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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씨 Oct 08. 2021

사리사리 골목경제

냉장고

필리핀 서민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사리사리'라고 불리는 작은 구멍가게다. 정식(?) 명칭은 'SARI SARI STORE'라 알고들은 있지만 보통 사리사리라고 부르고 그리 불린다. SARI SARI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인도네시아어로 '매일'이라는 뜻이다. 필리핀의 식민지가 워낙 많이 바뀌면서 언어문화적으로 섞이게 된 이유도 있겠고 뭐 자세한 건 역사학자께서 뭔가 설명을 해 주실 거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서민들의 생활 방식 느낌(?)과 필리핀의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찌 보면 같은 나라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슷한 구석이 많다.

작은 사리사리에서 판매하는 과자 모든 종류를 구입해봤다.

 사리사리는 한국의 새마을 운동 즈음해서 시골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공판장' 또는 '부녀 가게'와 비슷하다. 지금도 한국의 시골에서는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때와는 다르다. 그때의 시스템은 작은 시골 부락의 부녀회에서 1년 혹은 2년씩 돌아가며 순번을 정하고 집구석에 작은 매대를 마련해서 시내에서 물건을 떼와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합의되고 허락된 판매행위라고 해야 할까. 이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형편이 어려운 집부터 순서를 받아 장사하게 도와주는 연대가 있었다. 동네에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였다. 그 시절 동네마다 하나 있는 부녀 가게, 구멍가게의 판매 물품은 주로 상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오래된 냉장고는 있었지만 문제는 오히려 겨울에 얼어 터지는 음료수병이 문제였었다.

사리사리는 이런 대형몰에서 물건은 사 와서 판매한다. 오토바이로 30분 거리에 있는 대형 몰


 지금의 필리핀 사리사리는 한국의 그때와 비슷하다. 시내의 큰 몰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 후 판매하는 방식이다. 판매하는 물품은 상하지 않는 것이 주를 이룬다. 한국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저녁 무렵 사리사리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여자아이

 하나같이 가게 앞은 철창으로 막혀 있고 말로 주문을 하면 주인이 안에서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치안을 생각했을  당연한 처사처럼 보인다. 보통은 여건이 된다면 총을  사설 경비업체와 계약을 하고 그들이 밤새 집을 지킨다. 작은 빌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우리네 경비원 같은 개념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실탄  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경비원들이 대부분 투잡이라 밤에 꾸벅꾸벅 존다. 그마저도 없으면 도난에 무방비가 되기 때문에 대부분 고용을 한다.

 판매하는 물품이 거의 일회용품들이다. 과자나 간식도 마찬가지다. 대용량이 없다. 이곳의 서민들은 일회용품 샴푸를 사서 몇 번에 나눠 쓰지 대용량을 구매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싸다. 결과적으로 보면 대용량을 사서 오래 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지만 당장 그럴 돈이 없거나 그리 계획적인 삶을 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삶과 다른 점을 설명하자면 복잡하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면 우리는 다음 달 카드값을 걱정하고 다음 달 핸드폰 요금을 내야 하며 다음 달 다음 달... 대부분 부채의 삶을 살고 그 두려움 속에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도살장으로 향한다. 이곳의 서민도 부채의 삶을 사는 것은 비슷한데 받아들이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오늘 쓰고 없으면 내일 안 쓰면 되는 거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랄까? 그리고 굶을 일이 없다. 물 빠진 백사장에 나가 성게를 주워 먹어도 되고 정말 쌀이 떨어졌다면 옆집에서 밥과 한 가지 반찬을 얻어먹는 것쯤은 그리 대단하지 않게 생각을 하는 정서가 있다. 게다가 노동을 해서 밥값을 벌 수 있는 일 은 너무나 많다.

 대부분 외상이다. 사리사리마다 장부가 있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의 외상이 일일이 적혀있다. 그렇게 장부에 적어가며 외상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월말 또는 분기마다 외상값을 갚는다. 이 외상 장부라는 것은 단순한 외상의 의미가 아니다. 외상장부는 권력을 가진다. 한 곳의 사리사리에 외상장부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리사리에서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다. 다른 사리사리에서 물건은 사는 순간 외상값을 다 값아야 한다. 모든 부채가 탕감될 때까지 그 장부는 고정고객 장부로서 힘을 가진다.  한 마을에 수많은 사리사리가 있는데 하나같이 소소하게 장사가 되는 것은 이런 이유도 있다.

 물건값이 다 다르다. 같은 일회용 샴푸라고 해도 또는 같은 과자라고 해도 가게마다 가격이 다르다. 물론 한국으로 따지면 10원 단위이지만 물건 가격이 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싼 곳의 물건을 살 텐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장부 때문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부채가 10만 원 있을 때 10만 2백 원이 되는 것과 10만 3백 원이 되는 것 이런 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다.

 사리사리의 가장 큰 매출의 차이는 냉장고 유무에 있다. 대부분의 집이 나무로 엮어 만든 거푸집이다. 물값이 비싸서 수도를 놓지 않고 물을 받아다 사용한다. 물값뿐 아니라 전기료도 비싼데 한집 건너 한집은 TV가 있다. 주로 저녁 시간대만 시청한다. 하지만 냉장고는 드물다. 계속해서 전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냉장고가 있는 사리사리가 매출이 높다. 얼음을 비롯한 아이스크림들을 팔 수 있기에 매출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대부분 수도시설이 없다. 물을 큰 통에 받아서 생활한다.

-오늘도 노을을 보며 엉뚱한 생각-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 일반 가정에 냉장고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삶은 지금보다 불편해지겠지만 지역경제와 골목상권은 살아나지 않을까. 컴퓨터는 빨라지고 우리가 할 일은 더 많아진다. 냉장고는 계속 커지고 나보다 오래 살 것 같은 음식들은 그 속에 쌓여간다.

늘 이러한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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