그러고는 앞서 말한 하루를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루틴을 찾아가는 데 시간을 쏟는다. 예문을 가져온 습관 관련 책도 도움이 되었다. 언제나 잃어버리고 되찾아 가는 게 내 삶의 루틴 같기도 하지만 다시 노력해 볼 뿐이다. “재밌는 거 없을까?“에서 “즐거움을 주면서도 에너지를 올려주고 감각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행동”이 뭐가 있을까?로 내게 하는 질문을 바꿔보기로 한다. 이런 행동에 주안점을 가지고서 더 이상 길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참, 15년 넘게 핀 연초 끊기도 함께 시작했다. 나 좀 달라져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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