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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un흔 Jul 24. 2020

10. 저마다의 휴식

죽이는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브런치 창을 연 것도 어느새 한 달 만이다.

글을 쓰는 것 마저도 의무감에 써 내려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손을 놓았었다.


임상시험을 위해 항암 치료의 약이 바뀌고 나서부터는 요양병원에 가지 않고 침대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이와 같은 시간이 무척이나 낯설다.




 #001. 쉬지 못하는 휴식 


 지금껏, 나의 휴식은 빈틈없이 공허한 무언가를 채우는 시간이었다. 

 회사가 끝나면 친구들을 만나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또 주말에는 하루라도 집에 있는 날이 어색할 정도로 여기저기 약속과 함께 돌아다니는 생활이었다. 그리고 휴가철에는 하루 이틀이라도 여행은 꼭 가야 하는 것이 나의 휴식이었다. 

 시간을 비우지 않는 꽉 찬 하루가, 남들보다 알찬 하루를 만들어주는 듯한 괜한 으쓱함을 가지게 했다.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사회생활에 지친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어야만 하는 것이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휴식 시간에 지금과 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예전이라면 마치 아무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여겼었고, 고장 난 자동차의 부품처럼 멈춘다는 것은 상당히 불안한 일이었다. 내일의, 1년 뒤의, 미래의 내가 두려워서였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도 가장 큰 걱정 중 하나였다. 마치 열심히 일한 나에게 보상을 하듯 무언가를 사고, 여행을 가고, 또 그것을 채우기 위해 또 쉬지 않고 일하고. 남들이 말하는 때에 맞춰 결혼 걱정을 하며 무작정 돈을 모아야겠다 생각하며 스트레스받는 그저 평범한 30대.


 계속 멈추지 않고 올라가야만 한다는 강박과 남들과 비교할 때에 뒤쳐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답답함이 몰려왔고, 나의 노력보다는 현실을 탓하게 되었다. 


 결국 그때에는 현재의 나를 돌보지 않았다. 형체가 없는 미래의 나를 위해 틈 없는 시간을 보내며, 휴식이라 정의하고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라 자부했다.

 




 #002. 죽이는 시간 

 

 운전을 하고 오가는 시간에는 라디오를 듣는다. 어느 누군가의 사연을 들으며 웃기도, 훌쩍거리기도 한다. 혼자서 퀴즈를 맞히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일부러 듣는 것은 아니지만 꽤나 소소하게 힐링이 되는 시간이다.


 오늘 박명수의 라디오쇼에서 행복이란 키워드와 함께 전해준 마무리 멘트는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행복의 1순위는 건강이에요. 건강을 잃으면 다 잃습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당연한 그 말 한마디가 지금의 나에겐 꽤나 임팩트 있었다. 


 불과 반년 전의 나는 몸이 바쁘고 마음이 바빠 대체로 건강하지 못한 하루이지 않았을까.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 기름진 음식,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무엇이든 하려는 객기로 가득한 휴식의 시간들이었다.


 예전의 나의 관점으로 보면 지금의 나는 한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다. 멍 때림의 시간이 반 이상인 하루. 눈을 뜨면 하고 싶은 걸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그 어떤 의무감도, 책임감도, 걱정도 없이 그렇게 죽여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가장 큰 행복을 빠르게 찾기 위해선 평온한 나를 유지하는 게 가장 큰 숙제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내가 편안해야, 내일의 나도 있을 수 있다는 상황에 직면에 있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문득문득 시간을 비워내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잠들기 전 하루에 30초 정도는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왜 자기 전에 책을 읽지 않을까.

 나는 왜 영어회화를 한다고 하면서 하지 않을까.


 누가 쫓아오는 것도,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생각만으로 스스로를 그렇게 채찍질을 해댄다. 결국은 당장 하고 싶지 않아서였으면서 말이다. 



요즘 함께 멍 때리는 개동 생 방울이

 


에라 모르겠다. 제발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자. 당분간은 오늘의 생각대로만 움직이자.






 #003. 쉼의 정의 

 

 휴식의 정의가 있을까. 각자 저마다의 휴식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채우지 못하는 것을 채우는 것도 휴식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시 멈추어 비워내는 것도 휴식이다.


 다만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은 꼭 하나씩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형제가 없는 외동으로 자라온 덕도 있지만, 대체로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편이다. 친구, 연인, 가족 등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온전히 '나'와 보내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게 해 준다.


 20대에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혼자'만의 여행을 해왔던 것. 그리고 '혼자'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취미 거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활동들이 대체로 동적인 것이라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은 한없이 정적이고 여유로운 시간으로 채워진다.


 10대의 시간은 혼란으로 가득 차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는 시간이었고,

 20대의 시간은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볼 수 있어 후회 없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30대의 시작과 동시에 찾아온 원치 않던 휴식은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시간 또한 없어져 아까운 시간이 아니라는 것.



 오늘, 현재에 직면한 이 시점의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 곧 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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