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12월이 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쉰다. 왠지 아무것도 하기 싫고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싶아 진다. 그렇게 조용한 날들을 보내다 보면 한 해를 돌아보고 또 다가오는 한 해를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한 해의 마지막이라는 기분 때문인지 왠지 12월이 되면 감성적이 되고, 마음이 스산해지며, 후회와 아쉬움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별로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 탕진했던 나의 소중한 시간과 감정들에 대한 소회이며 현명하지 못했던 처신과 판단에 대한 후회다. 언제나 모든 면에서 정상에서 약간 2%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는데 평생 고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이 버릇 고칠 때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2021년 신년에 써 놓았던 계획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현업인 게스트하우스 운영 외에, 테이크-아웃 카페, 유튜브, 자전거, 그림 공부, 묵상일기 쓰기, 속초에서 살아 보기, 하고 싶은 일들이 적혀 있다. 1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 리스트가 되었다. 자전거는 시작하자마자 당한 사고로 딱 한 달 타고 거실의 한편에 서서 나를 원망하고 있다. 제주도 일주 데려간다며?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요즈음은 자전거보다 조금은 안전한 수영에 빠져들고 있다.
유튜브는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권태기가 올 즈음에 온라인 강사에 도전해서 공부하고 준비하느라 쉬고 있다. 온라인 강사는 계획에는 없었지만 해보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 중요하고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적성에도 맞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 제약이 있는 듯해서 조금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림 공부는 지지부진하지만 이제 다시 시작하고 있고(항상 시작에만 머물러있지만.. 못 그려도 재미있어서 계속 배우려고 한다) 속초는 1-2달에 1번씩 짧게 다녀온다.
테이크-아웃 카페는 아직도 생각만 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 게스트하우스를 계속 운영하고 있는 것 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1년간 호스팅 하면서 흘린 땀과 더불어, 재미있었던 일들, 무엇보다 은퇴한 나이 지긋하다는 호스트에게 호의를 보내준 게스트들을 기억한다.
2021년 다이어리를 펼쳐보니 많은 일이 있었다. 매일 빼곡하게 채워진 메모에서, 지난 간 시간들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지나 보면 또 그런대로 넘겼던 일도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고 가슴 아팠던 일들도 있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아무 소득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일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자잘하게 적힌 지나간 날들의 노트를 보면서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뿌듯한 느낌도 있다.
2022년 신년 계획은 중단했던 유튜브를 다시 시작해서 최근에 올리기 시작한 에어비엔비 창업 강의와 함께 책 읽어주는 북튜브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 외에는 그냥 지금처럼 평화롭고 한가하게 살고 싶다. 그냥 더 많이 읽고, 쓰고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 그나마 나이 탓인지 점점 무엇을 하겠다는 욕심은 줄고 그냥 평화롭고 한가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전쟁 같았던 젊은 날에 대한 보상이랄가, 이제는 그냥 커다란 바람 없이 사는 데 익숙해져 간다. 무엇을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은 갖지만 무엇에도 이제는 목숨을 걸지 않는다. 되는대로 하고, 안되면 할 수 없고. 나이 탓이기도 하고 노쇠해 가는 체력 탓이기도 하지만, 목숨을 걸 정도로 중요한 것은 내 인생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한 편으로 쓸쓸해지지만 그렇다고 허무하고 슬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편안한 오후를 해가 비치는 창가에 앉아 한가로이 보내는 시간의 감미로움을 즐긴다 고나 할까, 무위도식의 꿀맛에 빠져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사건들, 잡음들 에서 서서히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유튜브도 도시를 떠나 낙향하거나 산골로 들어가서 간소하게 사는 사람들의 얘기나 정원 가꾸기 같은 콘텐츠들을 즐겨본다. 기회만 되면 속초로 내려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많지만 연로한 어머니 때문에 당분간은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다
요즈음 듀얼 라이프라고 해서 5도 2촌 라이프가 뜨고 있다. 도시에서 5일간 일하고 생활하다가 주말에는 시골로 내려가 자연 속에서 휴식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자체 차원에서 이미 정책적 지원을 시작하겠다고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미래 인구 축소에 대비한 농어촌 살리기 정책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시골로 내려간다고 보따리를 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도 내년에는 5서2속(5일서울, 2일 속초)을 실행하고 싶은데, 경제적 문제로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나이 든 사람에게 시간이란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 인가, 재물이나 명예 같은 것에는 더 이상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단지 남아있는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 남에게 유용한 사람이 되는 것,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 죽을 때까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 더 많이 여행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는 것 등이 ‘버킷 리스트’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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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돌아보면서, 그렇게 살고 싶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한것, 희망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많은 것들에 대한 회한이 있다. 그래서 더 내년 한 해가 기다려지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막의 교부인 안토니오 성인이 하느님의 심판에 대해 깊이 생각하던 중 하느님께 물었다. “하느님, 어떤 사람은 젊었을 때 죽고, 어떤 사람은 오래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가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자가 있게 되는 것입니까? 왜 악인은 흥하고 의인은 궁핍에 처합니까? 하느님이 대답하셨다. ”안토니오, 너 자신에게나 관심을 가져라. 이런 일들은 하느님의 판단에 속하는 것임으로 네가 이 일을 안다고 해서 너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
가끔 떠올리는 안토니오 성인의 말;; “네가 가진 것은 네가 아니다. 너의 재산도, , 지식도, 명예도 네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