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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oo Oct 06. 2020

조카에게

조카님..

해외에서 살고 있다 보니 볼 수 있을 때 보지도 못하는 처지예요. 갓난아기였던 녀석이 국민학생이 되어 있고, 이젠 벌써 목소리가 걸쭉한 고등학생이 되어버리도록 도움하나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큰 외삼촌이에요. 어렸을 때는 삼촌이라는 존재를 지각할 수 있을까부터 의심이 되었지만, 어느새 명철이면 인사라도 하려는 조카님을 보면서, 이젠 오랜 시간 해 주고 싶었던 얘기들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적어 봅니다. 언제 이 글을 보게 될지 모르지만 삼촌은 이런 말들을 해 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노력할게요. 도움이 될 만한 말들은 못한다 하더라도 그저 가족으로서 삼촌으로서 늘 당부하고 해 주고 싶었던 얘기들이니, 보게 된다면 편하게 읽어 주기를 부탁하네요. 


우선은 우울해하지 맙시다. 우울함은 나도 모르게 찾아와서 본인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만큼 조용히 다가오고, 살면서 그리고 나이가 먹어 가면서 정말 많은 어려움들이 생길 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해요.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연습을 합시다. 조금은 공포 영화스럽겠지만, 내가 나를 옆에서 가만히 바라본다고 상상하며 무엇이 날 화나게 하는지, 우울하게 하는지 그리고 슬프게 하는지를 바라보면 그중 일부는 별거 아닌 것임을 알게 될 거예요. 이렇게 조금씩 힘든 기운에서 스스로 거리를 두다 보면 어느새 나를 소모시키는 감정들과 사람들이 보일 것이고 멀리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중 일부는 아프게 겪고 난 후에만 알 수 있고 그래서 타인의 아픔도 공감할 수 있는 속 깊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들도 있겠지만, 그건 조카님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우울증으로 힘들어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보는 연습이 필요해요. 하지만, 살다 보면 무엇인가에 붙잡인 듯 자기도 모르게 하는 행동과 감정들이 있으니 그럴 때는 크게 세 번 일부러라도 소리 내어 웃어주고 넘어갑시다. 괜찮아요. 억만 가지 감정과 생각을 어떻게 다 조절하겠어요. 그냥 몇 가지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조금은 담담하게 살아보려 노력하자는 뜻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울하고 마음이 아플 때 전문가나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결코 부끄럽거나 나약한 행동이 아닙니다. 아파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이용하려 하거나 나약하다 비웃는 사람들은 본인의 두려움과 비겁함을 숨기고 타인을 통하여 자기 합리화와 우월감을 가지려 하는 자들일뿐이에요. 애써 상대하지 마세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음일 때, 더 조심해 봅시다. 하고 싶은 일들과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라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대합시다. 그러면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 때 후회하거나 아쉬움이 남을 일들이 줄어 들 거예요. 그렇다고 실수하고 잘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직성 혹은 천성이라고 해요. 자신이 타고난 성품이요. 이건 태어날 때 손에 쥐고 나와서 무덤까지 가져간다고 해요. 바꾸기 힘들겠죠? 갑자기 바꾸려고 하면 피곤하겠죠? 그러니 그냥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됩니다. 특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은 기운이 많을 때, 두려움과 초조함보다 자신감과 열정이 더 많을 그 시기에 연습하여 자신의 두 번째 직성으로 만든다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요. 이 외삼촌은 아직도 불같은 성격 때문에 고민 많이 한답니다. 그리고 후회하거나 잘 못 했다고 낙심할 일이 생긴다면 얼른 상처 받았을 사람과 자기 자신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집 앞으로 산책을 나가 보세요. 천천히 걸으면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되어 본인이 느끼는 감정들을 한 발 떨어져 살펴봅시다.


