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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비 Jan 18. 2023

Z세대의 커뮤니티 이용법

우리는 MZ세대가 아니고 Z세대입니다

* MBTI놀이터는 MBTI를 주제로 한 커뮤니티 앱입니다. 지금은 서비스 종료된 커뮤니티이며, 서비스 개발/운영에서 겪은 경험을 남기는 글입니다.


- 지난 이야기 : MBTI 커뮤니티 앱의 우연한 성장


MBTI놀이터 커뮤니티 초반 유입의 90% 이상이 틱톡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10대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커뮤니티를 구상하던 당시에 예상했던 타겟층은 MBTI에 관심이 많은 20대였으나 이름을 잘못 지은 탓인지 Z세대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빠른 출시를 목표로 하다 보니 네이밍을 너무 급하게 지은 것이다. (작명의 중요성...)


회원가입할 때 성별과 출생연도 정보를 받았었는데 대부분 중학생~고등학생의 나이대 분포를 보였다. 필자는 30대이다 보니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할 때 나이가 빠르게 계산이 되지 않아서 처음에는 나이표를 켜두고 비교하면서 분석했다.

유저의 나이대 분포 - 10대가 85%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Z세대를 연구해야만 했다. 나는 밀레니엄 세대인데, 보통 MZ세대를 묶어서 이야기하지만 Z세대는 확실히 밀레니엄 세대와는 다르다. 처음에는 올라오는 줄임말이나 용어도 익숙하지 않아서 인터넷에 검색을 하면서 배워갔다. 나름 신조어도 잘 아는 편이고 트렌드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대 차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Z세대를 공부하는 데 아래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10대를 책으로 공부하는 나이가 되다니.

연구를 하다 보니 몇 가지 특이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이나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다양한 자아로 다양한 SNS에서 부캐 활동

실제로 온라인에서 부캐로 활동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겠지만 10대들의 부캐 활용은 생각 이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커뮤니티에는 종종 자신의 다른 플랫폼 계정을 홍보하는 글이 올라왔다. 플랫폼은 주로 인스타그램, 카카오 오픈채팅방, 디스코드, 에스크(Ask) 등 10대들이 많이 사용하는 SNS들이었다. (페이스북 계정은 실명 기반이라 새로 생성하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올라온 적이 없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계정이 기존에 사용하던 계정이 아니라 "MBTI놀이터 계정"을 위해 새로 만든 계정이었다는 점이다. MBTI놀이터에서의 자아를 위해 다른 플랫폼에서 새로운 계정을 발급받는 것이다. 본인의 실제 계정이 아닌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닉네임으로 이곳저곳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다. 다른 SNS의 기능들(음성 채팅, 단체 대화 등)을 활용하고 싶으면 그곳으로 옮겼다가 다시 돌아오는 식이었다.


하나의 플랫폼에 하나 이상의 계정을 만드는 것이 어색한 30대로서 이 작은 커뮤니티를 위해서 다른 서비스에서도 새로운 계정을 시원시원하게 생성하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MBTI놀이터 내에서도 한 사람이 계정을 여러 개 생성해서 각기 다른 성격으로 활동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만약 10대들을 위한 커뮤니티나 SNS를 만든다면 본인 인증을 거치더라도 계정을 여러 개 만들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할 것이다.


2.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

식상한 특징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랬다. Z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답게 어플의 기능들을 활용하고, 내용을 공유하고, 변경을 요구하는 것에 능숙하다. 이들은 앱 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 세대보다 훨씬 잘 알고 있다. 커뮤니티에는 광고가 주 수입원이 된다는 것도, 서버비가 나간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광고 없는 이 앱에서 수익 없이 어떻게 먹고사는지 개발자를 걱정해주기까지 했다. (유저가 다 돈이라는 등의 글도 있었다.)


하루는 MBTI놀이터가 로그인 이슈로 구글스토어에서 삭제된 적이 있었다. 복구하기까지 이틀이 걸리지 않았지만 사용자들은 구글스토어에서 사라진 것을 바로 알아채고 네이버지식인에 질문을 올리는 등 유저들끼리 설치하는 방법을 공유했다. 온라인상에서 일어난 문제를 온라인으로 해결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커뮤니티를 사용하면서 만족스러운 부분,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을 실시간으로 피드백해 주었다. 정말 많은 문의 메일을 받았었는데, 그 문의들은 10대들이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다. 계정을 무한 생성하는 앱을 사용해서 가입을 한다거나, 버그가 있으면 매크로 돌리는 영상을 찍어서 보내주는 등 10대라고 하기엔 놀라운 정보들을 많이 주었다. 유저들은 다양한 앱을 사용하고 비교하는 것에 능숙해서 앱의 부족한 점을 빠르게 캐치하고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3. 온라인에 자신을 드러내는 세대

대학내일연구소에 따르면 Z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온라인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거리낌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커뮤니티에서 '얼공(얼굴 공개)'문화가 있었는데 익명 커뮤니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상을 올리는 것을 즐겨했다. 가끔은 유행처럼 누군가 얼공을 시작하면 다 같이 얼공을 하기도 했다. '눈공(눈만 공개)'을 한다든지 신체의 일부만 공개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동시에 얼공을 우려하는 글들도 많았다. (일부는 20대들의 걱정 어린 글일 수도 있다.) 온라인에 신상을 공개하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역시 알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익명 커뮤니티였지만 프로필 설정 기능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프로필 설정하는 기능을 업데이트했을 때 가장 반응이 좋았다. 닉네임, 프로필 사진, 프로필 문구로서 자신의 성향, 취향을 공유했다. 또한 '온라인 친구'를 사귀는 것에 경계가 없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이 희미하고 굳이 '온라인 친구'를 나누지 않는 듯했다. 


