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충격을 오랜 후에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에 미국에 왔다. 지금과는 달리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서서히 늘어나고 있었어도 미국에서의 삶이나 문화가 쉽게 공유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다. 당장 입을 옷과 급하게 쓸 영어 몇 마디 준비하고 나면,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아직 아이디어로만 존재하던 시절이니, 일단 가봐야 알 수 있었다. 아! 그리고 MTV에서 보여주던 모습은 현실이 아니었다...
나에게 문화적 충격은 예상보다 늦게 그러나 기대보다 강하게 왔다. 체력이라는 것이 아직 존재하던 시기라 한국에서는 집 밖은 위험하다고 믿으며 살던 내 모습과는 달리,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고, 어지간한 느끼한 음식은 맛있게 먹어 주었다. 말문과 귀가 영어에 빨리 터야 살아남는다는 믿음에 유학 중이던 학교 학생들의 모임에도 종종 참석해서 어울리려 노력했다. 어느 곳에서 누구를 만나든 열린 마음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안 해봐서 모를 뿐, 해보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는 나의 자세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일 년이 다 되도록 이렇다 할 충격받을 일이 없었고 난 내가 미국 체질인가 라는 착각을 시작하게 될 무렵, 캠퍼스 교회의 한 교인에게 들은 말 한마디로 난 다른 문화에 대한 충격을 넘어, 삶의 충격을 받았다. (참고로 난 기독교나 천주교인은 아니다.)
미국에서 계속 남아 유학을 하기로 결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전공을 바꿔서 해 보라는 결정을 받은(?) 시점이었기에 난 무슨 전공을 공부하고 무슨 직업을 가져야 성공했다는 소리도 듣고 돈도 잘 벌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 교회는 학교 내 학생들, 교수들 그리고 학교 직원들도 많이 참석하는 자리였기에 자연스럽게 전공이나 직업 기회 등에 대한 얘기가 가끔 오고 갔다. 어느 날인가 한 교인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우연히 물어볼 기회가 생겼다.
너무 오래전 일이었고 잠시 알고 지낸 분이라 기억이 잘 나질 않아, 그 날의 대화 내용은 더듬더듬 기억하여 다시 구성해 본다. 평일에도 자꾸 교회에 나와서 자기랑 성경 공부하자고 했던 분이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기억하기가 힘든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마지막에 해 준 얘기는 내 생각과 믿음을 정말 많이도 흔들어 놓았다.
"전공을 바꿔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무슨 전공을 공부해야 나중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왜 성공하고 싶은데요?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한 모습이 무엇이지요?" 그가 천천히 되물었다.
"앞으로 한 10년 후에 많이 필요로 해질 전공을 공부하고 취업을 해서 부유하게 살거나 제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 되는 것이 성공한 게 아닐까요? 지금은 그게 전부입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행복해질지는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그것이 먼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걸 공부해 보세요."
난 이상하게도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알겠지만, 전 비싼 돈을 써가며 유학을 왔고 그렇게 고생한 만큼 나중에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줄 전공을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당신은 유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이 학교에 등록금으로 내고 있는지는 혹시 알고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물었다.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기도를 위해서인가요? 성경공부를 하기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사람들을 만나서 영어로 듣고 대화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인가요?" 그리고 약간 뜸을 들이고서는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보세요, 세상에는 정말 많은 길이 있습니다. 그 길 중에 어떤 길을 당신이 가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당신이 이 곳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는 것을 투자라고 믿고, 이 투자가 언젠가는 당신에게 이자를 붙여 당신이 말하는 성공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어떤 투자를 할 것인가요? 계속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만 지금 하고 있는 공부나 일을 결정하고 싶습니까? 당신이 교회에 참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논리라면 지금 나에게 이 질문을 하는 것도 계획의 일부일 수 있고 나중에 무언가를 얻기 위한 준비일 테니까요. 당신은 정말로 교회에 나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인가요?"
난 할 말을 잃었다. 잠시 후 그는 말을 이어갔고 나에게 결정타를 안겨 주었다.