조카님은 아직 학생이네요. 주변에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준비하는 친구들이나 사람들이 있지요? 그걸 듣고 바라보는 부모님이나 본인도 불안할 거예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학교 성적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닐 때면 더 답답할 겁니다. 남들은 저만치 앞서 가는데 나만 뒤에 남겨진 것 같을 거예요. 그런데요. 난 무엇이 될 거고 무엇을 할 것이다라고 하는 그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가족과 주변의 기대나 세상이 이런 것을 원한다는 미디어의 광고에 의해 본인들도 모르게 결정된 것은 아닐까요? 지금 조카님이 살아나가고 있는 시간들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혼란스러운 시간들일지도 몰라요. 가족과 친구들의 말들과 의견 그리고 매일 소비하는 미디어의 feed 들에 생각과 행동 그리고 모습이 결정되기 쉬워요.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끝까지 들어주세요. 다만, 본인의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순간은 우연히 올 것이고, 그때가 왔을 때는 본인만이 느낄 수 있는 강한 의지가 생길 것입니다. 그걸로 된 거예요. 혹은, 강하지 않더라도 내가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그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이 되는 순간이면 그것을 향해 걸어가면 됩니다. 외삼촌은 17살쯤인가 조카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으니 해야만 할 일을 하자라는 마음을 먹고 지금까지 왔어요. 결과요? 망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허. 허. 허. 지금 내 나이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아요. 솔직히 조금 답답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진로를 빨리 정해야 성공할 것 같지요? KFC 할아버지도 어차피 인생 후반에 시작해서 나이 70이 넘어서야 닭장사에 성공했어요. 괜찮잖아요. 조급해하지 말고 귀를 열고 눈을 뜨고 지금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며 걸어가면 됩니다.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모습들은 셀 수 없이 수많은 삶들과 때의 적절함과 공간의 적절함이 서로 복잡하게 맞물려 이루어진 결과라고 해요. 심지어 내가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그 순간도 이 수많은 관계들이 만들어 낸 결과이자 다른 모습들을 만들어 낼 일부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 연관성을 우연이라고 부릅시다. 예전에 알던 직장 동료가 돈이 많았어요. 고급 양복에 고급차를 끌고 이 직장 아니어도 사는데 전혀 문제없을 것 같았지요. 호기심에 물었어요. 어떻게 돈을 벌고 자산관리를 했느냐고요. 그 친구가 "형님,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거 아닙니까? 전 투자도 하고 인맥도 만들고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운 같은 거 안 믿어요. 준비했으니 기회가 왔을 때 잘 된 거지"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회사를 그만두고 더 조건 좋은 직장으로 옮겨 갔어요. 웃으면서... 3년 뒤에 다시 연락이 되었을 때는 하던 일이 잘 되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데요. 그리도 자신 있게 준비하던 사람이 왜 힘들어졌을까요? 조카님, 기회는 우연 속에 있고 우연은 앞에 말한 모든 것들이 만들어 낸 과정의 일부입니다. 결정된 목표를 위해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은 옳고 당연한 일이지만, 우연 속의 인연들이 만들어 낼 운이라는 것을 절대 간과하지 마세요. 그리고 좋은 운이든 나쁜 운이든 그것을 만났을 때 운앞에 겸손해합시다. 좋은 것은 감사해하고 힘든 것은 배움의 기회로 삼는 그런 겸손함이요. Bill Gates도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사립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거기서 coding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그도 없었을 겁니다. 창업 동지를 그 학교에서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MS도 없었을 겁니다. 본인의 노력과 준비만으로 됐냐고요? 아. 니. 요. 


마지막으로 학교 공부에 심하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면 인문과 철학 관련 책들을 짧고 쉬운 것부터 하나씩 읽어 보세요. 소설, 종교, 철학 그리고 만화 등 상관없습니다. 삼촌도 20대 초반 대학생 때, 25권에 달하는 연작 만화들을 만화방 (그 당시엔 분명히 존재했다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번에 다 보곤 했어요. 다행히도 그 당시에는 만화 작가들이 꽤 많은 공부를 하고서 작품을 만들어 주었네요. 그 후로는 다시 생계유지를 위해 힘쓰느라 놓았던 책 읽기를 요즘 다시 시작하고 있어요. 내가 권하는 이유는 단 하나예요. 힘든 시간이 왔을 때, 그리고 생각의 전환점이나 자유를 얻고 싶을 때 좋은 책만큼 도움이 되는 것도 드물어요. 고전으로 분류되어 온 책들부터 시작하면 좋겠어요. 현대 음악의 거의 모든 음계와 화성이 이미 고전 음악에서 사용되었듯이, 지금 우리가 보고 듣는 명강의들과 연설들 그리고 유명한 책들은 어차피 고전들의 영향을 피해 갈 수 없을 거예요.


조카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자신이 듣고 싶었거나 스스로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말들을 하게 된데요. 어쩌면 삼촌도 조카님 나이였을 때 누군가가 이런 말들을 나에게 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글을 적기 시작한 것 같아요. 늘 건강하고요, 멀리 서라도 이 외삼촌은 조카님의 앞날을 응원할게요. 밝게 자라주어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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