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의 사실주의자, 벨라스케스
디에고 벨라스케스,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 1649-51, 갈레리아 도리아 팜필리, 로마
#1.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밖에 있는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몇 안 되는데, 그 중 내가 제일 애정하는 작품은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이다. 이 깐깐해 보이는 양반은 로마의 갈레리아 도리아 팜필리에 독방을 차지하고 앉아 있다.
#2.
벨라스케스는 이십대 초반에 마드리드로 가 펠리페 4세의 초상화를 그렸다. 벨라스케스는 1599년생, 펠리페 4세는 1605년생. 왕은 벨라스케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초상은 그에게만 맡기겠다고 했다. 거대한 제국을 물려받은 젊은 왕과 세비야 출신의 야심만만한 화가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벨라스케스는 왕실화가로, 왕의 초상화가로 활동했지만 마드리드 궁정에 콕 처박혀 왕실 초상화만 그릴 생각은 없었다. 그는 이탈리아 여행을 두 번 하는데, 왕실 컬렉션을 위한 작품 구입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이탈리아의 예술작품들을 보고 안목을 넓히기 위해서기도 했다.
벨라스케스는 왕실의 주문을 받지 않은 그림을 종종 그리기도 했는데, 국정엔 별 소질이 없었지만 예술적인 안목이 있었던 펠리페 4세는 그의 작품을 맘에 들어하며 구입하곤 했다. 그래서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대부분 왕실 소유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왕실 소유가 아니었던 작품들이 있는데, 그건 벨라스케스가 왕실화가가 되기 전의 그림이거나, 그가 이탈리아 여행 중 그린 것이다.
#3.
이십대 초반의 나는 로마에 압도됐다. 없는 주머니 사정에 걷고 또 걷고, 과일로 끼니 때우면서도 미술관 박물관 유적지 이것저것 다 들어가봤다. 스무살이니까, 기운이 넘치니까, 아무것도 몰라 용감하니까 했던 것 같다. 로마에 두 번째 갔을 때, 내가 정한 주제는 바로크 로마였다. 일 제주 성당이나 카라바조 같은 바로크 시대의 작품들을 보는 게 내 목적이었다. 세부 테마가 정해지니, 로마 같은 거대한 도시에서의 여행이 훨씬 편해졌다. 그리고 바로크 로마의 리스트엔 벨라스케스가 그린 인노켄티우스 10세도 있었다.
#4.
조반니 바티스타 팜필리, 즉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는 당시 정적들에게 거칠고 음흉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던 인물이었다. 급변하는 당시 유럽 정황 속에서, 교황이란 자리는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의심의 눈초리로 화가를 노려보는 초로의 남자. 까탈스러울 것 같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자는 쥐도새도 모르게 처치해버릴 것 같다. 물론 자기 손엔 아무것도 안 묻히고.
이 남자의 초상화 앞에서 넋을 놓을 수 밖에 없었던 건 붉은 공단으로 만든 상의의 질감이 너무 실감나지만 붓터치 몇 번으로 쓱 그렸다는 걸 깨닫고 나서인가, 성미 안 좋아 보이는 얼굴이지만 위엄은 잃지 않도록 평형 감각을 잃지 않고 그린 솜씨가 놀라워서인가.
인노켄티우스 10세가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내뱉었다는 한 마디, ‘Troppo vero!(너무 똑같잖아!)’는 널리 회자됐다. 너무 똑같다는 건 실물하고 비슷하게 그려서 잘 그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너무 가감없이 그렸다는 얘기다. 요즘이라면 ‘거 보정 좀 해주지!’라고 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 교황을 아는 사람들이 벨라스케스의 통찰력에 놀라며 내뱉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딱 한번 보고 어째 그 인간을 꿰뚫어봤대? 이런 거 말이다.
#5.
도리아 팜필리 저택은 빽빽하게 여러 시대의 회화, 조각 등이 꽉 차 있는 공간인데, 벨라스케스의 작품만 작은 방에 따로 전시돼 있다. 벨라스케스의 인노켄티우스 10세는 도리아 팜필리의 수퍼스타다. 아 참, 좀 더 일반적인 초상 방식으로 (즉 좀더 괜찮아 보이게 인물을 표현한) 인노켄티우스 10세를 표현한 조각도 이 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조각가 베르니니의 작품. 베르니니 이야기는 언제 하지.
잔 로렌초 베르니니,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화, 1650년경,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