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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씨 Jun 09. 2021

필리핀에서 살아남기

한국을 떠나 보홀

한국을 떠나 필리핀을 시작으로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시작 이라기보다 우선, 필리핀으로 오게 되었다.  여기서만 3년을 지낸 걸 보면 여행의 시작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에서 떠나는 날 눈 이 왔다

필리핀 오기 두어 달 전부터 준비를 했다. 캐리어 두어 개 끌고 언제 돌아올지 모를 여정을 떠나는데 두 달이라는 시간은 충분했다. 대게 고민은 둘 중 하나를 버리지 못할 때 오는 감정이다. 욕심을 많이 줄이면 모든 선택은 생각보다 굉장히 쉽다. 미리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다른 해외근로자(?)들처럼 회사의 조건, 근무형태 그런 건 필요 없었다. 단순히 먹고 잘 수 있고 한 달에 쓸 용돈 10만 원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안전해야 했다. 살던 전셋집을 정리하고 나가는 날짜를 정했다. 우선 아름다운 바닷속이 그리웠다. 가장 가까운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곳을 찾았다. 필리핀이었다.  필리핀의 치안은 좋은 편이 아니다. 수 천 개의 섬 중에 그나마 메인 도시 세부와 마닐라에서 멀지 않고 안전한 청정지역 같은 곳이 없을까? 보홀이 있었다. 

지금은 보홀에 작은 공항이 생겨 한국에서 직항도 있고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보홀섬을 가는 방법은 세부에서 배를 갈아타고 몇 시간 들어가야 했다. 가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제반시설도 없는 섬이었다. 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쿠버다이빙 환경과 그래도 때가 덜 묻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필리핀의 작은 다이빙 샵과 연락해 스태프로 들어가기로 했다. 근무 조건은 간단했다. 리조트의 운영을 도우며 스탭을 같이 해 주고(총인원이 4명이다) 다이빙 샵의 2층 판잣집에서 숙식제공(에어컨 따위 없다 사실 크게 필요가 없다) 그리고 휴일은 불 규직 적이지만 있을 수 도 있음. 그리고 월급 없음. 무작정 연락해서 부탁하다시피 간 곳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었고 필요도 없었다.(3년간의 이야기는 굉장히 길기에 줄이자면 그분들은 참 고맙고 감사한 분들었다)

판잣집 다이빙 샵 1층

다이빙 샵에서 먹고자며 일을 도왔다. 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작은 다이빙 샵에 한국인은 4명 그리고 나머지 필리핀 스태프 직원들 5명 정도가 있었다. 필리핀 스태프는 주방 파트 3명 그리고 다이빙 헬퍼 스탭이 2명 있었다. 이들의 한 달 급여는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메인 스태프의 경우 필리핀 대졸 신입사원 정도의 급여를 받았다.(60만 원 정도이다) 

필리핀에 처음에 왔을 때 시내 쇼핑몰에서 오리털 점퍼를 파는 걸 보고 의아했는데 필리핀도 여름 겨울이 있다. 사람들의 일하는 패턴도 도시 같은 경우 24시간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이어지는데 오전 해뜨기 전 시간엔 사람들이 모두 도톰한 후드 점퍼를 입고 다닐 정도로 상대적인 추위를 느낀다. 1년에 네댓 번 정도는 전기장판과 찜질방 생각이 간절히 났다. 일하는 환경과 시설은 열악했지만 전혀 불편함을 못 느꼈다. 나는 그동안 당연하지 않은 것에 물들어 있었다.

보홀의 비자 연장 대행소에서 증명사진을 찍어준다

오히려 가진 것이 없어지니 편해졌다. 비가 와도 젖을 신발이 없고, 다음 달 낼 월세가 없고, 핸드폰비가 없고, 리스비가 없고, 무엇에든 빚지지 않은 생활이 가능했다. 지출이라곤 돈만 내면 연장할 수 있는 필리핀 비자였다. 2개월에 10만 원 정도 되는 비용도 후에는 샵에서 같이 처리해 주었다. 버는 돈도 없었지만 그리 나갈 돈도 없으니 생활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값이 비싸 많은 집이 물을 받아서 사용한다.

동남아 외딴섬에서의 생활은 사실 크게 별게 없다. 바빴던 시즌을 제외하면 일주일에 두어 번은 일어나서 밥을 먹고 와이파이 되는 옆 리조트의 신호를 잡아 SNS로 샵 홍보를 30여분 하고 쉰다. 걸어서 다섯 걸음만 가면 바로 바다에 발을 담글 수 있지만 귀찮아서 잘 안 가게 된다. 샵 근처 야자수 나무나 시원한 그늘을 찾아 책을 보다 한숨 자고 나면 점심시간이다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

그러다 자전거나 작은 오토바이로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여기저기 어떻게들 사나 구경을 한다. 일부 큰 리조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벽돌로 아랫 뼈대만 만들고 나무로 대충 지은 집에 몇 식구가 모여서 산다. 한국의 80년대와 비슷한 느낌. 아이들은 콜라병 하나, 막대기 하나만 있어도 저희들끼리 어울리며 즐겁게 논다. 가난한 사람은 있어도 굶는 사람은 없는 곳.

사람들끼리의 최소한의 연대(?) 같은 것도 느껴졌다.

밥 냄새가 나는 저녁쯤 노는 아이들

개인적으로 이 섬에서 가장 포근했던 시간은 오후 5시쯤 온 집이 밥을 짓기 위해 코코넛 껍질을 태워 불을 피우고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그 시간인데 햇빛마저도 나무들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그런 시간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시간이다. 그렇게 저녁이 되면 샵에 돌아와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책을 잠시 보다 잠이 든다. 어떤 날을 비가 많이 와서 세숫대야를 방에 받혀 놓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태풍이 와서 밤새 굉음에 잠 못자기도 하고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한국을 떠나 필리핀 보홀로 와서 이런 생활을 하니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정신적 건강이다. 정신이 건강해지니 몸도 점점 컨디션을 찾아가고 오롯이 자신에 집중하며 살 수 있었다. 한국에서 느꼈던 결핍들은 여기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저 비바람 피해 잘 수 있고 하루 세끼 먹으면 더 이상 필요한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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