"본인이 무엇을 하던 그건 본인의 삶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가 보여주는 모습들 때문에 우리와 관계를 맺을 거예요. 성공이라는 것도 결국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부분을 빼고 나면 자기만족일 뿐입니다. 스스로 좋아하지도 못하는 것을 공부해야 하고 졸업장을 획득해서 그걸로 직장을 얻어 사는데, 내가 즐겁지도 않은 상태에서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조차도 얻지 못하면 그때는 너무 슬프지 않을까요? 난 반드시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거나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매 학기 잃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힘들겠지요. 전 당신처럼 외국에 나가 살 용기도 없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냥 지금 내가 무슨 공부를 해야 즐거울 수 있을까, 아니면 난 이걸 해 보고 싶으니 그걸 위해서는 이 공부를 해야 할 필요가 있어라고 판단되는 공부를 해 보세요. 이게 당신에게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일 수 있잖아요. 어쨌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혹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즐거울 수 있어요. 남들이 뭐라 하든.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든. 행복해 지기 위한 고민을 지금 해보세요"
아...
내가 어린 시절 잠시라도 꿈꿨던 직업들은 화가, 작가, 도인, 가수 그리고 물론 의사도 있었다. 의사만 빼면 다른 직업들은 시쳇말로 손가락 쪽쪽 빨고 처자식 굶기기에 아주 좋은 직업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의사가 되려면 정말 성적이 좋아야 하고 돈도 많아야 한다고도 들었다. 그건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17살의 난 이런 결심을 했었다. 내가 지금 목숨 걸고 해 보고 싶은 일은 없다. 되고 싶었던 일은 현실적으로 힘들거나 나중에 가난해진다고 한다. 좋아. 그러면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을 때까지는 내가 지금 해야 될 일을 하자. 그게 우선이다. 그래서 대학도 성적 맞춰 갔다. 합격하는 데로 그 대학에 그 전공으로 갔고, 노력했지만 공부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인지 많이 힘들었다. 미국도 오기 싫었지만 그 시점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해야만 한다고 믿었기에 왔다.
난 그때까지 단 한 번도 '행복해지려고 고민해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의 사치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네가 하고 싶은 일, 즐거울 일을 하라는 말을 미국에서 참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의 일을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행복하다고 느끼거나 즐겁다고 느끼기 위해 살아도 된다는 것을 그날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난 내가 하고 싶었던 글쓰기를 하고 있다. 재능도 없고 늦게 시작해서인지 많이 서툴다. 요즘 시간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인터넷이라는 엄청난 매개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기에 살고 있어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날 그의 의도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이 글들을 쓰는 과정들이 난 즐겁다. 누군가가 읽고 공감이나 응원을 해 준다면 더 좋겠지만, 내가 쓴 글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읽힐 수 있는 작가라는 명칭을 얻은 것만으로도 난 족하다. 내 경험과 생각을 더 잘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 소소한 고민들을 하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하기 싫었지만 먹고살아야 한다는 문제로 힘들게 직장을 다녔고, 일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있었기에 불행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내 기준에는 한참 부족했지만, 나름 그 자리에서는 인정을 받았기에 그 부분만큼은 내가 생각했던 성공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말한 것처럼 직장을 떠나 온 지금, 나는 남에게 보여줄 것이 없기에 약간의 허전함을 느낀다. 내가 좋아했거나 자기만족을 줄만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17살의 내가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삶을 살아왔고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느끼게 되는 즐거움을 통해서야, 난 그날 그가 해 주었던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가졌던 기회는 아주 오래 전의 아쉬움으로 지나갔다. 어차피 성공하겠다고 선택한 전공도 여러 악재로 결국 바꿔야만 했다. 역설적이게도 17살 까까머리 고등학생의 다짐이 수십 년을 버텨 준 힘이 되었다. 이제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되기에 그동안 내가 느낀 불만과 불안 그리고 잘못이었다고 느꼈던 선택들과 타협이 될 것 같다. 그리도 더 시간이 지나면 이런 생각마저도 아무렇지 않고 편해질 날도 올 것이라 믿는다.
우선 먹고살아야 하니까 직장을 다시 잡을 것이고, 힘들때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행복하고 즐겁다고 느끼는 일은 이렇게라도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집착만 하지 않는다면, 강박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라면 글도 오래 쓰며 즐길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내 안의 즐거움과 만족에 더 집중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면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보고 싶다.
그리고 그동안 나에게 행복해지려고 노력해보라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따뜻한 조언을 해준 분들에게 묻고 싶다. '꼭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하나요? 그것마저 목적이 된다면 불행하잖아요. 그냥 지금 현실을 긍정하기만 해도 괜찮은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