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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식당 이야기

토마토 농사 싫다고 도망간 둘째의 이야기

by 닥애미

5월,

녹음이 지기 시작하고

예쁜 꽃들이 만발하고

새들이 새끼를 치고

자연의 생명력이 충만한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


시골 출신인 나에게 그런 5월은 농사의 계절이었다.
바로 토마토 농사의 계절.
내가 살던 마을은 아주 작았지만, 대부분의 주민이 토마토 농사를 지어 작목반이 있을 정도였다.

토마토 농사는 겨울이 끝날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토마토 씨앗을 물에 적신 수건으로 감싸 싹을 틔워 여러 단계를 거쳐 열매를 맺기까지...

나도 일손을 도와야 했다.

지금도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온실의 냄새

특이한 토마토의 향

찜통 같던 비닐하우스의 열기가

기억 저편에서 떠오르는 이유이다.


5월 초 서서히 토마토가 출하되면서 나도 본격적인 작업에 투입되었다.

어릴 때는 외할머니 집에서 지내야 했지만 조금 컸을 때부터는 줄곧 토마토 출하작업을 도와드렸다.

아빠는 하우스 밭 입구에 차양막과 보온덮개로 한동안 우리의 생활 근거지가 될 작업장을 지으셨다.

토마토를 따는 작업은 거의 엄마 혼자 하셨는데 비닐하우스의 찜통 같은 열기를 피해 새벽부터 토마토를 따기 시작했지만 그 일은 가장 더운 오후 한 시까지 계속되었다. 엄마는 항상 땀에 흠뻑 절여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엄마를 찾으려면 가만히 '똑똑똑'가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은 기술이 발달해 레일을 설치해 이동의자에 앉아 편하게 작업을 한다는데, 당시 엄마는 고랑 사이에 쪼그려 앉아 하루에도 수천 개의 토마토를 따셨다. 토마토 한 박스에 크기에 따라 10개에서 20개 정도 들어가니, 하루 100박스를 출하했다면 적게 잡아도 1,000개가 넘는 양이었다.
토마토로 가득 찬 컨테이너를 한발 손수레에 실어 작업장으로 옮기는 일은 아빠의 몫이었다.

아빠가 작업장 바닥에 토마토를 아기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쏟아 놓으면 우리는 아빠가 정해준 크기대로 ‘다마살이’를 했다. '다마살이'란 토마토를 크기별로 선별하는 작업이다. 우리의 선별 속도 보다 아빠의 토마토를 놓는 속도가 빨라 어느새 작업장에는 파란 토마토가 산처럼 쌓였다.

토마토는 유통 과정에서 후숙 될 것을 고려해 꼭지 끝에 살짝 분홍빛이 도는 것을 수확해야 한다.

너무 익은 토마토는 ‘홍(紅)'이라 하여 낮은 등급을 받았다.


점심시간이 되면 엄마가 챙겨 온 반찬에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어먹거나 버너에 물을 올려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가끔은 특별식으로 짜장면을 시켜 먹기도 했다. 엄마는 그때마다 짬뽕을 주문하셨다.

간식으로 주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빵빠레, 월드콘, 그리고 당시 신제품이었던 메로나가 인기를 끌었다. 엄마는 팥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셨는데, 지금 나의 입맛과 똑같다. 점심과 간식을 먹고 토마토를 박스에 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박스 펴기 경쟁을 하기도 했는데 박스를 펴고 던지는 과정에서 토마토 쪽으로 던져 상처 난다고 아빠에게 혼나기도 했다.

선별한 토마토는 소쿠리에 담아 저울에 무게를 재고,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수건으로 닦아 담았다.
토마토를 담는 일은 기술이 필요한 작업으로 주로 아빠가 하셨다. 아빠는 예쁘고 때깔 좋은 것을 위에 올렸다. 박스를 접고 아빠의 이름과 숫자를 적어 작업장 입구 쪽에 5층으로 쌓았다. 작업은 그날의 수확량에 따라 밤늦게까지도 계속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300박스가 넘게 나오기도 했는데, 정말 엄청난 양이었다. 그날 엄마는 오후 늦게까지 하루 종일 하우스에서 토마토를 따셔야 했다. 엄마에게 그날에 대해 물었을 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 어떻게 그 많은 것 땄어?"

"안 따면 빨갛게 되어버리는데 어떻게 안 따?'


그렇게 박스 작업이 끝나면 토마토를 용달차에 싣고 한 시간 거리의 대전 공판장으로 가 경매를 통해 중도매인에게 판매되었다.


이제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고 늦은 저녁, 우리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두운 시골길을 비추는 희미한 가로등 불에 의지해서 걷는 그 길은 초여름 밤의 개구리울음소리, 풀벌레 소리로 요란했다.

다음 날 부모님은 토마토를 판 돈봉투를 들고 돌아오셨다.
봉투가 나의 기대만큼 두툼하지는 않았지만, 5월은 토마토 덕분에 일 년 중 가장 풍성한 때였다.

그래서 돌아오는 엄마의 두 손에는 여러 가지 음식과 간식이 들려 있었다.
그중에서 떠오르는 기억은 제과점에서 사 온 옥수수식빵이었다.

온 가족들이 둘러앉아 노란 옥수수알이 콕콕 박혀 있는 고소한 옥수수빵에 달달한 토마토 잼을 듬뿍 발라 먹던 모습과 웃음소리가, 빛바랜 사진처럼 기억 속에 떠오른다.

계속될 것만 같았던 우리의 토마토 농사는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렸다. 우리 가족의 찬란했던 5월의 이야기도 끝나버렸다.


이제 마을에서도 아무도 토마토 농사를 짓지 않는다.


마트에서 붉은 토마토를 보게 되면 나는 아빠의 지친 얼굴, 엄마의 땀방울, 컨테이너를 나르다 다리에 멍이 들었지만 부모님을 도울 수 있음에 뿌듯해하던 어린 내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기억 속에서
나는 그때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가슴이 먹먹하고 자꾸만 눈물이 나 코가 막히고 말았다.

다시 그날의 5월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부모님을 꼭 껴안아 드리고 싶다.


5월 , 이 아름다운 계절에

부모님을 생각하면 울컥하는 건

일하기 싫다고 도망갔던

한때는 부모님을 미워하던

죄책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부모님 사랑 덕분에

지금의 나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앞으로도 엄마에게 효도하며 잘 살고 싶다.

엄마 아빠 토마토 농사지으면서 우리 키우시느라 고생 많았어요. 고맙고 사랑해!




https://youtu.be/MwvLjc3M2Hw?si=w5-WxsvUFXukbB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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