4. 매우 빠른 주제 전환

게시판은 새로고침을 하면 최신글 순으로 보이는 일반적인 구조였는데, 가끔은 커뮤니티가 아닌 마치 사람이 엄청 많은 실시간 단체 대화방을 보는 느낌이었다. 보통 커뮤니티에서는 새 글이 빠르게 올라오더라도 공통된 주제가 아닌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느낌인데, 여기서는 하나의 주제가 올라오면 모두가 그 이야기를 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누군가 "키" 얘기를 하면 10분 간 계속 "키" 얘기만 올라오는 것이다. 주제의 전환도 매우 빨랐다. 물타기를 하듯 게시판의 흐름이 확 바뀌어서 적응을 힘들어하던 유저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10대들은 소속감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주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참여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5. 장문을 기피하는 현상

일단 MBTI놀이터에 올라오는 글들은 대체로 3줄을 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대화방 같은 느낌이 있었다. 고민을 나누는 게시판에는 종종 긴 글들이 올라왔는데, 진지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3줄 요약 좀", "너무 길어서 못 읽음" 등등의 댓글이 달렸다. 글 내용의 심각성과는 상관이 없었다. 아무리 슬픈 사연이라도 길면 읽지 않았다. 어렵게 자신의 고민을 꺼내며 긴 글을 작성했을 글쓴이가 안타까워 보였다. 아주 가끔 천사 같은 유저가 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랬다. 3줄 요약은 필수였다.


요새 MZ세대의 문해력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이런 현상들이 그 논란을 뒷받침해 주는 듯했다. 10대들의 문해력이 낮은 것은 절대 아니겠으나 동영상이나 사진 콘텐츠에 익숙한 이들은 모바일에서 쓸데없이 긴 글을 읽는 것을 실제로 힘들어했다. 나중에는 연령대 게시판을 분리하기도 했었는데, 10대와 20대를 분리하자 그 차이가 확실히 드러났다. 20대 게시판은 글 하나 당 문장 수도 많았고 여타 일반적인 커뮤니티와 다를 것 없이 물타기보다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또 진지한 이야기에는 진지한 댓글이 달렸다.


동영상을 공유하는 것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동영상 업로드에 대한 기능 요청도 많았는데 비용 문제로 추가하지는 않았다. 사진 기능만으로는 부족했지만 역설적으로 짧은 인스턴트 글을 선호하는 10대들에게 쉽고 빠르게 새 글이 올릴 수 있는 MBTI놀이터가 꽤나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글쓰기 기능이 아주 단순했다.) 만약 10대를 대상으로 하는 어떤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최대한 동영상을 활용하고, 글의 길이를 길게 하지 않는 것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10대들은 학교.. 학교에 가야 한다.

어플의 다운로드 수가 급성장하고 내가 퇴사를 결심했을 때는 (하필) 겨울방학 시즌이었다. 유저들은 방학의 넘치는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 커뮤니티에 하루종일 머물러 있었다.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지라 방학, 개학의 개념도 잊고 있었는데 3월이 되자 개학 시즌이 돌아오게 되었다. DAU가 줄어들 것으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사용자가 급감해 버렸다. 게시글 수와 DAU는 개학 전 날 피크를 찍었고, 우리의 유저들은 현생을 살러 가기 바빴다. 학교를 가야 하니까. 주말에는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낮 시간 동안의 리젠(글 올라오는 속도)이 매우 느려졌고, 리스트를 당기면 새 글이 뜨던 것에 중독되었던 유저들은 점차 흥미를 잃어갔다. 사용자들은 유저들이 감소했다고 생각해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유저들도 시험기간이 될 때마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날짜에 따른 게시글 수

10대들이 많이 사용하는 어플들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MBTI놀이터는 커뮤니티의 특성상 일단 필수재가 아니라서 여유 시간에 할 수밖에 없고 네트워크 효과가 있다 보니 동시간대 접속 사용자가 떨어질수록 흥미도 함께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개학의 여파가 더 크게 작용을 했다.


의도치 않게 주 사용자가 10대가 되면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사용자들을 제어하는 것도 어려운 데다 비즈니스 모델을 엮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소비 단가가 낮고 소비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20대로 타겟팅을 전환하기 위해 연령대 분리도 해보았지만 큰 소득을 얻지 못했다. 콘셉트에서부터 일관된 마케팅을 해야 하는데 뒤늦게 20대로 전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실력이 아닌 우연으로 들어온 유저들을 20대를 대상으로 다시 한번 모집하기란 나에게 역부족이었다. 그런 것은 로또를 두 번 당첨되기를 기다리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앱 내에서는 서로 반말을 하고 친구를 사귀는 문화가 있었는데 서로의 닉네임을 외우고 내 편, 네 편이 생겼다. 그 문화는 많은 유저들이 MBTI놀이터에 애착을 가지는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사실상 친목 행위는 커뮤니티의 망하는 지름길이었다. 커뮤니티를 해본 적이 없었고 Z세대의 특징이라고 여겨 초반에 친목이 강화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나중에 아래와 같은 '친목질'에 대한 나무위키를 보게 되었는데 이 글을 읽고 곧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강하게 직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작은 커뮤니티에서 일어난 일들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쓴 글이기에 모든 Z세대에게 일반화할 수는 없다. 어쩌면 '커뮤니티를 많이 하는' '일부' 10대들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 세대의 특징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있었던 10대의 특징들이 온라인으로 옮겨온 것만은 확실하다. 5만 명 이상의 유저가 10대였던 커뮤니티에서 내가 겪었던 경험들이, Z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를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남긴다.


다음 이야기는 진짜 흥미로운 MBTI 이야기로 가져올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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