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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애미 Aug 19. 2024

고양이 식당 이야기

- 고구마순 까본 적 있니?

 언제부터였을까? 학교도 다니 전부터 고구마순을 깠다.  엄마가 밭에서 따온 고구마순을 마루에 수북이 쌓아놓으면 모든 가족이 모여 앉아 고구마순을 까고 또 깠다. 까지지 않는 고구마순은 물에 담갔다 깠다. 손끝은 검게 물들고 아빠다리 한 허벅지 위에는 잎사귀와 줄기가 수북했다. 묵직하고 촉감은 차가웠다.


고구마 잎사귀와 고구마순 사이의 얇은 지점이 껍질을 까는 시작점이다. 그 부분을 살짝 꺾어 아래로 내리면 껍질이 '쓱' 소리를 내며 벗겨진다. 그리고 중간을 한번 잘라줘야 한다. 너무 길면 먹기에도 요리하기에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껍질 벗기다 보면 미세한 물방울들이 튀어 올랐다. 마치 분무기를 뿌린 듯하다. 그렇게 잔인하게  껍질이 벗겨지고 허리가 꺾이고 피까지 뿌리고 나면 속살을 드러냈다. 벗겨지지 않으려 애쓰는 껍질은 손톱 끝으로 살살 구슬려 깠다. 고구마순은 녹색도 있고 보라색도 있지만 껍질 까고 나면 그 속은 모두 연한 녹색이다. 어린아이가 까면 얼마나 잘 까겠는가? 까다가 그만 지루해져 고구마순을 꺾어 목걸이도 만들고 팔찌도 만들며 놀았다. 요즘은 유아발달에 소근육 운동을 따로 하기도 한다고 하던데 고구마순 까기는 정말 알맞은 소근육 운동이었을 되었을 것이다. 아빠와 엄마는 그렇게 깐 고구마순을 볏짚으로 띠를 삼아 다발로 묶었다. 넓은 검정 보자기에 고구마순 다발을 차곡차곡 담고 꽁꽁 묶어 경운기에 실어 장날에 시장에 가져가 팔았다.


엄마는 여름철이 되면 고구마순김치, 고구마순 볶음, 고구마순을 듬뿍 넣은 생선조림, 하다못해 정월대보름에는 말린 고구마순으로 나물을 하신다. 엄마의 고구마 농사는 고구마를 먹기 위해서 보다는 고구마순을 먹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껍질을 까야한다는 번거로움에도 엄마는 고구마순김치를 담아 가족들에게 나눠주셨다. 고구마순이 들어간 음식처럼 정성스러운 음식도 없을 것 같다. 요리 장인 같은 정성은 아니지만 투박하지만 깊은 정이 담긴 음식이다.


"막내한테도 보내고 외삼촌 하고 이모들한테 주고 했어."

왠지 엄마의 말속에는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고구마순에 하나하나에 사랑을 담아서 전해 줬어!'

이런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맘때 엄마의 밭에는 널린 게 고구마순인데 마트에서 파는 고구마순은 작은 한단에 4천 원이 넘어 도무지 내 돈 주고는 못 사 먹겠다. 그래서 고향에 내려가면 마치 도토리를 입에 가득 넣는 다람쥐처럼 고구마순을 잔뜩 먹는다. 나는 특히 고등어조림에 넣은 고구마순을 좋아한다. 매콤하고 칼칼한 양념이 깊게 베인 고구마순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엄마 나 고구마순 줘!"

엄마는 이미 방앗간에 짠 들기름, 텃밭에 심은 아직은 덜 익은 복숭아까지 따서 나에게 들려 보내려 짐을 싸셨는데 뒤늦은 나의 부탁에 급히 밭에서 고구마순을 따서 잎사귀만 뗀 채로 파란 비닐에 담아 주셨다. 마트에서 파는 기준으로 한 8천 원 치는 주신 것 같다. 오늘은 왠지 부자가 된 것 같다.


저녁밥을 하려고 고구마순을 다듬었다. 이것으로 냉동실에 있는 고등어와 함께 지져 먹을 셈이다.

몇 년 전 엄마가 알려준 레시피를 복기하며 먼저, 껍질 깐 고구마순을 깨끗하게 씻어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데쳤다. 고구마순의 색이 더욱 선명해져 옥빛이 났다.  건져내어 고춧가루, 물엿, 고추장, 들기름, 어간장, 간장을 넣고 버무렸다. 냄비에 무를 갈고 고등어를 올리고 양념된 고구마순을 올리고 물을 붓고 양파와 청홍고추를 썰어 올렸다. 중 약불에 졸이기 시작했다. 매운 양념이 고구마순에 스며들어 빨갛게 물들었다. 접시에 담아 식탁 위에 올리니 나만 먹던 고구마순을 이젠 아이들도 좋아하는 음식이 되어버려 원 없이 먹기에는 부족해졌다.

문득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구마순 김치 싸줄까?"

'싸 올걸...'

이라는 후회와 아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밥에 고구마순 김치를 넣고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넣고 강된장도 넣고 비벼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아는 사람을 알 것이다.


'먹고 싶다. 고구마순 김치!'


이번에 내려갔다니 허리가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 하신다. 언제까지 엄마의 밥상을 먹을 수 있을까? 그 소중한 시간들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왜 이렇게 눈물만 나는 것인지. 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1년에 몇 번 만날까? 그 사이의 시간 동안 엄마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다. 이렇게 아이 같은 것인지? 점점 엄마 집착녀로 변하고 있다.

 

나중에 고구마순 김치 담는 법을 배워야겠다.

엄마의 모든 음식들을 기록해 놔야겠다.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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