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앞의 마리아
조르주 드 라 투르, 불꽃 앞의 마리아 막달레나, 1635-37년 경, 117x91.76,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이 글은 2019년 2월에 썼다. 내가 사는 동네는 오늘-2020년 6월 15일-에야 영화관 여는 것이 허용됐다. 허용됐다고 기다렸다는 듯 짠 하고 열지 않는 게 여기 사람들 스타일이다보니, 아직 어떤 극장이 열었는지,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 모르겠다. 극장 홈페이지들도 다 시원찮다. 아무렇지 않게 영화 보던 때를 그리워하며.)
#1.
드 라 투르의 그림이 갑자기 떠오른 건 어제 The Favourite을 봤기 때문이다. 영드 브로드처치의 주인공 올리비아 콜먼을 좋아하기도 하고, 시대물을 좋아하기도 하는데, 포르투갈에서 이 영화에 대한 평이 다 기대 이하라는 식이어서 자칫 아카데미 시즌이 지나면 빨리 내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부랴부랴 극장에 갔다. 극중 말버러 부인이 어두운 통로를 지나 앤 여왕의 닫힌 문 앞에 초를 들고 서 있는 장면이 있는데, 어둠 속에서 촛불 하나가 켜져 있고 그 불빛이 가 닿은 레이첼 바이즈의 옆모습을 보자 아, 드 라 투르가 저기 있네.
#2.
마리아 막달레나는 죄 지은 여인이다. 성서에는 그 여인들이 다 동일인물이라고 명시되진 않지만, 간음한 여인(그래서 예수가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라고 했던), 예수의 발에 비싼 향유를 부어 자신의 머리칼로 닦아준 여인, 일곱 마귀가 들어갔다 나간 여인이 마리아 막달레나였을 것이라고 한다. 예수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키고, 예수가 부활한 것을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사람도 열두 제자 중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이다.
훗날 마리아는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사막에서 고행을 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삶을 사는데, 하여 마리아 막달레나는 참회하는 이의 아이콘이 되었다. 보통 마리아는 아주 긴 풍성한 금발머리에(긴 머리로 예수의 발을 닦아주기도 했고, 사막에서 참회하던 시절, 누군가 마리아를 욕보이려 하자 저절로 머리카락이 자라나 벗은 몸을 가려주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즉 약간 과장된 표현) 모습으로 나올 때가 많다.
#3.
드 라 투르의 마리아 막달레나는 좀 다르다. 머리칼은 어둡고 긴 생머리다. 타오르는 등 앞에서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명상하듯 불꽃을 바라본다. 한 손은 메멘토 모리의 상징 해골 위에 올려놓았다. 마리아가 있는 이 공간은 불꽃이 타닥 하는 소리만 드물게 날 뿐 절대적인 고요함으로 가득할 것이다. 마리아를 둘러싼 어둠은 불빛이 닿는 흰색 윗도리와 붉은 치마 외의 다른 모든 색들을 없애버렸다.
드 라 투르는 그가 활동했던 17세기를 지나면서는 완전히 잊혀져 있었다. 18세기 이후 사람들의 취향이 변하기도 했고, 화가의 고향인 로랭 지방이 잦은 전쟁으로 파괴되기도 했고, 화가 개인에 대한 자료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20세기, 한 독일의 미술사학자가 그를 가장 훌륭한 ‘밤의 화가’로 소개하면서 재평가가 시작됐다.
#4. 미술에 대한 글을 쓸 때, 나의 원칙은 직접 본 그림에 대해서만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 미술관에 다녀볼수록 아무리 인쇄의 질이 좋더라도 책에 있는 도판으로 본 것과 실물을 본 것은 꽤 차이가 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안다.
이 제한이 얼마나 이루기 힘든 조건인지도 알고, 미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나도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을 때였는데, 직접 본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고 한 부분을 읽고는, 아, 대단하시군,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실물과 도판의 차이를 이미 느낀 이상, 뒤로 돌아갈 순 없을 것 같다. 되도록이면 직접 본 그림에 대해 쓰고 싶다. 난 로스앤젤레스에 가본 적 없지만, 특별전이라는 미술계의 발명에 힘입어 마드리드에서 이 그림을 봤다. 운송업과 보험의 발달 덕이다.
(2020년 6월인 지금, 가보고 싶은 곳은 많고, 길은 막혔으니 어쩐다. 앞으로 다른 나라에서 그림을 빌려와서 여는 특별전시는 많아질까, 줄어들까. )
#5.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조르주 드 라 투르를 못알아봤다. 지금 내가 이름도 못 들어본 거장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또 내가 본 적 없는 그림은 얼마나 많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